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이 불러온 광기의 허무함…신예 연출가의 도전에 힘 보탠 창작진
창극의 무한한 변신…남성 목소리로만 채운 욕망의 '살로메'
"그럴 일이 아니었는데…"
지난 2∼4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초연한 '남성창극 살로메'는 모든 인물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극이 끝에 다다르면 감정 없이 명령대로만 움직이던 신하만이 홀로 남아 뒤틀린 욕망 때문에 파국을 맞은 이들의 어리석음을 애석해한다.

'남성창극 살로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남성 배우들만으로 꾸린 창극이다.

안무가 출신인 김시화 연출의 창극 데뷔작으로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이다.

신약성서를 기반으로 한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가 원작으로 예언자 요한을 사랑한 공주 살로메와 이를 둘러싼 헤로데 왕가의 뒤틀린 욕망을 그린다.

원작 속 매혹적인 여성 캐릭터인 살로메는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 김준수와 배우 윤제원이 더블 캐스팅됐다.

김준수는 앞서도 '트로이의 여인들'의 헬레네, '패왕별희'의 우희 등 여성 캐릭터를 맡아 소리뿐 아니라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인 바 있다.

'국악계 아이돌'로 불리며 팬덤을 몰고 다니는 그의 공연은 예매 시작과 동시에 티켓이 동나기도 했다.

마지막 공연 날인 지난 4일 낮 공연 무대에 오른 윤제원은 욕망에 눈이 먼 살로메의 광기를 거침없이 분출시켰다.

그는 자신을 거부하는 요한을 탐하는 살로메를 때로는 요염하게, 때로는 거칠게 연기했다.

초연임에도 살로메는 단순한 '여장' 캐릭터에 그치지 않고, 사랑하는 이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캐릭터로 완성도 있게 그려졌다.

창극의 무한한 변신…남성 목소리로만 채운 욕망의 '살로메'
원작의 또 다른 여성 캐릭터인 살로메의 어머니인 여왕 헤로디아는 창극과 뮤지컬, 연극을 오가며 활동하는 서의철이 맡았다.

서의철은 우렁차게 웃는 웃음소리나 하체를 크게 움직이는 과장된 걸음걸이로 극의 팽팽한 긴장감을 완화하며 남성창극의 매력을 더했다.

살로메와 함께 극을 중반까지 이끈 호위대장 나라보스(정보권)와 왕비의 시종 메나드(김수인)는 '집착'이라는 작품의 주제 의식을 또렷이 드러냈다.

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듯 서로를 향한 탐욕으로 얽혀있다.

메나드는 나라보스를, 나라보스는 살로메를, 살로메는 요한을 사랑한다.

세 사람이 각자가 탐하는 대상을 향해 서로를 등지고 있는 장면은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메나드는 나라보스의 팔을 잡아끌고, 나라보스는 살로메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살로메는 요한의 입술을 탐하며 괴로워한다.

급기야 나라보스는 "살로메는 죽여서라도 내 차지"라며 칼을 빼 들었다가 스스로를 찌르며 앞으로 불어닥칠 파국을 예고한다.

나라보스의 죽음 이후 극은 더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의붓딸인 살로메를 사랑하는 왕 헤로데(유태평양)는 살로메에게 춤을 춰 달라고 요구하고, 살로메는 그 대가로 요한의 목을 내리쳐 달라고 요구한다.

끝내 요한을 죽이고 그의 머리를 손에 쥔 살로메의 괴기한 모습은 집착이 불러온 광기와 그 끝의 허무함을 씁쓸하게 전한다.

'남성창극 살로메'는 최근 인기가 높아진 창극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음악은 국악 반주에 피아노, 첼로, 전자기타 등의 서양악기가 녹아들었고, 코러스는 판소리 창법에서 벗어나 뮤지컬적인 요소가 강화됐다.

무엇보다 신예 연출가의 도전에 창극을 이끌어온 베테랑 창작진인 연출 겸 작가 고선웅, 음악감독 이아람, 소리꾼 김준수, 유태평양, 김수인, 정보권 등이 힘을 보탰다는 점도 뜻깊다.

창극의 무한한 변신…남성 목소리로만 채운 욕망의 '살로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