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바빠서요"…대통령 지시도 외면하는 '힘센' 기재부 [관가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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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바빠서 대응할 수 없습니다. 다음 주에 전화하세요.”
“문의한 내용은 기존에 배포했던 보도자료에 모두 나와 있습니다. 자료 보면 됩니다.”
“제 소관 업무가 아닌 것 같습니다. 대변인실에 문의하세요”
기획재정부를 담당하는 기자들이 기재부 간부들과 전화로 취재할 때 흔히 듣는 얘기다.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인 기재부는 중앙부처 중 가장 바쁜 부처로 손꼽힌다. 세제, 예산, 재정 등 굵직한 국가 정책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기재부 공무원들의 업무량도 상대적으로 다른 부처에 비해 많은 편이다.
동시에 핵심 국가정책을 다루고 있다는 자부심도 만만치 않다. 기재부 4급(서기관) 이상 공무원들의 90% 이상은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으로, 스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서울대 경제·경영학과 출신 아니면 제대로 명함도 못 내민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그래서일까. 기재부 공무원들의 ‘불친절’ 역시 유명하다. 기자들 뿐 아니라 다른 부처나 산하기관 직원들에게도 고압적인 건 마찬가지다. 예컨대 예산철만 되면 예산실 사무관의 호통에 다른 부처 국·과장급 간부들이 쩔쩔매는 건 익히 알려져 있다.
기재부가 내는 보도자료도 불친절한 건 마찬가지다. 정부 부처는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고 보도자료를 낸다. 보도자료의 1차 소비자는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지만, 일반 국민들도 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도 보도자료를 게재한다.
문제는 관련 분야 종사자나 전문가가 아니면 보도자료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전문 용어가 많은데다, 내부 보고서 형식으로 쓰여 있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요자인 국민을 배려하기보다는 공급자 위주로 작성돼 일방적으로 정책을 알리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정책 홍보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들이 몰라서 혜택을 받지 못하면 그 정책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며 “어떻게 전해야 국민들께 확실히 전달될지, 철저하게 국민의 입장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좋은 정책을 만들고 발표하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충주시 홍보를 맡은 ‘충주맨’ 김선태 주무관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기재부의 고압적인 태도도 과거에 비해선 많이 나아졌다는 것이 기자들과 산하기관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추경호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최상목 부총리 모두 정책 홍보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 관련 기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기재부 국·과장 간부들도 많아졌다. 특히 경제정책국과 정책조정국, 세제실, 예산실 등은 바쁜 업무에도 적극적으로 정책을 홍보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부서들의 특징은 국민들과의 접점이 많은 정책을 펼치는 곳이라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여전히 정책 홍보에 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기재부 내 부서들이 상당수라는 뜻이다. 재정정책·관리국, 국고국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부서는 상대적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적은 ‘그들만의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 후속 홍보엔 일절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자들이 정책 관련 문의를 위해 여러 차례 연락해도 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재정을 담당하는 한 부서의 과장은 기자들의 잇따른 정책 관련 질문에도 묵묵부답이다. 전화를 걸어도, 문자를 남겨도 일절 응답조차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작 관련 기사가 보도된 후엔 “왜 그렇게 썼냐”며 되레 윽박지르는 간부들도 더러 있다. 윤 대통령이 정책 홍보를 계속 강조했지만 정작 기재부에선 대놓고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부처에선 기재부의 이런 행태가 권한이 많은 예산과 세제를 주무르는 ‘힘센’ 부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기재부 대변인실은 이런 점을 인지하고 있다. 대변인실 관계자는 “각 부서 과장들에게도 정책 홍보를 꾸준히 강조하고 있지만, 어려운 점이 분명히 있다”고 밝혔다.
‘불친절하다’는 평가받는 기재부 공무원들도 할 말은 있다. 기자와 어렵게 연락이 닿은 한 과장급 간부는 “업무 때문에 너무 바쁜 와중에 기자들의 정책 관련 질의에 일일이 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일부 젊은 기자들은 제대로 핵심을 모르면서 아무 것이나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경제정책국 관계자는 “바쁘다는 이유로 본인이 맡은 정책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무원으로서의 자세가 안 돼 있는 것”이라며 “오히려 바쁜 간부들일수록 정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최상목 부총리도 틈만 나면 정책 홍보를 강조하고 있다. 서울과 세종에 오가는 바쁜 일정에도 점심·저녁때마다 기자들을 만나 정책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사무관들에게서도 업무 보고를 받는 등 공무원들과의 접점도 늘려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 지시뿐 아니라 최 부총리도 정책 홍보를 위해 직접 뛰어다니는 상황에서 과장급 간부들이 홍보를 외면한다는 것은 직무 유기와 다름없다”며 “정책 홍보에 소홀한 간부들에 대해선 인사 평가 때 감점을 주는 방안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문의한 내용은 기존에 배포했던 보도자료에 모두 나와 있습니다. 자료 보면 됩니다.”
