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I’라는 단어는 마법지팡이다. IT분야 뿐만 아니라 금융, 의학, 농업, 예술, 문학 등 모든 분야에 접목된다. 그런데 이 AI를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 스테파니 딘킨스 작가는 AI 그 자체에 집중한다. 사진은 지난 1월 25일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 행사에서 참가자가 작품 <The Stories We Tell Our Machines, work in progress>를 직접 시연하는 모습. “I am..”으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자신에 대해 설명하면 AI가 이에 걸맞는 이미지를 생성해 보여준다.  [사진=이한빛]
요즘 ‘AI’라는 단어는 마법지팡이다. IT분야 뿐만 아니라 금융, 의학, 농업, 예술, 문학 등 모든 분야에 접목된다. 그런데 이 AI를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 스테파니 딘킨스 작가는 AI 그 자체에 집중한다. 사진은 지난 1월 25일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 행사에서 참가자가 작품 <The Stories We Tell Our Machines, work in progress>를 직접 시연하는 모습. “I am..”으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자신에 대해 설명하면 AI가 이에 걸맞는 이미지를 생성해 보여준다. [사진=이한빛]
“내가 다른 이들보다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17세기 과학자 아이작 뉴튼의 말입니다. ‘거인의 어깨 위’(on the shoulders of giants)라는 표현은 선인들의 지혜를 발판 삼아 뛰어난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음을 뜻합니다. 앞서 AI X ART 1편에서 AI가 현대미술작가들에게 ‘거인의 어깨’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지요? 이번 글은 최근 인간이 만들어낸 이 ‘거인’에 대한 것 입니다. 굉장히 똑똑해 보이는 이 거인이 알고 보니 편견투성이의 두살배기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제 1회 ‘LG 구겐하임어워드’ 수상자 스테파니 딘킨스가 1월 25일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아티스트토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Ed Marshall]
제 1회 ‘LG 구겐하임어워드’ 수상자 스테파니 딘킨스가 1월 25일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아티스트토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Ed Marshall]

LG와 손잡은 구겐하임, 새롭게 시작한 아트 앤 테크놀러지 이니셔티브

2023년 초, 구겐하임미술관은 제 1회 ‘LG 구겐하임어워드’의 수상자로 스테파니 딘킨스(Stephanie Dinkins)를 호명합니다. 딘킨스가 수상자가 됐다는 소식은 미술계는 물론 IT업계에도 놀랄만한 소식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딘킨스는 타임스(Times)선정 2023년 100대 ‘AI 인플루언서’로, 전통적 미술관의 대명사인 ‘구겐하임’이 AI(를 활용한) 아트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으니까요.

그러나 미술관은 ‘예술은 당연히 첨단기술에 관심이 있고, 이에 영향 받고 진화한다’고 설명합니다. 노암 시걸(Noam Segal) LG 구겐하임 아트 앤 테크놀러지 이니셔티브(Art & Technology Initiative) 전임 큐레이터는 “미술관은 그 출발부터 동시대 기술과 관련이 있다. 회화, 판화, 사진, 조각에 이르기까지 모든 매체가 기술의 영향을 받았고, 또한 영향을 주면서 진화했다. 사진을 예를 들어보자. 카메라 옵스큐라가 디지털 카메라로, 스캐너로 발전하면서 이미지 제작 기술은 계속 변화해왔다”고 말합니다.

완성된 작품을 컬렉션하는 수동적 미술관이 아니라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작업을 할 때, 이를 지원하고 그 과정을 기록하며 발전시킬 수 있도록 능동적 역할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고, 예술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을 존경한다. 물론 ‘머신 러닝’이라는 것이 이전엔 없던 사회적 예술적 고민을 던져주지만, 예술이 적응하고 발전하는 방식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역할은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매체를 탐구하고, 익숙해 가는 그 과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 전경 [사진=이한빛]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 전경 [사진=이한빛]

AI는 편견으로 가득한 두살배기 아이

이런 의미에서 LG 구겐하임 아트 앤 테크놀러지 이니셔티브가 딘킨스를 어워드 첫 수상자로 선정하고 지원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딘킨스의 작업은 AI 그 자체를 들여다봅니다. 최근 AI는 마법의 단어처럼 쓰입니다. IT는 물론 농업, 의학, 생물학과 같은 과학분야는 물론 경제, 경영, 문학 심지어 인간 창의성의 집약체로 여겨지는 예술에 이르기까지 AI가 접목되지 않은 분야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일반인들에게 AI란 여전히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이미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 스며들었음에도 불구하고요.

AI는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수천년 쌓인 인간의 지식이 입력된 ‘지능’입니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집단지성에 가깝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는 점이 특징이죠. 좋은 점뿐만 아니라 나쁜 점까지 도요. 딘킨스는 “작업을 통해 대중이 막연하게 갖는 AI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이 새로운 기술에 더 많이 참여해, 우리 공동체의 요구에 맞게 (AI를)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지난달 25일 저녁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스테파니 딘킨스는 제 1회 ‘LG 구겐하임어워드’ 수상이후 작업해왔던 작품 3점< The Stories We Tell Our Machines, work in progress >, < WisdomBot, 2023 >, < Not the Only One Avatar image 2023 brain (N’TOO), 2018-ongoing >을 깜짝 공개하고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했습니다. 미술관이 문을 닫은 뒤 저녁에 치러진 행사였지만 약 400여명 넘는 관객이 몰려, 딘킨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과 작업 전반을 후원하는 LG도 관심이 집중되자 기쁜 모양새였습니다. 오혜원 LG전자 HE브랜드커뮤니케이션 담당 상무는 “우리는 예술과 기술이 상호 영감을 주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깊게 이해하는 작가와 작품을 응원하고 지원한다”며 “스테파니 딘킨스의 새 작업을 올레드 TV라는 캔버스에 담아서 선보일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고 밝혔습니다.
Not the Only One Avatar image 2023 brain (N’TOO), 2018-ongoing [사진= Ed Marshall]
Not the Only One Avatar image 2023 brain (N’TOO), 2018-ongoing [사진= Ed Marshall]

