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파기환송후 4년만 선고…원심 징역 4년에서 절반으로 깎여
일부 직권남용 혐의 무죄…김기춘 "재상고해서 다시 판단 받겠다"
'블랙리스트' 김기춘 징역 2년으로 감형…조윤선은 1년2개월(종합)
김기춘(84)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형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 환송하면서 직권남용죄를 보다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한 데 따른 판결이다.

서울고법 형사6-1부(원종찬 박원철 이의영 부장판사)는 24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조윤선(57)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는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장기간에 걸친 이념적 성향과 정치적 입장 등에 따른 차별적 지원으로 다수 인사들이 상당한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겪는 등 헌법 질서를 훼손하고 법치주의가 후퇴됐다"며 "개인적 이익을 추구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상당 기간 재판이 지연된 점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재판에 성실하게 출석한 점을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기로 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나 예술가 등의 이름과 지원 배제 사유를 정리한 문건(블랙리스트)을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토대로 정부 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배제하도록 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김 전 실장의 지원 배제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고, 2심에서는 1급 공무원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 등이 추가로 인정돼 징역 4년으로 형량이 늘었다.

조 전 수석도 1심에서는 국회 위증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직권남용 혐의 일부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2020년 1월 직권남용죄에 관한 법리 오해와 심리 미진을 이유로 사건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형법 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한다.

당시 대법원은 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등 소속 직원들에게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을 각종 정부 지원 사업에서 배제하도록 한 혐의가 '직권 남용'에는 해당한다고 봤지만, 죄가 성립하는 또 다른 요건인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시를 받는 쪽이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이라면 법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지위기 때문에, 그 법령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더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

아울러 김 전 실장 등이 문예기금 지원심의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예술영화 지원 및 도서 관련 지원에서 특정인을 배제하게 한 혐의 등을 포괄일죄(하나의 범죄)로 본 부분도 별개의 범죄로 봐야 한다며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또한 두 사람의 퇴임 이후 범행에 대해서는 공범으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대법원은 봤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다시 심리한 결과 일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무죄로 뒤집었다.

구체적으로 공모사업 신청자 명단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송부하도록 한 행위 등은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문예위 책임심의위원 선정 부당 개입, 문예기금 지원심의 일부 부당 개입, 예술영화 지원사업 지원 배제, 일부 도서 관련 지원 배제를 무죄로 판단했다.

이번 선고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후 4년, 심리 시작 이후 3년 만에 나온 선고다.

파기환송심은 공소유지를 담당하던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이른바 '가짜 수산업자 금품수수' 사건에 휘말려 사임해 멈춰 섰다.

2022년 12월 특검법 일부 개정으로 공소유지 주체가 특검에서 서울고검장으로 승계되면서 지난해 7월 재판이 겨우 재개됐다.

김 전 실장은 이날 선고 뒤 "(재)상고해서 다시 판단을 받겠다"는 짤막한 입장을 밝혔다.

조 전 장관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