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천금보다 값진 말
풀뿌리 민주주의의 대의 기관인 광주 광산구와 광산구의회가 공식 석상에서 나온 구청장의 발언을 두고 술렁인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25일 구청 간부회의 석상에서 나왔다.

회의에는 과장급 이상 70여 명이 참석했고 일반 직원들도 각자 자리에서 동영상 중계로 볼 수 있었다.

박병규 광산구청장은 '1월 추경'이 구의회 반대 기류에 무산되자 기획안을 마련하느라 고생한 구청 직원들을 다독이며 추경안 철회 경위를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독재', '한 사람이 좌지우지', '국회의원 아래 시의원과 구의원' 등 논란의 소지가 있는 발언들이 나왔다.

공교롭게도 광산구의회는 더불어민주당의 특정 지역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예산 심의를 담당하는 기구들의 대표자를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구의원은 '독재'보다는 '한 사람이 좌지우지'라는 발언에 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의 속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가 꼭두각시냐"이다.

불편한 심경을 토로하기는 소수 정당 소속 구의원도 마찬가지다.

해당 구의원은 처음에는 광산구가 제출한 추경안을 통과시켜줄 생각을 갖고 있었다.

가족센터 이사비용 2천만원, 임곡동 복지관 운영비 1천만원 등 주민의 삶에 당장 필요한 예산을 본예산에 포함하지 못한 과실을 담당 공무원들이 인정하며 협조를 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전 협의가 없었던 이른바 끼워넣기 예산이 이 구의원의 생각을 돌려세웠다.

해당 구의원도 "나까지도 들러리란 말이냐"라고 항변하며 '독재'보다는 '한 사람이 좌지우지'에 더 크게 분개했다.

박 청장은 자신의 발언이 일으킨 파문을 보도한 기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며 으름장으로 대응했다.

정무·홍보 등 광산구의 중추 기능들은 언론의 '팩트체크' 과정에서 박 청장 발언의 진위를 밝힐 원고 또는 동영상 등이 없다고만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발언의 맥락과 뜻을 풀이해달라는 질문에도, 논란이 확산하고 나서 대응 과정에서도 시민과의 소통 창구인 언론과 별다른 교감을 하지 않았다.

서로의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된 주말이 지나고 나서 광산구의 한 공무원은 당시 상황을 "말릴 수 없었다"라고만 논평했다.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무거운 입과 활짝 열린 귀는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무기이기도 하다.

자신이 뱉은 말을 주워 담기보다는 쓴소리라도 경청하는 단체장이 더 큰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3개월 앞두고 정당마다 예비 후보자들의 검증이 시작됐다.

지자체장과 마찬가지로 시민의 대의자로 나선 이들이 쌓아 올린 경험과 역량이 첫 번째 시험대에 올랐다.

일부 정당은 예비 후보자가 과거 했던 말과 행동도 검증 기준에 포함된다고 발표했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