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불던 지난 19일 밤 11시 서울 강남 학동사거리에 주차된 이동노동자 전용 ‘캠핑카 쉼터’ 4호차를 찾은 대리운전 기사들이 장갑, 핫팩 등 방한용품을 받아가고 있다. 이들은 날씨가 좋지 않으면 경쟁 기사가 적어 원하는 콜을 쉽게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해련 기자
칼바람이 불던 지난 19일 밤 11시 서울 강남 학동사거리에 주차된 이동노동자 전용 ‘캠핑카 쉼터’ 4호차를 찾은 대리운전 기사들이 장갑, 핫팩 등 방한용품을 받아가고 있다. 이들은 날씨가 좋지 않으면 경쟁 기사가 적어 원하는 콜을 쉽게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해련 기자
5년 차 배달기사 전성배 씨(38)는 25일 오전 10시부터 쌓인 눈을 뚫고 오토바이로 음식 배달을 했다. 전씨는 “전날 내린 눈으로 인해 꽁꽁 언 도로를 달리고 건물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미끄러질까 봐 노심초사한다”면서도 “크리스마스는 단가가 가장 많이 뛰는 날인 만큼 무리해서라도 일한다”고 설명했다.

“하루 10시간씩 길에서 보낸다”

이날 배달기사들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에 배달 기본료는 건당 5000~8000원으로 치솟았다. 통상 배달 단가 3000~4000원의 두 배 수준이다. 날이 춥고 휴일이 겹쳐 ‘배달해 먹자’는 수요는 늘어난 반면 이런 추위에도 일하겠다는 이들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배달 플랫폼들은 일정 미션을 해내면 2만5000원을 보너스로 주는 각종 프로모션까지 내걸고 기사를 모집하고 있다.

전씨는 “보통은 한 시간에 2만원대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데, 오늘같이 특별한 날에는 한 시간에 4만~5만원을 벌 수 있다”며 “예전엔 눈·비 오는 날엔 안 나오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벌이가 좋은 날이라는 마음이 더 커져서 꼭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2년 차 배달기사인 최모씨(62)는 “새벽 6시에 나와서 오후 4시까지 51건 뛰어서 25만원 벌었다”고 했다. 그는 “젊은 친구들은 60~70건 뛰어서 30만~35만원은 받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8년차인 강모씨(34)도 “평소보다 1.5~2배 정도 버는 것 같다”고 거들었다.

“수입 주는데 대목에 쉴 수 없어”

체감온도 영하 20도에 달하는 맹추위를 뚫고 달려야 하는 이들은 각종 방한 아이템으로 무장하느라 적잖은 돈을 쓴다. 전씨는 “방한 장갑과 오토바이 핸들 열선 설치하는 데 20만원가량 썼다”며 “손이 따뜻해야 도로에서 장시간 버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운 여름에는 쏟아지는 땀을 견딜 체력이 중요하고, 추운 겨울에는 체온을 덜 빼앗길 아이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밥 먹는 30분을 빼면 밖에서 최소 10시간 있어야 한다”며 “여름엔 체력전(戰), 겨울엔 아이템전”이라며 웃었다. 동료인 최씨는 “내복, 티셔츠, 조끼, 점퍼, 외투까지 다섯 겹을 껴입었고 온몸에 핫팩을 붙이고 다닌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추운 날씨를 견디며 거리에 나서는 이유 중 하나는 콜 건수 감소다. 코로나19 사태 때 폭발적으로 늘었던 배달 수요가 꺾이면서 배달기사 수입은 과거만 못하다. 4년 차 배달기사 위모씨(32)는 “코로나19가 수그러든 후 체감상 콜 건수가 20~30% 줄어든 것 같다”며 “이제는 장마철과 한파 때를 빼면 업무 시간 대비 수익이 잘 나는 날이 많지 않다”고 했다. 전씨는 “주 6일 일하면 월 340만원 정도 버는데 오토바이 비용과 기름값 등을 빼면 손에 쥐는 건 200만원대 후반”이라고 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배달일에 뛰어드는 사람은 전보다 늘었다. 이날 배달일에 나선 기사들은 힘들어도 단가가 높고 경쟁이 덜한 연말 대목에 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자체, 쉼터 마련

배달기사나 퀵서비스기사, 대리기사들의 작은 위안 중 하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달아 마련하고 있는 쉼터다. 소파와 휴대폰 충전기 등이 마련돼 있어 짧게 쉬었다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갑, 핫팩 등 방한용품을 받아갈 수 있어 기사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다.

지난 19일 밤 11시 서울 학동사거리에 마련된 ‘찾아가는 이동노동자 쉼터’에서 만난 6년 차 50대 기사 천성현 씨는 “잠깐 쉼터에 앉아 있는 사이 콜이 잡힐 수도 있어 밖에서 대기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며 “자식이 둘인데 키워야 하니까 춥지만 나왔다”고 했다. 2년 차 대리운전기사 최승학 씨(53)는 “평소에는 버스정류장이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부스에 들어가 대기하는데 올해 전용 쉼터가 생겨서 일 나올 때마다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