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일 테노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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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일 테노레' 리뷰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 이야기
개인의 성장·시대적 배경 균형감 있는 전개
디테일한 무대·연출·음악·반전 결말까지 '탄탄'
홍광호·박은태·서경수 연기·노래도 호평
오디컴퍼니 신춘수, 창작 초연 한계 부숴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 이야기
개인의 성장·시대적 배경 균형감 있는 전개
디테일한 무대·연출·음악·반전 결말까지 '탄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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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컴퍼니 신춘수, 창작 초연 한계 부숴
일제의 탄압이 극심했던 1930년대 경성. 세상은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다.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살아가는 게 곧 순리였던 그 시절, 식민지 청년들의 '꿈'은 암울했던 조국의 현실과 여러 차례 부딪혔다.
마치 그러한 세상의 금기를 호령하듯 목청에서 천둥과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 계속 쉬지 않고 숨이 가빠올 때까지 마음껏 소리쳐. 크게 더 크게. 온 세상이 나의 존재를 알 수 있게."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 윤이선이었다.
'일 테노레'는 이탈리아어로 '테너'를 뜻한다. 뮤지컬 '일 테노레'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를 꿈꾸는 윤이선의 이야기를 그렸다. 윤이선과 함께 오페라 공연을 준비하는 독립운동가 서진연, 이수한 세 사람을 통해 비극적이고 어두운 시대 속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펼쳐냈다.
작품은 한국 오페라의 선구자 이인선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이인선이 1940년대 초반 의대생이었으나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서 오페라를 배웠다는 사실, 모두가 무모하다고 말하는 꿈에 도전했다는 점을 참고했을 뿐 '일 테노레' 속 윤이선의 이야기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및 서사는 모두 새로 만들어진 허구다.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 다니는 의대생 윤이선은 서진연을 만나러 이화여전에 갔다가 음악당에서 흘러나오는 아리아에 마음을 빼앗긴다. 이게 무엇인가 하니 이탈리아의 무대예술인 오페라란다. 이후 의사가 되길 바라는 부친의 뜻을 충실히 따르던 윤이선에게 불쑥불쑥 그날의 기억이 찾아왔다.
기껏 완성했더니 또 검열 기준이 바뀌었단다. 항일운동 모임인 문학회 멤버들은 날로 심해지는 총독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고민과 수정을 반복하지만 거듭 좌절한다. 조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건 무리다. 그때 문학회의 리더이자 연출인 서진연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대안 하나가 있었다. 바로 외국 작품을 공연하는 것. 베네치아 민중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침략에 맞서는 내용의 오페라 'I Sognatori-꿈꾸는 자들'이라면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되리라.
그렇게 윤이선과 문학회 멤버들은 뭉쳤다. 오페라를 접한 윤이선은 "비극인데 노래와 악기가 더해지니 비극도 아름답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숱한 억압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 기회를 찾아가는 식민지 청년들의 꿈·희망과 닮아있어 뭉클함을 안긴다. 윤이선이라는 인물의 성장과 시대적 배경의 조화를 균형감 있게 풀어내 전개에 느슨함이 없다. 1막에서는 윤이선이 오페라를 접하고, 이에 빠지면서 진정한 꿈을 향해 소신을 드러내는 단계적 성장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어리숙했던 캐릭터의 내면이 강인하고 단단하게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과정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
2막에서는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스토리가 더욱 집약적으로 전개된다. 1막에서는 웃음이 나는 장면들을 곳곳에 배치해 초반 분위기를 마냥 무겁지 않게 조성했는데, 2막부터는 인물 간 갈등과 내적 고뇌 등을 다루며 한층 몰입감을 높였다. 시대 배경, 독립과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낸다.
'꿈의 무대'였던 부민관 공연 장면에서는 고민과 번뇌,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다. 윤이선이 무대에 오르기 직전 독립운동가이자 무대 디자이너인 이수한과 서진연이 해당 공연을 보러 오는 '까마귀'를 암살하려 한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까마귀'는 조선인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며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조선 최초의 테너로서의 무대냐, '까마귀' 암살 작전이냐. 윤이선, 서진연, 이수한 세 사람을 둘러싼 팽팽한 긴장감에 숨이 막힐 정도다.
