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의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이의 죽음을 목격한 저자는 죽음을 인정해야만 현재를 의미 있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쇼펜하우어, 오스카 와일드, 빈센트 반 고흐 등 위인들의 유언으로 삶의 의미를 되짚는 책이다. (한윤진 옮김, 포레스트북스, 312쪽, 1만7800원)
“대한민국은 완전 망했네요, 와우!”백발의 외국 학자가 머리를 감싸쥐며 이 말을 비명처럼 외치는 영상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가 한국 방송사와 인터뷰하다가 ‘한국의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말을 듣고 보인 반응이다. 올해 합계출산율은 0.7명 선이 깨지며 0.68명을 기록할 전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윌리엄스 교수는 뭐라고 외칠까.그런데 앞으로 인구, 도시, 경제 규모가 쪼그라드는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축소되는 세계>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세계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라며 성장의 시대에 종언을 고한다. 인구가 고령화되고,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거꾸러지며, 줄어드는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치열해지는 ‘축소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저자 앨런 말라흐는 중국 난징 동남대의 도시 계획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인 도시 계획 전문가다. 그는 쐐기를 박듯 덧붙인다. “한 번 인구가 감소한 나라는 다시 그 수준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인구 감소 추세는 ‘끈적끈적하다(sticky)’라고도 표현하는데, 이는 한국과 일본 대만처럼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국가는 그 추세를 바꾸기 힘들 것이라는 말이다.인구통계학적 추세와 더불어 ‘이주’도 눈여겨볼 키워드다. 이주는 총인구 절대값을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특정 도시의 축소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주는 도시의 인구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사회적 및 경제적 측면에서 도시의 근본적인 구성을 바꿔놓는다.”책은 2050년의 세계와 경제가 어떤 모습일지 예측한다. 결론적으로 “2050년의 세계는 지금보다 여러 측면에서 나빠질 것”이라고 말한다. 지방과 수도권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경제 성장 둔화도 피할 수 없다. 2050년께 글로벌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에 접어들 거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기후변화는 도시의 생사를 가르게 될 것이다.인구가 줄어드니 집은 남아돈다. 가령 일본은 빈집 수가 현재 800만 가구인데 2040년에는 1500만~2000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빈집은 슬럼화되고, 빈집을 허물면 도시의 황무지가 생겨나고 다시 사람들이 떠난다. “결국 부동산 시장이 사실상 기능을 멈추는 수준까지 가게 된다.” 지역 경제가 쇠퇴하면서 지방 정부가 거둬들일 수 있는 세수도 줄어든다. 그 와중에 고령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복지 재정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난다.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총 10장으로 구성된 책인데, 8장에 이르러서야 “축소 도시가 향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문제와 직면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시작한다. 책은 재성장 전략을 추구하기보다는 인구 감소 속도를 늦춰 노동 인구 변화와 연금 수요를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사례들을 보여준다. 미국 오하이오주 영스타운 등이 예시다. 다시 극적으로 인구가 늘어날 거라는 환상을 버리고, 축소 사회에서 분야별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게 낫다는 의미다.책은 지역 경제를 재구성하는 등 지역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규모 학교 활성화, 원격 근무를 전제로 한 이주 정책,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통한 지역 살리기 등은 다소 이상적인 대안이지만 국토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지역과 그곳에 거주 중인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고육책으로 읽힌다.구체적 대안보다 ‘축소되는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패러다임 전환이 매력적이고 문제적인 책이다. 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우리가 계속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결국 정답을 찾게 될 것이다.”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넥슨 김정주, 아이디스 김영달, 해커스랩 김창범, 네오위즈 신승우….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이광형 KAIST 총장 아래서 성장한 1세대 벤처 창업가라는 것이다. 이 총장에겐 늘 선각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융복합이란 개념이 생소하던 2000년대 초반 KAIST에 융합학과인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신설했다. 2010년엔 국내 최초로 과학기술학과 지식재산(IP) 연구 및 교육 기관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설치했다. 인공지능(AI) 혁명이 한창인 2024년 그가 내놓은 <미래의 기원>이 주목받는 이유다.<미래의 기원>은 인간, 지구, 그리고 우주의 역사를 거시적인 안목에서 조망한다. 미래를 헤쳐 나가는 열쇠가 역사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 총장이다. 역사의 시작점을 인간이 아니라 자연으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인간에 방점을 찍은 기존 ‘빅 히스토리’ 서적들과 다르다.세계적 석학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의 저서와 비교해볼 만하다. 그가 쓴 <사피엔스>는 인지 혁명으로 시작한다. 인지 혁명의 과정인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점일 뿐이다. 반면 <미래의 기원>의 시작점은 인류의 탄생에서도 138억 년 더 거슬러 올라간다.책은 3부로 구성됐다. 1부의 주인공은 우주와 자연이다. 우주와 태양계의 탄생, 생명체의 출현을 살핀다. 2부에서는 인간의 진화 과정을 뇌의 진화 관점에서 분석한다. 사상과 종교의 출현, 과학·철학·시민·산업·의료 혁명 등 역사의 분수령도 조망한다. 3부에서는 앞으로 100년에 걸쳐 인류에게 특이점(Singularity)을 선사할 미래 기술을 소개한다. AI, 유전자 가위, 줄기세포,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등이다.초미세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연결하는 통찰력이 발군이다. “전자는 우주에서 가장 동적이고 가장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다. 전자와 전자기력 때문에 원자와 분자가 만들어졌고 모든 화학 원소가 고유한 특성을 갖는다. 그리고 지구의 생명체 출현, 유기물을 만드는 광합성, 생명체의 신경신호 전달, 뇌의 기억과 지능의 발달, 언어의 출현과 현대 문명 등 모든 인간 활동이 전자를 활용한다. 앞으로도 인간은 이런 전자 활동을 기반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갈 것이다.”김동주 기자 djddj@hankyung.com
신간 <결국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들의 비밀>은 “아니요(No)”라고 말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요’를 쉽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남들로부터 ‘아니요’라는 말을 듣는 것을 개의치 않아 하기 때문이다.책을 쓴 조이 챈스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요’라고 말해도 죽지 않는다. ‘아니요’라는 말을 들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뭔가를 부탁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설득과 협상에 관한 예일대 인기 강의를 토대로 한 이 책은 사람들에게서 ‘그래요’라는 말을 끌어내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다. ‘점잖은 초식공룡’도 그런 전략 중 하나다. 남에게 부탁한 후 대답을 종용하지 않고, 참을성 있고 정중하게 기다리는 방법이다. 대신 그 사람의 시야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예약이 꽉 찬 비행편에서 자리를 얻어낼 수도 있다. “조용히 서 있되 몸은 약간 앞으로 기울이고 마치 기도하는 모습처럼 보이도록 손을 느슨하게 쥐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탑승 수속 직원의 시야 주변에 머무른다.그 직원이 당신의 존재를 놓치지 않을 만큼 가까이, 그러나 그 직원의 시야를 꽉 채울 만큼 너무 가깝지는 않게 말이다. 눈은 차분하게 그 직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탑승 수속 직원이 당신에게 좌석 번호를 건네준다. 점잖은 초식공룡은 늘 좌석 번호를 얻는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