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비·해인사·언양읍성도 낙서로 봉변…문화재청 "기술 활용해 재발 방지"

한국의 대표 문화유산인 경복궁 담장을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한 10대 남녀 피의자 2명이 19일 경찰에 검거됐다.

두 사람은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 낙서를 쓰면 돈을 주겠다'는 지인의 제안을 받아 범행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경복궁 담장에 또 다른 두 번째 낙서를 한 20대 남성 A씨는 앞선 경찰 조사에서 '관심을 받고 싶어서 낙서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전적인 목적으로 범행했다는 경복궁 1차 훼손 용의자들의 진술이 나오면서 이번 사건은 문화재 '낙서 테러' 범행 동기 중 돈을 노린 사례로 기록을 남기게 됐다.

최근 20년간 문화재가 낙서로 망가진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그 계기도, 범행 주체도, 피해 규모도 모두 달랐다.

10대 학생의 치기 어린 장난에서 기인한 경우도 있었고, 잘못된 신념을 가졌거나 심신이 미약한 이의 소행, 때로는 70대 노인의 이기적인 행동에 따른 범행이기도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문화재 낙서 사건이 반복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문화재 훼손 시 엄벌과 함께 폐쇄회로(CC)TV 등 기술을 활용한 문화재 감시체계 강화, 국민 인식 제고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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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기시대 암각화부터 병자호란 비석까지 낙서로 훼손
국보, 보물 등 귀중한 문화유산이 낙서로 인해 훼손된 사건은 2000년대 들어서도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병자호란 시기 치욕스러운 역사를 상징하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 소재 삼전도비(三田渡碑) 훼손이 대표적이다.

2007년 2월 30대 남성이 삼전도비 앞면과 뒷면에 붉은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철거', '병자', '370'이라는 글자를 쓴 사건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비석을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페인트를 녹여 없애기 위해 석 달에 걸쳐 복원 작업을 해야 했다.

2011년에는 세계적인 암각화 유물이자 국보인 울주 천전리 각석이 봉변을 당했다.

각석 표면에 누군가 돌로 이름을 새겼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2014년에는 경남 합천 해인사 전각 벽 22곳에 검은 사인펜으로 쓴 한자 21자가 발견됐고, 같은 해 서울 한양도성 성돌 가운데 174개가 분사식 페인트 등으로 오염돼 대대적으로 복원한 일도 있었다.

고려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충남 아산시 읍내동 당간지주와 울산 울주군 언양읍성 성벽도 각각 2015년과 2017년 낙서 테러를 당했다.

특히 언양읍성의 경우 붉은색 스프레이로 미국을 비하하는 내용과 욕설, 의미불명의 글귀 등이 무려 70m 길이로 남겨져 공분을 샀다.

2018년에는 부산 금정산성의 망루와 비석 등 곳곳에 검은 매직펜으로 쓴 낙서가 다수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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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 장난·기도문 등 각양각색…첨단기술·인식 제고 등 재발방지책 고심
문화재를 낙서로 훼손한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삼전도비를 훼손한 30대 남성 백모 씨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백씨는 이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도 2012년 대구 동구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에 불을 지르는 등 반달리즘(기물 훼손 행위)을 이어갔다.

천전리 각석 낙서 사건의 경우 친구 이름을 장난삼아 돌로 새겼다고 한 10대 고등학생이 검거됐다.

다만, 이 사건은 해당 학생이 진술을 번복하면서 불기소로 결론이 났다.

또 해인사 곳곳에서 발견된 괴상한 낙서는 40대 여성 김 모 씨가 악령을 쫓겠다며 벌인 일로 확인됐고, 부산 금정산성 낙서는 70대 등산객 유모 씨가 산을 오르다가 쓰러질 경우 가족이 쉽게 찾아오라고 문화재 곳곳에 글을 남긴 것이었다.

낙서라고 가볍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낸 문화재를 훼손하는 것은 중죄다.

문화재보호법 제82조는 '누구든지 지정문화재에 글씨 또는 그림 등을 쓰거나 그리거나 새기는 행위 등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울주군 언양읍성에 70m 길이의 대형 낙서를 남긴 40대 남성 박모 씨는 문화재관리법 위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러나 또다시 이번 경복궁 낙서 사건이 발생하면서 엄벌만으로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결국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제고가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화재청은 첨단기술을 동원해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가 유산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책 방향은 언제나 변함없다"며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한 CCTV 설치로 불법 침입자 감시시스템을 구축하고, 피해 상황 파악을 위한 드론 도입 등 핵심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