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자들도 "제 식구 감싸기 판결" vs "애초 재판개입 불가"
"형법 개정·특별재판소 설치"…"김명수 체제가 책임질 일"
'양승태 무죄' 파장 계속…사법농단 실체부터 대책까지 의견분분
대한민국을 7년 동안 뒤흔든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법적 책임이 없다는 법원의 1차 판단이 나오면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사법부가 수장을 정점으로 조직적으로 재판에 개입하거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법관을 탄압하는 등 스스로 독립을 걷어찼다는 검찰의 수사 결과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5년 뒤 법원의 판단은 형법상 수뇌부의 공모 관계를 인정할 수 없어 형사 책임을 지울 수 없으며, 일부 고위급 실무자의 일탈이 있었을 뿐이라는 결론으로 향하는 분위기다.

이런 결론을 두고 실체 없는 의혹을 두고 검찰권이 남용돼 사법부 신뢰만 훼손됐다는 비판부터, 부적절한 일이 벌어진 것이 사실임에도 법적 잣대를 협소하게 들이대 면죄부를 줬다는 반론까지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사태를 바라보는 법학자들의 시각도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판결'이라는 비판부터 '애초에 실체가 없었다'는 주장까지 양분되는 양상이다.

사법부 신뢰를 뒤흔든 사건의 궁극적 해결을 위한 처방이 무엇인지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까지는 더 많은 논쟁이 필요할 전망이다.

◇ "판사 위선 반성해야…직권남용죄 적용 방식 국민 설득 못 해"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학자들은 '사법농단'의 실체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보는 시각에 따라 판단이 크게 갈렸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분명히 존재하는 사법농단에 대해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판사들이 일을 범죄 의식이나 도덕 감정 없이 해왔고 분명히 부적절하다고 의심받을 만한 행위를 해 온 것도 사실"이라며 "법원 사건에 대해서는 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자만심, 위선 등에 대해 반성할 계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사법·재판의 독립 같은 헌법적 가치가 침해되지는 않았다는 판단은 아니지만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돼도 법적으로 처벌하지 않겠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며 "기본적인 헌법 원칙이 심각하게 부정되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특히 법리상 이유로 대부분 무죄 판단이 나온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한 교수는 "법원이 너무 좁게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권한 밖의 일이기 때문에 직권남용이 아니라는 것은 '남용'이라는 말에 너무 집착한 해석"이라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지위를 이용한 모든 압력이나 권리 남용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대법원장은 적법한 지시를 해야만 직권이라는 것으로, 이상을 현실로 놓고 얘기하는 것"이라며 "사회와 인간의 삶, 역사적 맥락을 다 고려하지 않은 법 해석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줄 수 없다"고 했다.

한상희 교수는 향후 형법을 개정하는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직권남용죄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사람이 (검사 시절)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아닌가"라며 "법원이 좁게 해석하면 공무원의 독직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현 정부 존재 근거가 무너지는 양상인 만큼 정부가 나서서라도 형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창현 교수는 "법원 판사들은 대부분 선후배 관계로 이뤄지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이 어렵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라며 "법원 소속이 아닌 외부 법조계 인사들로 특별재판소를 만들어 재판을 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태 무죄' 파장 계속…사법농단 실체부터 대책까지 의견분분
◇ "사법농단 실체 없어…김명수 체제에서 한 자해행위"
반면 사법농단에 실체가 없다고 보는 법학자들은 오히려 문재인 정부와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실책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해결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의 개별 사안에 대해 대법원장이 압력을 넣거나 개입할 수 없어 재판거래라는 말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1970∼1980년대도 아니고 민주화가 이뤄진 상황에서 그럴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제 교수는 강제동원 재판 개입 혐의에 대해 "우리나라는 외교 사안이나 국제 사안에 대해 행정부가 의견을 표시하고 참고할 수 있는 '법정조언자' 제도가 없었다"며 "외교부와 대법원장이 당시 만났다고 하더라도 참고하라는 자료를 줬을 뿐 법원 판단에 그 내용이 반영됐던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법원이 자해 행위를 한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와 김명수 전 대법원장 체제를 비판했다.

제 교수는 "문제가 되지 않을 사안을 지난 정부와 김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망가뜨려 놓은 것"이라며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하면서 사법의 정치 예속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법원장이 취임한 후 의혹 제기에 내부 자체 조사를 벌이고, 검찰 수사에 협조해 410개 법원행정처 문제 문건 전체를 공개한 점 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직권남용죄에 대한 법원의 해석을 두고도 "유독 지난 정부 사법부에서 직권남용 개념이 너무 확대된 것이 아닌가 한다"며 "직권이 존재해야 남용·오용에 대한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사법농단 의혹은 일부가 자기들의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제기한 것에 불과해 실체가 없다"며 "양 전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을 재판에 가둬두고 괴롭힌 것으로,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을 해친 의혹"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사법농단이라고 불리는 일들은 정책 기관 기능을 할 수 있는 법원행정처가 그 기능을 한 것"이라며 "의견을 전달한다고 해도 독립된 존재인 판사가 양심에 따라 판결하기 때문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블랙리스트도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판사들을 퇴출하기 위한 인사 평정일 뿐"이라며 "문제 제기 세력이 국민을 위한 재판을, 진정한 인권을 위한 재판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책임 소재를 김 전 대법원장에게 돌렸다.

'양승태 무죄' 파장 계속…사법농단 실체부터 대책까지 의견분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