시각장애 딛고 2009년 밴 클라이번 우승…내달 3일 내한 독주회
오른손·왼손 연주 녹음 듣고 악보 익혀…"협연 땐 숨소리에 집중"
'기적의 피아니스트' 쓰지이 "음악은 장애와 무관…그저 즐겁게"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도 어떻게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들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

음악은 보고, 듣고,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시각장애를 가진 일본의 피아니스트 쓰지이 노부유키(36) 역시 음악을 느끼고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선천성 질병인 소안구증을 가지고 태어난 쓰지이는 어둠 속에서 음악으로 빛을 빚어내 '기적의 피아니스트'로 불린다.

다음 달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독주회를 보름쯤 앞둔 지난 16일 한국 언론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쓰지이는 "음악은 장애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쓰지이는 시각 장애가 있었지만, 어릴 적부터 피아노와 함께였다.

2살 때 장난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4살부터는 본격적으로 피아노 교습을 받으며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어왔다.

2009년에는 미국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앞서 2005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는 최연소로 비평가상을 받았다.

자신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지 묻자 쓰지이는 "음악은 저를 표현하는 수단"이라며 "말보다 음으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음악은 저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매개체"라고 답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음악을 향한 쓰지이의 열정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보통 시각장애 음악가들은 점자 악보를 사용하는데, 쓰지이는 점자 악보로는 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데 한계가 있어 오른손과 왼손 연주가 따로 녹음된 테이프를 듣고 이를 통째로 익힌다고 한다.

'기적의 피아니스트' 쓰지이 "음악은 장애와 무관…그저 즐겁게"
오케스트라의 협연자로 자주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는 지휘자와 소통이 필수인데, 쓰지이는 지휘자의 신호를 숨소리로 알아차린다고 했다.

그는 "협연할 때는 주로 현장에서 숨소리에 최대한 집중한다"며 "리허설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호흡을 맞춰나간다"고 말했다.

언젠가 한 번은 팀파니의 큰 소리 때문에 지휘자의 숨소리를 듣지 못해 시작할 타이밍을 놓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공연에서다.

그런데도 쓰지이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다"며 "그래서 장애를 '이겨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곡에 대한 시대적 배경도 따로 공부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부풀리면서 작곡가가 그 당시 가졌던 정서와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
'기적의 피아니스트' 쓰지이 "음악은 장애와 무관…그저 즐겁게"
쓰지이는 작곡가로도 활동하며 일본 영화와 드라마 주제곡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쓰지이가 창작한 곡을 연주하면, 이걸 다른 사람이 듣고 악보로 옮겨 주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쓰지이는 이번 독주회에서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5번', 쇼팽의 '즉흥곡 1·2·3번', '환상 즉흥곡', 드뷔시의 '판화', 라흐마니노프의 '악흥의 순간' 등을 들려준다.

그는 "(밴 클라이번 우승 이후) 많은 경험과 연주를 해오면서 나름대로 표현력이 깊어졌다고 생각한다"며 "20대에는 젊음과 열정을 바탕으로 연주했다면, 지금은 그때보다 깊이 있는 연주를 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은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장애 혹은 여러 환경적 제한을 갖는 후배 피아니스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음악은 무엇이든 하나로 만들어줄 수 있는 수단이란 거죠. 어떠한 제한도 없기 때문에 그저 즐겁게 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