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영향력 가졌지만 北체제·정권안정 필요"…北 대화 복귀엔 美 태도가 중요
[장용훈의 한반도톡] 중국은 대북한 영향력을 행사할까
북한이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면서 중국이 대북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9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책임 있는 안보리(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고 북한에 영향력을 보유한 나라"라며 "정부는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 대화에 복귀할 수 있도록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수행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 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언급하며 "중국이 이런 영향력을 발휘해 북한이 무책임하고 위험한 행동에서 발을 떼도록 건설적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동북아시아의 안정이 필요한 만큼 적극적으로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6·25전쟁을 '항미원조전쟁'으로 규정하고 참전해 북한과 함께 유엔군과 맞서 싸웠다.

당시 중국군은 11만 6천명 정도가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북중관계를 '혈맹'으로 평가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북한의 최대교역국이다.

2022년 북한의 무역총액은 15억9천만달러였는데 이 중 96.7%가 중국을 상대로 이뤄졌다.

또 중국은 다칭 유전에서 생산한 원유를 북한에 국제가격 또는 그보다 약간 낮은 가격으로 송유관으로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북한의 경제 사정이 어려울 때 식량이나 비료를 지원하는 주요 국가도 중국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대외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3월 방중해 제일 먼저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고 이듬해 시 주석의 방북까지 총 네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러한 양국관계로 볼 때 중국은 북한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졌을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장용훈의 한반도톡] 중국은 대북한 영향력을 행사할까
하지만 영향력을 가진 것과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전략적 판단의 문제이다.

현재 중국 정부가 대북한 전략의 베이스라인으로 북한체제의 안정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제, 외교, 군사적 자원을 북한 흔들기에 사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특히 미국이 대중국 봉쇄의 전진기지로 대만문제를 활용하는 것과 유사한 맥락에서 중국에게는 북한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 북한 전문가는 "미국 정부가 대중국 봉쇄를 염두에 둔 전략을 추구하며 한미일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북한체제를 흔들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북중관계는 동맹인 한미 또는 미일 관계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주한미군, 주일미군과 달리 중국은 북한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고 있으며 동맹의 유사시 자동군사개입 가능성이 떨어진다.

중국은 6·25전쟁이 끝난 뒤 120만명에 달하던 인민지원군 중 약 25만 명 정도만 북한에 장기주둔을 위해 잔류시키고 나머지는 1955년 말까지 철수시켰으나, 이후 2년 만에 북한과 나머지 병력의 완전 철수에 합의하고 1958년 말까지 철군을 완료했다.

중국과 소련의 후원을 받는 세력과의 권력투쟁이었던 1956년 8월 종파사건 등을 겪으며 중국의 내정간섭에 반감을 가진 북한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북중관계를 동맹 수준으로 보기에 어려운 이런 상황 때문에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달 블링컨 장관의 중국의 대북영향력 강조 발언을 거론하며 "주권평등과 호상존중, 내정불간섭과 호혜를 비롯한 공인된 국제법적 원칙에 준하여 맺어지고 있는 자주적인 주권국가들 사이의 관계발전"이라고 북중관계를 규정했다.

북한이 중국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장한 셈이다.

[장용훈의 한반도톡] 중국은 대북한 영향력을 행사할까
중국의 영향력을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능력으로 규정한다면 사실 중국보다는 미국의 영향력 발휘가 더 중요하다.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이 외교력으로 발휘된 것은 2002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가 불거지면서 6자회담으로 이어지던 시기였다.

미국 정부가 HEU 문제로 중유 공급 중단 등 제네바 기본합의를 파기하자 북한은 2003년 1월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맺은 안전협정도 무효로 한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협의 가능성을 언급하자 중국은 2003년 3월 당시 첸지첸 부총리를 북한에 파견해 3자회담을 제안했고 북한이 이를 수용하면서 같은 해 4월 베이징에서 북중미 3자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은 미국이 북한의 '3자회담 틀 속 북미 양자회담' 요구를 거부하면서 결렬로 마무리됐다.

중국은 같은 해 7월 다시 나섰다.

당시 중국 다이빙궈 상무부부장이 미국에서 파월 국무장관을 만나 '다자회담 틀 속에서 북미 양자접촉'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 들고 북한을 방문해 회담 참여를 끌어냈다.

그리고 첫 6자회담이 같은 해 8월 베이징에서 열렸다.

중국은 미국의 변화한 입장을 들고 북한을 설득해 외교무대로 끌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외교적 중재력의 핵심은 미국이었던 셈이다.

한 전직 외교안보 고위당국자는 "북한의 태도변화를 만드는 데서 가장 중요한 이해 당사자는 한국과 미국"이라며 "한미가 대북정책에서 태도 변화가 없이 중국이 대북 영향력을 행사하길 요구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