“제 소관 업무가 아닌 것 같습니다. 대변인실에 문의하세요”
기획재정부를 담당하는 기자들이 기재부 간부들과 전화로 취재할 때 흔히 듣는 얘기다.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인 기재부는 중앙부처 중 가장 바쁜 부처로 손꼽힌다. 세제, 예산, 재정 등 굵직한 국가 정책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기재부 공무원들의 업무량도 상대적으로 다른 부처에 비해 많은 편이다.
동시에 핵심 국가정책을 다루고 있다는 자부심도 만만치 않다. 기재부 4급(서기관) 이상 공무원들의 90% 이상은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으로, 스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서울대 경제·경영학과 출신 아니면 제대로 명함도 못 내민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그래서일까. 기재부 공무원들의 ‘불친절’ 역시 유명하다. 기자들 뿐 아니라 다른 부처나 산하기관 직원들에게도 고압적인 건 마찬가지다. 예컨대 예산철만 되면 예산실 사무관의 호통에 다른 부처 국·과장급 간부들이 쩔쩔매는 건 익히 알려져 있다.
기재부가 내는 보도자료도 불친절한 건 마찬가지다. 정부 부처는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고 보도자료를 낸다. 보도자료의 1차 소비자는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지만, 일반 국민들도 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도 보도자료를 게재한다.
문제는 관련 분야 종사자나 전문가가 아니면 보도자료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전문 용어가 많은데다, 내부 보고서 형식으로 쓰여 있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요자인 국민을 배려하기보다는 공급자 위주로 작성돼 일방적으로 정책을 알리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정책 홍보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들이 몰라서 혜택을 받지 못하면 그 정책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며 “어떻게 전해야 국민들께 확실히 전달될지, 철저하게 국민의 입장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좋은 정책을 만들고 발표하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충주시 홍보를 맡은 ‘충주맨’ 김선태 주무관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기재부의 고압적인 태도도 과거에 비해선 많이 나아졌다는 것이 기자들과 산하기관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추경호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최상목 부총리 모두 정책 홍보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 관련 기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기재부 국·과장 간부들도 많아졌다. 특히 경제정책국과 정책조정국, 세제실, 예산실 등은 바쁜 업무에도 적극적으로 정책을 홍보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부서들의 특징은 국민들과의 접점이 많은 정책을 펼치는 곳이라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여전히 정책 홍보에 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기재부 내 부서들이 상당수라는 뜻이다. 재정정책·관리국, 국고국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부서는 상대적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적은 ‘그들만의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 후속 홍보엔 일절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자들이 정책 관련 문의를 위해 여러 차례 연락해도 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재정을 담당하는 한 부서의 과장은 기자들의 잇따른 정책 관련 질문에도 묵묵부답이다. 전화를 걸어도, 문자를 남겨도 일절 응답조차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작 관련 기사가 보도된 후엔 “왜 그렇게 썼냐”며 되레 윽박지르는 간부들도 더러 있다. 윤 대통령이 정책 홍보를 계속 강조했지만 정작 기재부에선 대놓고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부처에선 기재부의 이런 행태가 권한이 많은 예산과 세제를 주무르는 ‘힘센’ 부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기재부 대변인실은 이런 점을 인지하고 있다. 대변인실 관계자는 “각 부서 과장들에게도 정책 홍보를 꾸준히 강조하고 있지만, 어려운 점이 분명히 있다”고 밝혔다.
‘불친절하다’는 평가받는 기재부 공무원들도 할 말은 있다. 기자와 어렵게 연락이 닿은 한 과장급 간부는 “업무 때문에 너무 바쁜 와중에 기자들의 정책 관련 질의에 일일이 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일부 젊은 기자들은 제대로 핵심을 모르면서 아무 것이나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경제정책국 관계자는 “바쁘다는 이유로 본인이 맡은 정책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무원으로서의 자세가 안 돼 있는 것”이라며 “오히려 바쁜 간부들일수록 정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최상목 부총리도 틈만 나면 정책 홍보를 강조하고 있다. 서울과 세종에 오가는 바쁜 일정에도 점심·저녁때마다 기자들을 만나 정책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사무관들에게서도 업무 보고를 받는 등 공무원들과의 접점도 늘려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 지시뿐 아니라 최 부총리도 정책 홍보를 위해 직접 뛰어다니는 상황에서 과장급 간부들이 홍보를 외면한다는 것은 직무 유기와 다름없다”며 “정책 홍보에 소홀한 간부들에 대해선 인사 평가 때 감점을 주는 방안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