마지막까지 촘촘한 짜임새를 자랑하는 '일 테노레'다. 결말의 반전과 함께 노년의 윤이선이 부르는 마지막 '꿈의 무게'는 상상 이상의 감동과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무대, 연출, 음악, 연기 모든 게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독립운동과 오페라 무대가 단 한 순간을 위해 앞이 아닌 뒤에서 철저하게 준비한다는 공통점을 토대로 디자인된 무대는 결말에 이르러 진가를 드러낸다. 부민관 공연 장면에서 무대 중앙부와 양옆에 자리한 3개의 턴테이블이 회전하며 내내 가려져 왔던 웅장한 무대의 '앞'이 드러나 강한 전율을 일으킨다. 독립운동의 굳건한 의지를 대변하는 한줄기의 강한 스포트라이트까지 놀라운 디테일을 자랑한다.
음악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작곡가 윌 애런슨(Will Aronson)은 대학 시절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던 경험을 살려 오리지널 오페라 아리아 'Aria 1: 꿈의 무게', 'Aria 2: 그리하여, 사랑이여'를 작곡했다. 이를 메인 테마로 극의 흐름에 맞춰 다양하게 변주함으로써 환상적인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18인조 오케스트라 중 12인조를 현악기로 편성해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선율을 구현해낸 점도 인상적이다.
윤이선 역은 홍광호, 박은태, 서경수가 맡았다. 더없이 좋은 캐스팅이다. 홍광호의 묵직하고 힘 있는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게 관객들의 마음에 가닿는다. 마지막 '꿈의 무게'를 부를 땐 숨소리마저 줄이고 그에게 집중하게 된다. 윤이선의 성장에 맞게 캐릭터의 변주를 끌어내는 능력도 탁월하다. 박은태, 서경수도 실력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 배우들이다. 세 명의 윤이선이 각각 다른 매력으로 호평받고 있다.
'일 테노레'는 오디컴퍼니의 창작 뮤지컬로, 신춘수 프로듀서는 '번지점프를 하다'·'어쩌면 해피엔딩'으로 사랑받은 박천휴 작가, 윌 애런슨 작곡가와 호흡해 웰메이드 작품을 세상에 내놨다. '할러 이프 야 히어 미(Holler If Ya Hear Me)', '닥터 지바고'에 이어 '위대한 개츠비'까지 꾸준히 브로드웨이에도 발을 내딛고 있는 신 프로듀서의 도전 역사, 아니 성공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수작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떠오르지 않는 진정한 수작이다. 브라보! 일 테노레.
공연은 오는 25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계속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마치 그러한 세상의 금기를 호령하듯 목청에서 천둥과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 계속 쉬지 않고 숨이 가빠올 때까지 마음껏 소리쳐. 크게 더 크게. 온 세상이 나의 존재를 알 수 있게."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 윤이선이었다.
'일 테노레'는 이탈리아어로 '테너'를 뜻한다. 뮤지컬 '일 테노레'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를 꿈꾸는 윤이선의 이야기를 그렸다. 윤이선과 함께 오페라 공연을 준비하는 독립운동가 서진연, 이수한 세 사람을 통해 비극적이고 어두운 시대 속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펼쳐냈다.
작품은 한국 오페라의 선구자 이인선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이인선이 1940년대 초반 의대생이었으나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서 오페라를 배웠다는 사실, 모두가 무모하다고 말하는 꿈에 도전했다는 점을 참고했을 뿐 '일 테노레' 속 윤이선의 이야기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및 서사는 모두 새로 만들어진 허구다.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 다니는 의대생 윤이선은 서진연을 만나러 이화여전에 갔다가 음악당에서 흘러나오는 아리아에 마음을 빼앗긴다. 이게 무엇인가 하니 이탈리아의 무대예술인 오페라란다. 이후 의사가 되길 바라는 부친의 뜻을 충실히 따르던 윤이선에게 불쑥불쑥 그날의 기억이 찾아왔다.
기껏 완성했더니 또 검열 기준이 바뀌었단다. 항일운동 모임인 문학회 멤버들은 날로 심해지는 총독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고민과 수정을 반복하지만 거듭 좌절한다. 조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건 무리다. 그때 문학회의 리더이자 연출인 서진연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대안 하나가 있었다. 바로 외국 작품을 공연하는 것. 베네치아 민중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침략에 맞서는 내용의 오페라 'I Sognatori-꿈꾸는 자들'이라면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되리라.
