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우위 주장하며 국제무대 존재감 과시…미국과 관계엔 냉각 변수
이-하마스 전쟁에 호기 잡은 에르도안?…서방 '이중잣대' 맹폭
"매일 기자 한 명이 살해당하고 있다.

"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폭격이 시작된 뒤 숨진 언론인 68명을 언급하며 이같이 성토했다.

그러면서 "수년간 언론 자유에 대해 우리에게 설교하는 기관 중 어느 곳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에서 서방이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며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방이 다른 인권 문제에 대해선 '설교'를 늘어놓으면서도 강도 높은 군사작전으로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를 야기한 이스라엘은 두둔하는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고 이슬람 세계 지도자로 부상할 기회가 되고 있다고 26일(현지시간) 분석했다.

특히 가자지구 사망자가 2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지면서 튀르키예 국내에서 서방의 이중 잣대를 비난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더욱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튀르키예 야당 정치인, 반체제 인사, 일반인 사이에서도 시리아 북부 내 무력 사용으로 튀르키예를 제재한 서방이 이스라엘에 대해선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 것 등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이러한 서구를 향한 비난은 국내 정치적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이다.

'튀르키예가 독자적인 길을 가야 한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주장을 강화하는 반면 민주적 성향의 반대파 인사들의 목소리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망명한 튀르키예의 한 시민사회 활동가는 국제사회가 가자지구에서 전투를 멈추지 못하는 것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도덕적 우위를 준다고 지적하면서 "서방엔 부끄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하마스 전쟁에 호기 잡은 에르도안?…서방 '이중잣대' 맹폭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미국, 유럽 등 서방과의 관계도 더욱 얼어붙게 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하마스를 '무자헤딘'(성스러운 이슬람 전사)이라며 지지를 나타낸 바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하마스 옹호로 튀르키예와 이스라엘의 화해 무드가 깨졌고 가까운 미래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사진 찍을 기회도 사라졌다고 짚었다.

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서방 국가들이 튀르키예의 시리아 민간 기반시설 공격을 비난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북부 쿠르드 무장세력과 교전을 벌여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한 비난에 튀르키예도 나서달라는 서방의 요청 역시 미국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 관련 증거를 외면하면 호응을 얻지 못할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한 서방 외교관은 "에르도안은 외부의 비판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가자(전쟁) 이전에도 인권에 대해 말하기가 어려웠다"면서 이제는 급격히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