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팔로마 천문대는 우주에서 날아온 영상 한 편을 받았다. 15초짜리 영상 속에는 '태터'라는 고양이가 뛰놀고 있었다. 영상을 쏜 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무인 탐사선. 금속으로 이뤄졌다는 소행성 '프시케'로 가는 비행체다. 탐사선은 지구에서 3000만㎞(지구와 달 거리의 약 80배) 떨어진 우주에서 레이저를 이용해 지구로 단 101초 만에 고해상도 영상을 전송하는 기술을 성공적으로 시연해냈다.

올해 10월 지구를 출발한 탐사선은 2029년 8월 소행성 프시케에 도착할 예정이다. 우주선의 이름도 '프시케'로 지었다. 프시케 탐사선은 소행성이 과학자들의 예측대로 금속으로 만들어졌는지, 금속으로 이뤄진 지구의 핵과 유사한지, 그렇다면 자기장의 원천이자 생명체가 행성에 거주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핵의 비밀은 무엇인지 살필 것이다.

원대한 프시케 프로젝트를 이끄는 수석 연구원은 린디 엘킨스탠턴.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이고 비판적 사고와 협력적 문제 해결을 훈련하고 평가하는 교육 회사 비글러닝의 공동 설립자이자 여성 과학자다.
자료사진. GettyImagesBank.
자료사진. GettyImagesBank.
최근 국내 출간된 <젊은 여성 과학자의 초상>은 엘킨스탠턴이 자신의 도전과 모험을 말하는 책이다. 물론, 프시케 프로젝트의 성공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성공담을 늘어놓기엔 이르다. 하지만 쟁쟁한 과학자들이 뛰어든 프시케 프로젝트를 여성 리더가 이끌기까지, 그 여성 리더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그 자체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과학자로서 엘킨스탠턴은 남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그의 연구는 지질시대와 미래를 넘나들며 우주의 비밀에 다가가고 있다.

우주에는 또 다른 엘킨스탠턴이 존재한다. 소행성 8252 엘킨스탠턴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고, 2022년에 소말리아 엘알리 운석 표본에서 새로 발견된 광물에는 엘킨스탠토나이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고생대에서 중생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발생한 페름-트라이아스 대멸종의 원인을 추정할 지질학적 증거를 밝혀낸 연구로 지질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카네기과학연구소 지구자기학과 최초의 여성 학과장을 지냈다. 2008년에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서 분야별 최고의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NSF 커리어 어워드’를, 2010년에는 과학자와 탐험 전문가의 모임인 익스플로러스클럽(The Explorers Club)에서 ‘로웰 토머스 상’을 수상했다. 2020년에는 지구물리학에 기여한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아서 L. 데이 상’을 받았고, 이듬해 국립과학원(NAS) 회원으로 선출됐다.
"넌 과학자 못돼. 여자니까!"...유리천장 깨고 세계적 우주 과학자 된 앨킨스탠턴 스토리 [책마을]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건 아니었다.

"나는 태양계가 40억 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십억 년 동안 행성들이 궤도를 공전하고 태양이 빛나고 있는데 1분 1초가 무슨 소용인가?"

지질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호감으로 매사추세츠 공과대(MIT)에 진학했던 엘킨스탠턴은 학부생 가운데 여성이 20%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마주한다. 캠퍼스 건물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존경받는 인물들도, 교수들도, 수강생들도 죄다 남성이었다.

여성들이 고위직이나 주도적 학문에서 배제되고, 그래서 다시 여성 과학자가 탄생하지 않는 악순환을 그는 목격했다. 교수의 자택을 방문했던 한 여성 대학원생은 교수의 어린 자녀에게 이런 말까지 들었다. "당신은 과학자가 될 수 없어요! 여자니까!" 여학생 특혜 의혹에 입학처에서 입시 점수를 공개하기까지 했지만, 여성 연구자들의 실력에 대한 의심은 계속됐다.

여기에 개인적 트라우마도 몰려왔다. 어린 시절 겪은 성폭력, 자신을 보호하기는커녕 정서적으로 학대했던 부모에 대한 기억으로 엘킨스탠턴은 괴로움을 겪는다. 이후 학술단체의 대표로 일하게 된 그녀는 조직 내 성폭력 가해자에게 철퇴를 내리고 피해자를 보호한다.

그녀는 '군림하는 리더'를 거부한다. 한 사람의 '영웅'이 연구 전체를 통솔하는 피라미드형 연구 모델을 질문 중심의 프로젝트형 모델로 바꿔놓는다. 위계 대신 각자의 전문성이 발언 기회가 되도록 했다. 그렇게 탐사선은 우주로 쏘아올려졌다.

책 말미에서 엘킨스캔턴은 프시케 프로젝트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썼다. "로켓이 발사되어 프시케 탐사선의 우주여행이 시작되고 나면, 우리는 진정으로 가치 있는 뭔가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를 놀라게 하고, 인류의 지식을 더 먼 곳까지 넓히도록 더 열심히, 더 오래 연구하고 일할 수 있는 기회가 그것이다." 더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필요한 이유도 비슷하다. 더 많은 여성들의 도전과 실패와 성공이, 또 다른 여성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다.

성폭력, 난소암 등 지극히 개인적 경험이 담겨 있는 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여성 과학자로서 승승장구하는 영웅담이나 영민하게 주목받을 자리를 확보해나가는 전략 같은 걸 기대해서는 안 되는 책이다. 다만 어디서도 쉽게 듣지 못할, 여성 과학자로 사는 기쁨과 슬픔이 진솔하게 녹아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