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 나무 간격을 5~6m 벌리고 바닥에 다공질 필름(타이벡)을 깔아 재배하는 ‘성목이식’ 방식을 채택한 농가.  /신세계백화점 제공
감귤 나무 간격을 5~6m 벌리고 바닥에 다공질 필름(타이벡)을 깔아 재배하는 ‘성목이식’ 방식을 채택한 농가. /신세계백화점 제공
제주에서 한때 감귤 나무는 ‘대학 나무’라 불렸다. 감귤 나무 두 그루만 있으면 자식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1950년대부터 제주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감귤은 70여 년이 지난 오늘 겨울철 국민 과일이 됐다.

하지만 국민 과일이란 별명에도 명암은 있었다.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등 만감류는 고급 과일이 된 반면 감귤은 그저 누구나 먹을 수 있는 흔한 과일 중 하나에 머물렀다. 대학 나무 역시 옛말이 됐다.

흔한 과일이라고 무시당하던 감귤의 몸값이 오르고 있다. 필살기는 월등히 높은 당도. 기껏해야 당도 10브릭스 내외인 기존 감귤과 달리 13브릭스는 기본이고 15브릭스를 넘나들기도 한다.

달콤해진 감귤의 비밀이 궁금해 지난달 제주 서귀포시 중문농협을 찾았다. 고품질 감귤 선별장에선 감귤 분류 작업이 한창이었다. 기다란 컨베이어벨트 위로 감귤이 줄을 지어 이동했다. 감귤이 기계를 통과하자 모니터에 방금 기계를 통과한 감귤의 당도와 산도가 떴다. 이 기계는 ‘비파괴 당도 선별기’라 불린다. 감귤에 흠집을 내지 않고 광센서로 빛의 굴절률을 이용해 당도를 측정한다. 각 농가의 감귤 샘플(표본)을 파즙(잘라서 즙을 내는 것)해 당도를 측정하는데, 샘플의 당도가 13브릭스 이상으로 나온 농가의 감귤들만 이곳으로 옮겨져 비파괴 당도 선별기를 거친다. 1차 선발을 통과한 후보들만 별도의 선별장으로 옮겨진 뒤 또다시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

제주 중문농협에 고품질 감귤 전용 선별장이 들어선 건 4년 전이다. 총면적 857.3㎡의 이 선별장에선 당도 13브릭스 이상의 감귤만 취급한다. 중문농협은 이곳을 거친 감귤 전량을 제주 과일 전문 브랜드 달콤트리에 보낸다. 달콤트리는 고당도 감귤을 당도별로 상품화한 뒤 대부분을 신세계백화점에 납품한다. ‘감귤 선별(중문농협)-상품화(달콤트리)-최종 판매(신세계백화점)’의 구조다. 감귤 성수기인 작년 12월엔 신세계백화점에서 당도 13브릭스 이상인 감귤 판매량이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54%나 늘었다. 다른 과일류 평균 매출 증가율의 3배가 넘는 수치다.

‘백화점용 감귤’이라는 이미지가 생기고, 독점 계약으로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되자 감귤 농가들도 바뀌었다. 이전까지 고당도 감귤은 단가는 높지만 전용 상품을 만들기에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하고 재배 과정이 까다로워 농민들에게 ‘빛 좋은 개살구’였다. 제대로 심어 감귤을 재배하기까지 3~5년간 수입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전용 선별장이 생겨 프리미엄 상품이 되고, 적은 양으로도 낼 수 있는 수익이 커지자 고당도 감귤 재배 농가가 덩달아 늘었다.

이날 농가에서 만난 나석우 생산자는 “일반 감귤을 재배할 때 1년에 4000관(1관=3.75㎏) 판매했는데, 고당도 감귤로 전환한 뒤 2800관밖에 팔지 못하는데도 연 수익은 4배 이상 늘었다”며 “850평(약 2810㎡)에서 나오는 매출이 일반 노지 6000평(약 19834㎡)에 맞먹는다”고 했다.

서귀포=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