아이를 대하듯, AI를 가르쳐라

공개한 세 작업 모두 인터렉티브를 기반으로 합니다. < N’TOO >는 지난 2018년 베타버전을 선보인 이후 계속 업그레이드 중인 프로젝트입니다. 할머니-어머니-딸로 이어지는 미국 흑인 가족 3대의 이야기를 ‘구술’로 입력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객들의 질문에 대해 AI가 답변하는 방식입니다. 이전에는 음성만 존재했으나, 최근 작업부터는 아바타가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한 최신 < N’TOO >는 LG 투명 OLED 디스플레이로 구현됐습니다. TV 하단에 부착된 카메라가 앞에 선 관객의 눈을 인식하면 대화가 시작합니다.

아직은 에러도 나고, 2살 ~ 3살 수준의 답변을 내놓는 등 매끄러운 대화는 어렵습니다. 작가는 “끊김 없는 (논리적) 대화가 목표가 아니다. 구술이라는 방식으로 입력한 데이터를 AI가 학습하고, 소화함으로써 AI와 관련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마저도 AI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빅테크 컴퍼니의 AI 내러티브 형식이 아니라 고대부터 인류의 지식을 전승해 온 스토리텔링 방식과 예술과 사회적 참여를 결합시켜 새로운 종류의 AI 내러티브를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 The Stories We Tell Our Machines >는 기계가 인간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에서 이미 AI에 입력된 편견이 가감없이 공개되는데, 감추고 싶은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죠. 세 개의 커다란 모니터 앞에 선 관객이 설치된 마이크에 “나는(I am..) 000야” 라고 설명하면 AI가 그에 걸맞는 이미지를 생성해 냅니다. 필자가 “나는 아시아 여자이고, 이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야”라고 말하자 1~2분 뒤 일본 정원 풍경이 스크린에 나타났습니다. AI가 필자의 말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고, ‘아시아’, ‘아웃사이드’라는 단어만 캐치한듯 합니다. 그럼에도 일본 정원 풍경이 펼쳐지는 것은 한마디로 ‘웃픈’ 경험이었습니다. 아시아에 대한 서양 주류사회의 전형적인 시각임을 유추할 수 있었으니까요.

마지막 작업인 < WisdomBot, 2023 >은 인간에 내재된 지혜와 지능의 본질에 대해 묻는 작업으로 지난 2017년부터 계속 진행중인 프로젝트입니다. “’지혜’란 전승되는 것인데, 우리는 그걸 책으로 배우고 있어요. 아니 세상에!” 딘킨스의 설명에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텍스트로 모두 전달 되지 못하는 공감각적이고 입체적인 지식을 과연 우리는 ‘엄청나게 영리한’ 두 살 지능의 기계에게 잘 가르칠 수 있을까요?
The Stories We Tell Our Machines, work in progress [사진= Ed Marshall]
The Stories We Tell Our Machines, work in progress [사진= Ed Marshall]

지금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시점

딘킨스는 ‘그렇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고요. 작가는 ‘우리 모두가 인공지능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지금 ‘기회의 시점’(point of opportunity)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들이 잘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인간)공동체를 부정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이를 (현상)유지하기 위해 편견, 두려움, 연약함, 지역주의가 더 깊숙하게 내재된 시스템을 개발한다. 그러나 가족, 마을, 국가 등 우리 관심범위를 벗어난 것에는 그다지 능숙하지 못하다. 어쩌면 인공지능은 우리가 더 큰 그림을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기계를 가르치기 위해 던지는 지식과 질문은 인간 자신을 향합니다. “이미 확고해진 편견을 어떻게 해야할까? 지구상의 모든 사람, 모든 환경, 모든 생명체의 진정한 형평성, 자율성, 번영이 목표라면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거나 바꾸어야 할까?” 심지어 작가는 지구에 종속된 인간의 시각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주 식민지화가 이미 시작됐고, 경쟁도 본격화한 상황이다. 우주까지도 고려해야한다”

딘킨스는 이 같은 전환이 ‘인간’이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방식으로 삶을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의식은 감정, 느낌, 감각, 생각, 욕망 등 모든 스펙트럼을 포괄한다. 인류는 공유된 역사, 문화, 의미와 목적 추구를 통해 하나로 엮인 개인적 경험의 집합체다” 그렇기에 인간의 창작물인 예술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안전장치입니다.

“예술은 여기서 중추적 역할을 한다. 아름다움과 잔인함 속에서 인간의 조건을 반영하는 거울로 작동하며, 도발과 영감, 치유를 불러일으킨다. 인간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다. AI 맥락에서 예술은 인간 창작물의 윤리적 차원을 검토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기술 혁신의 진정한 가치는…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그려지던 21세기가 시작한지 이미 20년이 넘었지만 지구상에는 아직도 구시대의 망령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전쟁과 난민은 현재진행형이고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지구를 점점 더 극단의 환경으로 끌고 갑니다. 기술은 인간을 자유롭게도 하지만, 최첨단으로 자멸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죠. ‘비관적 미래’가 고개를 드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딘킨슨 작가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미래가 우리가 과거에 직면했던 그 어떤 미래보다 더 디스토피아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는 과거에 배운 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수정하고 방향을 바꾸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예술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혁신의 진정한 가치는 그 기술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창조한 기술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모두에게 공평한 존재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예술은, 특히 기술과 사회의 교차점에 있는 예술은, 이를 늘 상기시켜준다” AI가 예술과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