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토마시 브라우너.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제공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토마시 브라우너.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제공
“드보르자크의 음악은 곧 체코인의 사고이자 언어, 표현입니다. 구태여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드보르자크의 선율을 들으면 우리가 어떤 감정과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단번에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음악이 가진 특별한 힘이니까요.”

유럽 클래식 음악계에는 풍부한 보헤미안 색채와 호소력 짙은 사운드로 주목받는 실력파 오케스트라가 있다.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프라하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체코를 대표하는 악단으로 꼽히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얘기다. 프라하 심포니는 1934년 창설된 이후 바츨라프 스메타체크, 이르지 벨로흘라베크, 피에타리 잉키넨 등 명지휘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국제적 명성을 쌓아왔다. 소니 클래시컬, 수프라폰 등 세계 유수 클래식 레이블을 통해 자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녹음한 음반을 여러 차례 내놓으면서 평단의 호평을 얻은 전력도 있다.

90년 역사의 체코 프라하 심포니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17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연주한 뒤, 1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오른다. 공연 레퍼토리는 그 나라의 전설로 불리는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작품으로 모두 채워진다. 모음곡 ‘전설’로 막을 연 뒤 2014 파블로 카살스 콩쿠르 우승자인 첼리스트 문태국 협연으로 첼로 협주곡을 들려주고,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로 문을 닫는다.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토마시 브라우너. (c)Jan Kolman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토마시 브라우너. (c)Jan Kolman
16일 한국경제신문과 서면으로 만난 프라하 심포니 음악감독 토마시 브라우너(46)는 “모든 오케스트라는 고유한 스타일과 표현,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연주하는 것) 등을 가지고 있는데, 프라하 심포니의 음악적 성격과 체코 정통 사운드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드보르자크의 음악”이라며 “우리가 어떤 악단인지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올 드보르자크’ 프로그램을 들고 온 것”이라고 했다.

브라우너는 그중에서도 특히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했다. 드보르자크가 조국 체코를 떠나 미국이란 신세계를 발견했을 때 느낀 희열과 환희, 두려움, 충격을 녹여낸 작품이다. 흑인 영가, 인디언 음악 등 미국 민요 정신과 고향에 대한 향수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게 특징이다.

“드보르자크에게 이 작품은 바다를 건너 신세계로 향하는 그의 첫 여정을 상징합니다. 우울과 기쁨을 모두 담고 있는 매혹적인 선율과 풍부한 상상력, 독특한 리듬은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죠. 그의 교향곡을 연주할 때면 전 드보르자크가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지, 어떻게 인류를 포용하고, 환상의 세계를 열고자 했는지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청중에게 가감 없이 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죠.”
지휘자 토마시 브라우너가 이끄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c)Jan Kolman
지휘자 토마시 브라우너가 이끄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c)Jan Kolman
브라우너는 프라하에서 나고 자란 ‘체코 토박이’ 지휘자다. 오보이스트였던 아버지를 따라 오보에를 전공했지만, 레너드 번스타인의 무대를 보고 지휘에 매료됐다.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를 공부한 뒤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이름을 알린 그는 플젠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2013~2018년), 보후슬라프 마르티누 필하모닉 상임지휘자(2018~2021년) 등을 지내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이젠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페스티벌 등 세계적인 음악 축제에서 꾸준히 초청하는 유명 인사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지휘자로서의 삶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음악에 몰두하고 있는지 등을 찬찬히 풀어냈다. “아버지가 연주자셨던 만큼 아주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은 제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어요. 제가 음악가로 성장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죠.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음악가가 됐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일이고,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단단해질 수 있는 일인지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신비로운 세계에 몸담고 있음에 매일 감사하달까요.”

한국 청중에게 어떤 음악을 들려줄 것이냐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지휘자로서 제가 집중하는 건 연주자 개개인의 진정성 있는 표현을 최대한 끌어내는 겁니다. 악보에 충실한 해석과 연주에 대한 방향성을 지시할 때는 그 누구보다 철저하지만, 무대에 오른 순간만큼은 연주자들이 모든 음을 더 첨예하게 느끼고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지휘자의 역할이죠. 그래야만 청중에게 오래 기억될 만한 특별한 음악적 경험을 불러낼 수 있으니까요. ‘진실성 있는 연주를 들려주는 것’ 그것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요.”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