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86% 20∼30대, "전세사기는 한 사람 미래 뺏는 사회적 재난"
'금융권 인사와 내통' 내부고발도 나와…금융권 연루 의혹 여전
전문가 "피해자 눈높이 맞는 지원책·전세 제도 교육 필요"
'결혼·출산 포기' 대전 전세사기 1년…피해복구는 '제자리걸음'
올 한 해 대전 지역 전세사기 피해는 인구 규모 대비 인천시 다음으로 발생률이 높았다.

전국에서 1인 가구 비율(38.5%)과 다가구주택 비율(33.5%)이 가장 높은 대전은 다른 지역보다도 전세사기 범행에 취약했다.

지난해 말 전직 방송기자와 부동산 법인 관계자가 연루된 325억원 상당의 깡통 오피스텔 전세사기를 시작으로 지역의 전세사기 피해가 1년 동안 연이어 터져 나왔다.

6개월 전인 지난 6월에는 50대 피해자가 '돈 받기는 틀렸다'고 말한 뒤 극단 선택을 하기도 했다.

피해자 중 86%가 20∼30대로, 지역의 많은 대학생·사회초년생·신혼부부들이 절망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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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피해자들은 지난 7월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대책위)를 출범시키고 단체 행동에 나서고 있다.

여아가 합심해 지난 5월 전세사기특별법을 통과시킨 지 반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현주소는 '제자리걸음'이다.

'결혼·출산 포기' 대전 전세사기 1년…피해복구는 '제자리걸음'
◇ 3천세대 피해규모도 '빙산의 일각'이라는 대전 피해…LH도 속아
국토부에서 인정한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는 지난 19일 기준 899명이다.

피해 접수는 1천400건을 넘어섰다.

대책위에서 파악한 지역 내 피해자 수는 3천300여명, 피해 금액은 4천억원에 육박한다.

지난 10월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까지 속고 피해 규모만 3천억원대에 이르는 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역 부동산 법인회사 대표 김모(49)씨는 LH의 전세 지원 제도를 악용해 159억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로 이미 재판받고 있다.

대전경찰청에서 송치했거나 수사 중인 지역 전세사기 관련 피해금만 1천500억원에 달하고 관련 피해자도 1천370여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임대차 계약이 아직 남은 잠재적 피해자까지 합친다면 피해 규모는 어마어마할 것이란 게 대책위의 설명이다.

부푼 꿈을 안고 대전에 자리 잡았던 사회초년생들과 신혼부부 피해자들은 '쓰리잡'을 하거나 원양어선에 몸을 싣는 등 힘겹게 삶을 버티고 있다.

피해자 김모(33)씨는 "보증금을 빼서 결혼 자금으로 보태려고 했는데 전세사기로 결혼은 커녕 미래를 그리는 삶을 포기하게 됐다"며 "전세사기는 한 사람의 미래를 뺏는 행위이며 사회적 재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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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두 번 죽이는 전세사기범…금융권 연루 의혹 여전
피해자들이 빚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극단 선택을 했던 50대 피해자의 임대인이었던 남모(48)씨와 일가족은 지난 5월 미국으로 출국한 뒤 도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남씨는 남편과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근교 고급 주택에 살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갔다.

경찰은 여권 효력 중지와 적색수배 등 인터폴 공조를 통해 미국에 있는 남씨 검거에 나섰지만 행방은 묘연한 상황이다.

지난 10월에는 40억원대 전세사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피의자가 대구에서 퇴직을 앞둔 공무원을 대상으로 투자 강연을 벌인 사실이 알려졌다.

이들에 대한 피해자들의 분노는 금융권으로도 향했다.

전세사기 피해 건물의 36.5%가 모두 대전 지역 한 새마을금고에서 대출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피해자들은 금융권의 과잉대출이 전세사기를 키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전세사기 혐의로 송치된 한 건설사 대표의 가족이 이 새마을금고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던 점에서 대출 과정에서의 공모 의혹도 제기됐다.

해당 임원은 최근에 내부 감사에서 해당 의혹과는 별개로 다른 비위가 발견되면서 면직처분을 받았다.

'결혼·출산 포기' 대전 전세사기 1년…피해복구는 '제자리걸음'
최근에는 3천억원 규모 전세사기 피의자인 김씨의 부동산 법인회사 직원으로부터 '(김씨가) 금융권 인사와 지속해서 내통했다'는 내부고발이 나오면서 금융권 연루 의혹에 불씨를 지피고 있다.

◇ 무용지물인 현 전세사기특별법…LH 매입도 실효성 지적
전세사기특별법과 피해자 지원 대책에 대한 실효성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대전의 전세사기는 타지역과는 달리 피해 건물 95% 이상이 다가구주택과 다중주택으로, 거주주택 경·공매 유예 및 정지, 피해주택 우선 매수권 부여 등 현 특별법 혜택조차 받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에서 내놓은 지원책 중 하나인 LH의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과 매입임대 전환도 지난달 기준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긴급거주 대책 또한 대전은 부동산 공급 부족으로 LH 임대조차 부족하기 때문에 긴급거주 공간을 찾기가 힘들다.

피해자 30대 최모 씨는 "긴급거주를 신청해도 마땅한 곳이 없어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렸고, 여전히 관련 기관들이 특별법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며 "피해자로 인정받은 지 수개월이 지났으나 나아진 점은 놀라울 만큼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결혼·출산 포기' 대전 전세사기 1년…피해복구는 '제자리걸음'
여야는 6개월마다 특별법 보완 입법을 하기로 했으나 대립 끝에 이달 초 개정안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결국 지난 28일 야당에서 '선구제 후회수'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단독 의결했다.

대책위는 정부가 피해자의 피해액을 먼저 보상한 뒤 추후 경매 등을 통해 회수하는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제일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피해자 눈높이에 맞는 수준으로 피해 구제를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며 "나아가 전세사기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전세제도에 대한 대국민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