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예술의전당 신년콘서트…'그리운 금강산'·'아리랑' 선사
'천상의 소리' 빈소년합창단이 들려준 순수한 음악
세일러 카라가 달린 흰색 상의와 짙은 남색 바지의 유니폼을 단정히 입은 소년들이 맑은 목소리로 성가를 부르며 무대의 양 끝에서 걸어 나왔다.

빈소년합창단의 신년콘서트가 열린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다소 경색된 분위기의 여느 클래식 음악 공연과는 달리 웃음이 넘쳤다.

공연 중 소음에 민감한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보기 드문 어린이 관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526년 역사를 지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합창단인 오스트리아의 빈소년합창단은 변성기 이전의 소년들로 구성돼 있다.

오는 28일까지 이어지는 한국 투어에는 8살부터 14살까지의 소년 21명이 함께한다.

무대에 놓인 피아노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나눠 선 소년들은 '천상의 소리',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청아한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음악의 순수한 기쁨을 선사했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관객들을 지휘자의 카리스마나 연주자의 기교 등에 신경 쓸 겨를 없이 오롯이 음악 자체에 집중하게 했다.

이날 공연은 '온 스테이지'(on sage)라는 부제에 맞춰 주요 레퍼토리인 성가는 물론 뮤지컬, 오페라, 영화에 쓰인 곡들과 각국 민요 등으로 꾸려졌다.

빈소년합창단은 1부에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모차르트의 유명한 세레나데인 '작은 밤의 음악'을 합창단 편곡 버전으로 불렀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등 현악기 연주로 익숙한 멜로디가 피아노 반주 없이 오직 '목소리'라는 악기만으로 연주되면서 특별함을 안겼다.

'천상의 소리' 빈소년합창단이 들려준 순수한 음악
영화 '시스터 액트'에서 성가대가 유쾌하게 노래를 부르는 명장면에 삽입된 '하늘의 여왕'은 공연의 재미를 더했다.

무대 조명이 어두워지자 고개를 숙이고 경건하게 도입부를 부르던 아이들은 피아노의 신호가 떨어지자 손뼉을 치며 환희에 찬 합창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또 빈 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왈츠 곡은 합창단의 목소리로 리듬감을 입었다.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한 슈트라우스 2세의 '조간신문 왈츠'는 각기 다른 음역의 목소리가 펼쳐지면서 왈츠 특유의 우아하고 경쾌한 느낌이 잘 살아났다.

2부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신년에 불리는 '슈슈드리크', 세르비아 민요 '니스의 뜨거운 온천', 뉴질랜드 민요 '웰러맨' 등 각국의 노래가 특색을 드러냈다.

특히 한국 가곡 '그리운 금강산'은 빈소년합창단 특유의 높은 고음으로 그리움보다는 희망과 기대감이 묻어나게 불리며 색다른 느낌을 줬다.

한국 노래를 준비해 온 합창단에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를 길게 보냈다.

감동은 앙코르곡에서도 이어졌다.

11살의 한국 단원인 구하율 군이 기타 연주에 맞춰 솔로로 부른 '아리랑'은 다른 단원들의 허밍과 화음이 얹어지면서 뭉클함을 안겼다.

이날 빈소년합창단 단원들은 앙코르 두 곡까지 스무 개가 넘는 곡을 소화하면서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무대를 즐겼다.

공연 직후 열린 사인회에서는 무대에서와는 달리 개구쟁이 같은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았다.

다만 이날 공연장은 동일한 좌석이 각각 다른 사람에게 예매되는 중복티켓 사례가 다수 발생하면서 공연 시작 직후까지 관객들이 자리를 옮겨 다니는 혼선을 빚어 아쉬움을 샀다.

'천상의 소리' 빈소년합창단이 들려준 순수한 음악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