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법연구회 회장 출신…다문화가정·미성년자 권리 옹호 판결
민유숙 대법관 퇴임…"대법관 구성 다양화 중요성 확인됐기를"
민유숙(58·사법연수원 18기) 대법관은 6년 임기를 마무리하며 "제가 그동안 대법원에서 수행한 역할로 대법관 구성 다양화의 중요성이 실제로 확인됐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 대법관은 29일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앞으로 성별, 나이, 경력에서 다양한 삶의 환경과 궤적을 가진 대법관들이 상고심을 구성해 대법원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로 더 확고하게 자리 잡길 소망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채 퇴임하는 가운데 이른바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 중심의 대법관 구성보다는 다양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민 대법관은 "6년 전 여성 법관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직무를 시작한 이래 젠더 이슈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에 관한 사건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했다"며 "대법원, 특히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지는 사건에서는 다원적 견해와 가치관에 입각한 의견이 풍성한 논의를 거침으로써 다양한 가치와 대립하는 이해관계 사이의 비교형량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도출된 결론은 궁극적으로 사회가 지향하는 통합과 화합의 방향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다양한 사건에 임할 때마다 엄격한 문언적 해석과 시대변화에 따른 유연한 해석 사이 조화를 중시했다"며 "법률이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입법 공백이 있음에도 명문의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법적 접근을 부정하거나 형식적으로 법률을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쪽의 시각이 아니라 모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우리 사회의 통합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민 대법관은 "모든 소송 관계인이 한편으론 배려를, 다른 한편으론 추상같은 엄정·중립을 요구하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날 선 비판을 서슴지 않는 등 법원 구성원의 긍지를 떨어뜨리는 일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오늘 우리가 받는 안팎의 도전은 법원이 한 단계 더 도약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할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민 대법관은 이날 퇴임한 안철상(66·15기) 대법관과 함께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취임 후 처음 임명 제청한 대법관이다.

서울 출신인 그는 여성 법관으로서 사법부 역사상 첫 영장전담 판사를 지낸 인물이다.

젠더법연구회 회장을 지내는 등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그는 다문화가정과 미성년자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판결을 다수 내놨다.

한국인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외국인에 대해 한국어 소통 능력 부족을 이유로 자녀 양육권을 박탈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는 선고 당시 "한국어 능력이 부족한 외국인보다 대한민국 국민인 상대방이 양육에 더 적합하다는 것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판단"이라 지적했다.

미성년 여성을 형상화한 '리얼돌'의 통관을 막아야 한다는 판단도 내놨다.

대법원은 앞서 수입 리얼돌이 음란물이 아니며 국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나, 민 대법관은 16세 미만 미성년자의 모습인 리얼돌의 경우 사용자가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고 아동에 대한 잠재적 성범죄 위험을 키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관세법상 통관 보류 대상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전에 리얼돌이 미성년자의 신체 외관을 본뜬 것인지를 먼저 심리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