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약품·레이저 장비 등 동원…"스프레이 낙서 피해 범위 커"
남은 흔적 4월 이후 마무리…"문화유산 소중함 깨닫는 계기 되길"
추위에 맞서 색 지우고 표면 다듬고…'낙서' 사라진 경복궁 담장
"어, 가림막 치우네", "다 지웠나 봐".
4일 오전 8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쪽문 부근. 경복궁 담장을 따라 광화문을 향해 달리던 무리의 누군가 말했다.

현장에 있던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소속 직영보수단 10여 명이 가림막을 걷어내자 지나가던 시민들의 발걸음도 멈춰 섰다.

차 안에서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주목한 건 다시 말끔해진 모습을 드러낸 경복궁의 담장이었다.

지난해 12월 두 차례 '낙서 테러'로 훼손됐던 경복궁 담장이 스프레이 자국을 제거하는 긴급 보존 처리 작업을 끝내고 일반에 공개됐다.

낙서 사건이 발생한 지 19일 만이다.

추위에 맞서 색 지우고 표면 다듬고…'낙서' 사라진 경복궁 담장
실제로 둘러본 쪽문 근처 담장은 붉은색과 푸른색 스프레이 자국이 지워진 상태였다.

가까운 거리에서 살펴보면 돌 곳곳에 스프레이 흔적이 일부 남아 있었지만, '영화 공짜' 문구와 함께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 글은 모두 사라졌다.

영추문 육축(陸築·성문을 축조하기 위해 큰 돌로 만든 구조물) 상황도 비슷했다.

정소영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염 물질이 표면에 착색되거나 내부로 스며들지 않도록 오염 물질 제거와 색 맞춤 작업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정 과장은 "석영 재질은 레이저 클리닝(세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마치 치과에서 치석을 제거하듯이 하나하나 오염된 부분을 제거했지만, 일부 색이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추위로 작업이 중단된 시기를 빼면 총 작업 기간은 8일.
추위에 맞서 색 지우고 표면 다듬고…'낙서' 사라진 경복궁 담장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와 국립고궁박물관 소속 보존 처리 전문가들이 매일 30명씩 투입됐으나, 작업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석조 문화유산 전문가인 이태종 국립문화재연구원 학예연구사는 "가장 어려웠던 게 추위"라며 "영하권 날씨에 기존 방법으로는 낙서를 제거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보통 페인트 낙서를 지울 때는 시너 등 화학 약품을 묻히고 증기를 분사해 세척하는 방식을 많이 쓰지만, 추운 날씨 탓에 약품 사용이나 작업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1975년에 쌓은 국립고궁박물관 좌측 담장은 석재 자체가 오래된 탓에 레이저 기기로 미세한 틈에 낀 스프레이 자국을 지우는 작업을 수십 차례 반복해야 했다.

이태종 학예연구사는 "스프레이가 생각보다 깊이 침투해서 작업이 쉽지 않았다"며 "피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빠르게 응급 복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떠올렸다.

추위에 맞서 색 지우고 표면 다듬고…'낙서' 사라진 경복궁 담장
일단 큰 고비는 넘겼지만, 복구 작업을 끝낸 것은 아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동절기라는 점을 고려해 응급 복구 위주로 작업을 하다 보니 현재 80% 정도 진행했다"며 "표면 상태를 살펴본 뒤 보존 처리 작업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2단계 보존 처리 과정은 4월 이후에 이뤄질 전망이다.

출근길에 늘 경복궁을 지난다는 직장인 김진영 씨는 "추운 날씨에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는데 다시 제 모습을 찾은 것 같아 다행"이라며 낙서 행위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직장인 이창민 씨는 "누군가 가벼운 마음으로 한 낙서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생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다들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위에 맞서 색 지우고 표면 다듬고…'낙서' 사라진 경복궁 담장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