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삭 주저앉은 주택·쩍 갈라진 도로…전쟁터 같은 日노토반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日전역서 유일 '진도 7' 강타 이시카와현 시카마치…끊긴 도로에 구글맵 시간은 '무용지물'
가드레일 들이받은 차들 재난영화 방불…파괴된 마을 둘러보는 기자에 경찰 "모두 불안해하니 조심하라"
스마트폰에서 갑자기 흘러나온 "지진입니다, 피하세요"…여진에 승용차가 놀이공원 시설처럼 좌우로 요동쳐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한 일본 혼슈 중부 노토(能登)반도는 폭격당한 전쟁터를 떠올리게 했다.
기자는 지진 발생 이틀이 흐른 3일 노토반도 중앙에 자리 잡은 이시카와현 시카마치(志賀町)를 찾았다.
인구 2만명에도 못 미치는 작은 해안가 시골 마을인 시카마치는 강진이 발생한 당일 일본 전국에서 가장 강한 '진도' 7이 유일하게 관측된 지역이다.
일본 기상청의 지진 등급인 진도는 절대 강도를 의미하는 규모와는 달리 지진이 일어났을 때 해당 지역에 있는 사람의 느낌이나 주변 물체 등의 흔들림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상대적 개념이다.
진도 7은 서 있기가 불가능하고 기어서 움직여야 할 정도이며 몸이 내동댕이쳐질 수 있는 강도의 흔들림이다.
도쿄에서 약 400㎞ 떨어진 이시카와현 현청 소재지인 가나자와시에서 시카마치까지 들어가는 길은 험난했다.
오전 일찍부터 시 곳곳을 돌며 렌터카를 빌리려고 했지만, 지진 때문에 수요가 갑작스럽게 늘면서 렌터카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한 대형 렌터카업체 관계자는 "정부에서 지진 대응을 위해 렌터카를 요청해서 일반 시민이 빌릴 수 있는 수량이 적다"고 이유를 귀띔했다.
한 소규모 업체에서 어렵사리 빌린 렌터카를 타고 구글맵에 의지해 강진 피해 현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기자는 시카마치까지 가는 80㎞ 내내 이번 강진의 위력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지진의 파괴력에 노토반도로 가는 고속도로는 모두 폐쇄됐고 언제 통행이 재개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선택지는 국도밖에 없었다.
국도도 안전해 열어둔 것은 아니었다.
국도마저 폐쇄하면 모든 접근로가 봉쇄되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란 것을 출발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시카마치까지 구글맵 상으로는 1시간 40분이면 도착한다고 나왔지만, 실제 걸린 시간은 3시간 반이 넘었다.
마을 쪽으로 가는 길에서도 곳곳에서 지진 피해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카마치 주변 국도는 가뭄에 마른 논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아스팔트는 중간중간 꺼져 있거나 위로 치솟아서 차량 속력을 줄이거나 심한 곳에서는 멈춘 뒤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했다.
오전부터 내린 많은 비로 도로마저 미끄러워 차들이 거북이처럼 꼬리를 물고 운행했다.
운행 도중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2개 차선 중 한 차선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는 승용차가 있는가 하면 도로 중간에 버려진 차들도 보였다.
재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이었다.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쉽사리 지쳐버린 터라 잠시 쉬려고 한 편의점에 들렀지만, "지진으로 휴업한다"는 글을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실망감을 달래며 차에 오르려는 순간 스마트폰에서 긴박한 지진 알림이 울렸다.
이날 오전 노토반도에서 규모 5.5의 여진이 발생한 것이었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의 스마트폰에서 일제히 "지진입니다.
피난하세요"라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다행히 큰 흔들림은 아니었으나 지진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는 공포에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어렵사리 도착한 시카마치 마을 여기저기에는 폭격을 맞은 듯 집이 폭삭 주저앉은 곳이 많았다.
또 지진으로 전신주가 넘어지다가 전선에 간신히 걸려 있는 모습도 목격됐다.
렌터카에서 내려 마을로 걸어 들어갔다.
인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유령마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낡은 2층짜리 일본 전통 주택은 이번 강진을 이기지 못하고 종잇장처럼 맥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겨우 서 있는 집들도 조심스럽게 내부를 살펴보면 가구는 넘어지고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주인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성한 물건은 하나도 건질 수 없을 성싶었다.
또 많은 주택 앞에는 기왓장이 다수 흘려내려 산산이 깨져 있었다.
시골 마을에 있는 신사의 정문 석물도 떨어져 깨져 있었다.
마을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기자를 보자 경찰차가 멈춰 서더니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한국 기자로 지진 취재 중"이라고 말하며 신분증을 제시하자 경찰관은 "수상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확인했다"면서 "지금 상황에서 모두 불안해하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고 돌아갔다.
피난소인 도기소학교에서 만난 회사원 미야카와 히로유키(42) 씨는 이번 지진에 대해 기자가 묻자 "2∼3분간 너무도 강하게 흔들려서 책장 등 집안 모든 것이 흔들리고 넘어졌다"면서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지진 중 가장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사망자가 31명이나 발생하는 등 이번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와지마시는 시카마치에서 60㎞가량 떨어져 있지만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여러 차례 국도로 접근을 시도했으나 구글맵에서는 통행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는 길도 중간에 끊어져 있어 렌터카를 몰고 돌아오기를 몇 차례 반복해야 했다.
시카마치 마을 취재를 마친 뒤 렌터카 안에서 글을 쓰는 순간에도 여러 차례 강한 여진으로 차가 놀이공원 내 시설처럼 좌우로 요동쳤다.
