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워너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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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전 개봉한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을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윌리 웡카는 곧 조니 뎁이요, 조니 뎁은 윌리 웡카임을. 여기에 팀 버튼 감독 특유의 몽환적이면서 오싹한 연출이 더해지며 영화는 고전 명작의 성공적인 재탄생으로 호평받았다. 원작은 영국 소설가 로알드 달이 1964년 출간한 동명의 소설이다.

조니 뎁을 능가할 웡카는 없을지언정 그도 소화하지 못할 웡카가 있다. 바로 꿈 말곤 쥐뿔도 없었던 20~30대의 풋풋한 웡카다. 원작에 등장한 적 없는 젊은 웡카는 오직 상상으로만 구현할 수밖에 없다. 작은 아씨들(2019), 듄(2021) 등에서 호연하며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떠오른 티모시 샬라메(29)가 이걸 해냈다.

이달 국내 개봉하는 영화 '웡카'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작품의 앞선 이야기를 다룬 속편) 영화로, 패딩턴 시리즈를 연출한 폴 킹이 메가폰을 잡았다. 세계 최고의 초콜릿 기업을 일군 윌리 웡카의 창업기를 다루는 이 영화에서 샬라메는 시종일관 로맨틱한 미소와 서정적인 눈빛으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조니 뎁은 신비스럽고 괴짜같은 웡카를 그렸다면, 샬라메의 젊은 웡카는 몽상가적이고 순수한 면모가 극대화 됐다. 뮤지컬 영화인 만큼 노래와 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때마다 샬라메는 다채로운 표정과 달콤한 목소리, 그리고 준수한 춤동작을 선보이며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사진=워너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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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전형적인 창업 서사다. 마술사이자 쇼콜라티에인 웡카는 '디저트의 성지' 달콤 백화점에 자신의 초콜릿 가게를 내겠다는 포부로 도시에 상경한다. 창업자 치곤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에 글도 읽지 못하는 그지만 주변 인물들의 조력으로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장사에 성공하는 게 핵심 이야기다.

영화 속 웡카는 현실의 스타트업 창업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기존 방식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혁신하려는 도전자가 바로 웡카다. 묽은 초콜릿만 가득하던 시장에 전에없던 마법 초콜릿을 팔며 뜨거운 호응을 얻게 된다. 하지만 시장에는 혁신을 저지하는 기득권 세력(초콜릿 연대)이 있다. 이들은 자본으로 사회의 제도와 윤리를 매수해 경쟁자를 차단한다. 기득권 세력은 웡카를 음해하지만 결국 웡카는 실력과 주변의 조력으로 극복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창업자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창업과 맞닿아 있다.

그가 파는 마법 초콜릿은 꿈과 희망이다. 그래서 웡카의 초콜릿을 먹으면 때로 남몰래 좋아하던 이성에게 연락할 용기를 얻게 되고, 버려진 고아 누들(칼라 레인)에게 '구름 뒤 한 줄기 빛' 같은 긍정심을 주기도 한다. 웡카가 파는 초콜릿이 혁신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의 또 다른 축은 가족애다. 원작의 주요 테마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듯, 이 영화에서도 가족애와 동료애를 다룬다. 초콜릿은 웡카와 세상을 떠난 그의 엄마를 이어주는 추억의 매개체인 동시에, 가까운 사람과 행복을 나누는 수단으로 그려진다.
사진=워너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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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파 룸파(휴 그랜트)는 시종일관 웃음을 던진다. 92㎝ 신장의 움파 룸파 족으로 분한 휴 그랜트는 중독성 있는 노래와 춤으로 극 중 최고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뮤지컬 영화답게 화려한 군무, 상상력으로 가득한 영화의 아름다운 미장센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동심의 세계로 인도한다. 극 중 웡카와 누들이 풍선을 타며 노래하는 장면은 영화 라라랜드(2016)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커플 댄스 장면에 견줄 만큼 낭만적이고 달큰하다.

뮤지컬 영화 특유의 하이 텐션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소소한 개연성은 영화의 판타지 성을 더욱 부각한다. 이런 이유로 촘촘한 서사나 스토리의 개연성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자는 '허무맹랑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이들을 향해 영화 속 인물들은 말한다. "모든 위대한 일은 상상에서 출발했다"고. 31일 개봉, 상영 시간은 116분.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