그렇게 윤이선과 문학회 멤버들은 뭉쳤다. 오페라를 접한 윤이선은 "비극인데 노래와 악기가 더해지니 비극도 아름답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숱한 억압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 기회를 찾아가는 식민지 청년들의 꿈·희망과 닮아있어 뭉클함을 안긴다. 윤이선이라는 인물의 성장과 시대적 배경의 조화를 균형감 있게 풀어내 전개에 느슨함이 없다. 1막에서는 윤이선이 오페라를 접하고, 이에 빠지면서 진정한 꿈을 향해 소신을 드러내는 단계적 성장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어리숙했던 캐릭터의 내면이 강인하고 단단하게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과정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
2막에서는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스토리가 더욱 집약적으로 전개된다. 1막에서는 웃음이 나는 장면들을 곳곳에 배치해 초반 분위기를 마냥 무겁지 않게 조성했는데, 2막부터는 인물 간 갈등과 내적 고뇌 등을 다루며 한층 몰입감을 높였다. 시대 배경, 독립과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낸다.
'꿈의 무대'였던 부민관 공연 장면에서는 고민과 번뇌,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다. 윤이선이 무대에 오르기 직전 독립운동가이자 무대 디자이너인 이수한과 서진연이 해당 공연을 보러 오는 '까마귀'를 암살하려 한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까마귀'는 조선인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며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조선 최초의 테너로서의 무대냐, '까마귀' 암살 작전이냐. 윤이선, 서진연, 이수한 세 사람을 둘러싼 팽팽한 긴장감에 숨이 막힐 정도다.
마지막까지 촘촘한 짜임새를 자랑하는 '일 테노레'다. 결말의 반전과 함께 노년의 윤이선이 부르는 마지막 '꿈의 무게'는 상상 이상의 감동과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무대, 연출, 음악, 연기 모든 게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독립운동과 오페라 무대가 단 한 순간을 위해 앞이 아닌 뒤에서 철저하게 준비한다는 공통점을 토대로 디자인된 무대는 결말에 이르러 진가를 드러낸다. 부민관 공연 장면에서 무대 중앙부와 양옆에 자리한 3개의 턴테이블이 회전하며 내내 가려져 왔던 웅장한 무대의 '앞'이 드러나 강한 전율을 일으킨다. 독립운동의 굳건한 의지를 대변하는 한줄기의 강한 스포트라이트까지 놀라운 디테일을 자랑한다.
음악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작곡가 윌 애런슨(Will Aronson)은 대학 시절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던 경험을 살려 오리지널 오페라 아리아 'Aria 1: 꿈의 무게', 'Aria 2: 그리하여, 사랑이여'를 작곡했다. 이를 메인 테마로 극의 흐름에 맞춰 다양하게 변주함으로써 환상적인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18인조 오케스트라 중 12인조를 현악기로 편성해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선율을 구현해낸 점도 인상적이다.
윤이선 역은 홍광호, 박은태, 서경수가 맡았다. 더없이 좋은 캐스팅이다. 홍광호의 묵직하고 힘 있는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게 관객들의 마음에 가닿는다. 마지막 '꿈의 무게'를 부를 땐 숨소리마저 줄이고 그에게 집중하게 된다. 윤이선의 성장에 맞게 캐릭터의 변주를 끌어내는 능력도 탁월하다. 박은태, 서경수도 실력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 배우들이다. 세 명의 윤이선이 각각 다른 매력으로 호평받고 있다.
'일 테노레'는 오디컴퍼니의 창작 뮤지컬로, 신춘수 프로듀서는 '번지점프를 하다'·'어쩌면 해피엔딩'으로 사랑받은 박천휴 작가, 윌 애런슨 작곡가와 호흡해 웰메이드 작품을 세상에 내놨다. '할러 이프 야 히어 미(Holler If Ya Hear Me)', '닥터 지바고'에 이어 '위대한 개츠비'까지 꾸준히 브로드웨이에도 발을 내딛고 있는 신 프로듀서의 도전 역사, 아니 성공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수작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떠오르지 않는 진정한 수작이다. 브라보! 일 테노레.
공연은 오는 25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계속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