내가 있는 이곳에 언제든 지진이 다시 몰아칠 수 있다는 공포감. 그것이 이곳 주민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합뉴스
가드레일 들이받은 차들 재난영화 방불…파괴된 마을 둘러보는 기자에 경찰 "모두 불안해하니 조심하라"
스마트폰에서 갑자기 흘러나온 "지진입니다, 피하세요"…여진에 승용차가 놀이공원 시설처럼 좌우로 요동쳐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한 일본 혼슈 중부 노토(能登)반도는 폭격당한 전쟁터를 떠올리게 했다.
기자는 지진 발생 이틀이 흐른 3일 노토반도 중앙에 자리 잡은 이시카와현 시카마치(志賀町)를 찾았다.
인구 2만명에도 못 미치는 작은 해안가 시골 마을인 시카마치는 강진이 발생한 당일 일본 전국에서 가장 강한 '진도' 7이 유일하게 관측된 지역이다.
일본 기상청의 지진 등급인 진도는 절대 강도를 의미하는 규모와는 달리 지진이 일어났을 때 해당 지역에 있는 사람의 느낌이나 주변 물체 등의 흔들림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상대적 개념이다.
진도 7은 서 있기가 불가능하고 기어서 움직여야 할 정도이며 몸이 내동댕이쳐질 수 있는 강도의 흔들림이다.
도쿄에서 약 400㎞ 떨어진 이시카와현 현청 소재지인 가나자와시에서 시카마치까지 들어가는 길은 험난했다.
오전 일찍부터 시 곳곳을 돌며 렌터카를 빌리려고 했지만, 지진 때문에 수요가 갑작스럽게 늘면서 렌터카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한 대형 렌터카업체 관계자는 "정부에서 지진 대응을 위해 렌터카를 요청해서 일반 시민이 빌릴 수 있는 수량이 적다"고 이유를 귀띔했다.
한 소규모 업체에서 어렵사리 빌린 렌터카를 타고 구글맵에 의지해 강진 피해 현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기자는 시카마치까지 가는 80㎞ 내내 이번 강진의 위력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지진의 파괴력에 노토반도로 가는 고속도로는 모두 폐쇄됐고 언제 통행이 재개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선택지는 국도밖에 없었다.
국도도 안전해 열어둔 것은 아니었다.
국도마저 폐쇄하면 모든 접근로가 봉쇄되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란 것을 출발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시카마치까지 구글맵 상으로는 1시간 40분이면 도착한다고 나왔지만, 실제 걸린 시간은 3시간 반이 넘었다.
마을 쪽으로 가는 길에서도 곳곳에서 지진 피해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카마치 주변 국도는 가뭄에 마른 논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아스팔트는 중간중간 꺼져 있거나 위로 치솟아서 차량 속력을 줄이거나 심한 곳에서는 멈춘 뒤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했다.
오전부터 내린 많은 비로 도로마저 미끄러워 차들이 거북이처럼 꼬리를 물고 운행했다.
운행 도중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2개 차선 중 한 차선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는 승용차가 있는가 하면 도로 중간에 버려진 차들도 보였다.
재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이었다.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쉽사리 지쳐버린 터라 잠시 쉬려고 한 편의점에 들렀지만, "지진으로 휴업한다"는 글을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실망감을 달래며 차에 오르려는 순간 스마트폰에서 긴박한 지진 알림이 울렸다.
이날 오전 노토반도에서 규모 5.5의 여진이 발생한 것이었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의 스마트폰에서 일제히 "지진입니다.
피난하세요"라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다행히 큰 흔들림은 아니었으나 지진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는 공포에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어렵사리 도착한 시카마치 마을 여기저기에는 폭격을 맞은 듯 집이 폭삭 주저앉은 곳이 많았다.
또 지진으로 전신주가 넘어지다가 전선에 간신히 걸려 있는 모습도 목격됐다.
렌터카에서 내려 마을로 걸어 들어갔다.
인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유령마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낡은 2층짜리 일본 전통 주택은 이번 강진을 이기지 못하고 종잇장처럼 맥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겨우 서 있는 집들도 조심스럽게 내부를 살펴보면 가구는 넘어지고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주인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성한 물건은 하나도 건질 수 없을 성싶었다.
또 많은 주택 앞에는 기왓장이 다수 흘려내려 산산이 깨져 있었다.
시골 마을에 있는 신사의 정문 석물도 떨어져 깨져 있었다.
마을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기자를 보자 경찰차가 멈춰 서더니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한국 기자로 지진 취재 중"이라고 말하며 신분증을 제시하자 경찰관은 "수상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확인했다"면서 "지금 상황에서 모두 불안해하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고 돌아갔다.
피난소인 도기소학교에서 만난 회사원 미야카와 히로유키(42) 씨는 이번 지진에 대해 기자가 묻자 "2∼3분간 너무도 강하게 흔들려서 책장 등 집안 모든 것이 흔들리고 넘어졌다"면서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지진 중 가장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사망자가 31명이나 발생하는 등 이번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와지마시는 시카마치에서 60㎞가량 떨어져 있지만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여러 차례 국도로 접근을 시도했으나 구글맵에서는 통행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는 길도 중간에 끊어져 있어 렌터카를 몰고 돌아오기를 몇 차례 반복해야 했다.
시카마치 마을 취재를 마친 뒤 렌터카 안에서 글을 쓰는 순간에도 여러 차례 강한 여진으로 차가 놀이공원 내 시설처럼 좌우로 요동쳤다.
내가 있는 이곳에 언제든 지진이 다시 몰아칠 수 있다는 공포감. 그것이 이곳 주민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