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35개국의 경제 성적을 평가한 결과 한국이 그리스에 이어 2위를 기록한 것은 고무적이다. 작년 4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근원물가지수와 인플레이션 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고용 증가율, 주가 수익률 등을 종합해 국가별 순위를 매긴 결과다. 국민 체감도는 떨어질 수 있지만, 세계 경제가 당면한 복합 위기 속에 한국 경제가 선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때마침 우리 경제의 보루인 수출 전선에 활기가 돌고 있다. 지난달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7.8% 증가해 두 달 연속 플러스 기조를 이어갔다. 무역수지도 26개월 만에 최대 규모 흑자를 기록했다. 10월 제조업 생산이 1년 전보다 1.2% 늘어나고, 반도체가 14.7% 증가한 것이 회복세에 힘을 실었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경제동향(그린북) 12월호’에서 “반도체 등 제조업 생산·수출 회복 등으로 경기 회복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진단한 배경이다.

하지만 전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한국은행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3연속 하향 조정해 2.1%까지 낮췄고,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2.6%로 더 높였다. 공급망 전쟁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유럽과 중동에서 화염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경제안보 지형이 흔들리는 것도 변수다.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5%가 내년 투자 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했거나 계획이 없다고 답하는 현실(한국경제인협회 조사)이다. 이런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으로 지난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8.1%, 기업부채 비율이 173.6%로 급증한 데다 나랏빚마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부채 위기는 시한폭탄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럴수록 강력한 경기 회복 처방과 구조조정 노력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정쟁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각종 민생 법안이 줄줄이 표류하고,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과 경제 구조조정마저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도 무한 정쟁을 멈추고 경제 회복과 구조 개혁, 규제 혁파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어렵게 살아난 회복 불씨를 꺼뜨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