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식이요법에 솔깃할까…신간 '불안을 먹는 사람들'
할리우드 스타 귀네스 팰트로는 2019년 펴낸 책 '클린 플레이트: 먹고, 리셋하고, 치유하라' 표지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등장한다.

그는 "이 책 어디에서도 술이나 카페인, 유제품, 글루텐, 가짓과(科) 식물, 땅콩, 가공식품, 설탕, 붉은 고기, 콩을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식이요법을 토대로 한 여러 가지 클렌스(해독)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에는 2008년 식생활 등에 관한 뉴스레터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구프'를 만들어 참살이(웰빙)나 패션 등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팰트로의 전면 사진 31장이 실렸다.

대부분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책에 등장한 팰트로는 마치 자신이 제시한 클린 플레이트 식단을 선택하면 체형이 달라지고 완벽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독자에게 암묵적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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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식생활에 관해 제안하는 이는 팰트로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저탄수화물 식이요법, 대체식이요법, 케톤 생성 식이요법, 앳킨스 식이요법 등을 소개하는 블로그나 사이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점에는 각종 식이요법에 관한 책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영양 인류학자인 재닛 츠르잔과 임상심리학자인 키마 카길은 최근 번역 출간된 '불안을 먹는 사람들'(루아크)에서 왜 식이요법이 유행하는 것인지, 식이요법에 문제점은 없는지 등을 파고든다.

사람들은 개인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특정 식이요법을 골랐다고 생각하지만, 그 요법이 신체적·경제적·인지적 측면에서 합리적인 것이 되도록 만드는 사회체계가 있기 때문에 선택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견해다.

책은 음식 배제 식이요법, 음식 중독, 클린 이팅(Clean Eating), 팔레오 식이요법 등을 차례로 뒤집어 보며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음식 배제 식이요법은 과체중과 비만의 원인으로 꼽히는 한 가지 다량 영양소를 식사에서 배제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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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 방법이 열량을 제한하기 때문에 체중을 빠르게 줄이지만 줄어든 체중을 유지하는 게 힘들고 장기적으로는 건강에 좋은 균형 잡힌 식단을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음식 배제 식이요법을 택하면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힘들고 결과적으로 오래 지속할 가능성이 작아진다.

음식 배제 식이요법을 하는 이들은 특별 음식 또는 유료 회원권을 구입하거나, 영양 전문가 혹은 개인 트레이너에게 돈을 지출해야 하며 결국에는 음식을 추가하게 된다고 책은 지적한다.

특히 탄수화물을 전혀, 혹은 거의 섭취하지 않는 식이요법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건강에 좋지도 않다고 경고한다.

단순당 섭취를 줄이는 것은 좋은 일일 수도 있지만 장기간 탄수화물을 많이 줄이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고 환경적인 측면을 거론한다.

동물 단백질 섭취가 늘어나면 육류를 많이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탄수화물 섭취량을 낮추되 견과류나 콩류 같은 식물 단백질을 섭취하는 에코-앳킨스 식이요법 등을 사용하면 안전하게 체중을 줄일 수 있다고 예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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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요법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개념 중 하나가 음식 중독이다.

설탕 중독, 탄수화물 중독과 같은 용어로 위기감을 일으키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식이요법을 제안하는 식이다.

하지만 책은 이와 같은 식품 중독이라는 개념 자체에 의구심을 제기한다.

매우 맛있는 초가공식품(쿠키, 크래커, 설탕이 많이 든 간식처럼 고도로 정제된 식품)이 뇌의 쾌락 중추를 보상하고 과식을 부추긴다는 증거가 있지만 이는 초기호성이 음식 섭취를 부추긴다는 의미일 뿐이며 그 경로가 과학적인지 아닌지는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선을 긋는다.

먹기가 중독성이 있는 행동이 될 수 있다는 주장과 식품의 특정 영양소에 생물학적으로 중독되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음식 섭취를 스스로 통제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을 중독자로 생각할 수 있으며 그들이 겪는 고통을 존중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응원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들은 의견을 제시한다.

클린 이팅은 대체로 위험한 것으로 알려진 음식 첨가물을 줄이고 자연식품, 유기농식품, 최소한으로 가공된 식품을 더 많이 먹도록 하는 식이요법으로 묘사된다.

식품 첨가제나 약품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은 일반인이 클린 이팅을 선택하게 유도하는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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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이팅은 개념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가공식품을 피하자고 하면서 제조식품, 포장식품, 정크푸드를 가공식품으로 여기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날 것이 아닌 모든 음식은 가공식품이다.

요리된 음식, 염장된 음식, 훈제되거나 보존된 음식이 모두 가공식품인 셈이다.

첨가제, 설탕, 유제품, 글루텐이 없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클린 이팅이라고 규정하는 자료도 있다.

클린 이팅에 관한 책들이 내놓은 조언이나 요리법 등은 자연 상태에 가까운 식품 섭취를 권하며 안전하다고 책은 평가한다.

하지만 어떤 클린 이팅 식단은 평균적인 여성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단백질을 제공하도록 설계돼 있고 드레싱 때문에 지방 함량도 높다고 지적했다.

식단에 포함된 성분이 다양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음식에 대한 불안이 지나친 클린 이팅 추종으로 변질할 경우 현실에서는 불균형한 식생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책은 경고한다.

클린 이팅에 대한 믿음이 영양학적으로 건강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심리적 위안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견해다.

우리는 왜 식이요법에 솔깃할까…신간 '불안을 먹는 사람들'
팔레오 식이요법은 인류가 구석기 이전에 먹었다고 상상되는 음식 혹은 그것과 비슷한 현대의 음식을 먹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이를 지지하는 이들은 인간의 몸이 농업 기술이나 식품 공급 체계만큼 빨리 진화하지 않았다며 현대의 식단이 아닌 옛 식단으로 돌아가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팔레오 식이요법을 옹호하는 이들은 가공하지 않은 야생 상태의 음식을 더 많이 식단에 넣어야 하고 육류를 방목하거나 사냥해서 잡아야 한다고 본다.

유제품을 피해야 하며 곡물을 비롯한 다른 탄수화물도 먹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선 옛날 식단을 재구성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잡식성인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매우 다양한 음식을 먹고 생존했으므로 식단을 그대로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고고학 지식의 한계도 옛 식단을 따라 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우리는 왜 식이요법에 솔깃할까…신간 '불안을 먹는 사람들'
저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식이요법이 시대와 장소의 산물이며 개인의 심리적 갈망을 충족한다고 본다.

특히 상업적인 식이요법이 넘치는 시대에 독자들이 이를 비판적으로 대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울 것을 제안한다.

"웰니스와 자기돌봄산업은 우리가 개인과 지구,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 무엇을 먹어야 할지 알려주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리고 대개 상업적이다.

(중략) 우리가 식이요법을 믿는 이유들이 음식에 대한 생각과 늘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졌길 바란다.

"
강경이 옮김. 560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