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마다 어린이 환자 넘쳐…"잠복기 지나면 환자 폭발 우려"
음식·물 부족, 피란민 생활여건 '최악'…구호물자도 줄어들어
의료진 공격, 의약품 부족에 병원 36개 중 21개 폐쇄…의료체계 붕괴

이스라엘 대공세에 직면한 가자지구 민간인들이 폭격과 군사작전뿐만 아니라 전염병 창궐이라는 또 다른 생존 위기를 맞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숨진 어린이만큼이나 많은 어린이가 질병으로 사망하는 참변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가자에 전염병 '퍼펙트스톰'…"폭격 피살자만큼 많이 죽을 수도"
◇ 최근 10여 일간 어린이 설사증세 66% 급증, 6만 건 육박
1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식량과 물, 거주지의 부족으로 인해 수십만 명의 피란민이 지친 가운데 의료 체계까지 붕괴 위기를 맞으면서 가자지구에 전염병 대유행이 발생할 것이라고 현지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10일까지 가자지구 5세 미만 어린이 사이에서 설사 증세가 66% 증가해 5만9천895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 있는 나세르 병원의 소아병동 책임자 아메드 알파라 박사는 병동이 극심한 탈수증을 앓고 있는 어린이로 가득 찼으며, 이들 중 일부는 심부전 증세까지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가자지구가 처한 상황을 볼 때 이는 임박한 위기에 비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알파라 박사는 지난 2주간 칸 유니스에서 A형 간염 환자가 15~30명 발생했다면서, 바이러스의 잠복 기간이 3주에서 1개월 정도임을 고려하면 조만간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복수의 전문가들은 "이질과 수인성 설사 등으로 인해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숨진 것만큼이나 많은 어린이가 숨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자에 전염병 '퍼펙트스톰'…"폭격 피살자만큼 많이 죽을 수도"
◇ 하수도 파괴돼 물 오염…폭우 속 피란민들 노숙
이 같은 위기는 이스라엘의 포위 속에 수십만 명의 피란민이 발생하고 식생활과 주거 등 생활 여건이 극도로 열악해지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난민촌의 피란민이 수용 능력의 4~5배에 달한 가운데, 많은 이들이 화장실이나 목욕할 물을 거의 이용하지 못한 채 노숙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날에는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내리면서 텐트가 찢어지는 바람에 피란민들이 추운 날씨에 젖은 땅에서 웅크린 채 밤을 지새워야 했다.

전쟁통에 하수도가 파괴돼 물이 오염되면서 아이들 분유에 탈 물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대의 인도주의 보건센터 소장인 폴 슈피겔 박사는 깨끗한 물을 제공할 더 많은 구호 트럭이 들어오지 않는 한 당장이라도 설사가 창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어린이들이 극심한 영양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급성 영양실조에 걸리면 여러 질병에 취약해지는 것은 물론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가자지구 남부로 피란을 온 이들 중 83%가 충분한 음식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난 11월 말부터 1주일간 이어진 일시 휴전 기간 하루 200대에 달하던 구호 트럭은 최근 100대가량으로 줄어든 형편이다.

가자에 전염병 '퍼펙트스톰'…"폭격 피살자만큼 많이 죽을 수도"
◇ 의료진 및 보건인력 300여명 사망…"질병 확산 감당 불가"
그러나 질병에 대응해야 할 현지 의료체계는 이미 붕괴 직전이다.

WHO에 따르면 가자지구 36개 병원 중 21개가 이미 폐쇄됐고, 11개는 부분적으로, 4개는 최소한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병원마다 전기는 물론 항생제와 백신 등 의약품도 부족하다.

지난 7일 유엔 건강권 특별보고관 트랄렝 모포켕은 성명을 내고 "개전 이후 가자지구에서 의료진을 상대로 한 공격이 최소 364건 보고됐다"고 밝혔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도 전쟁 이후 직원 135명이 사망한 데 따라 전쟁 전 운영하던 28개 1차 의료기관의 수를 9개로 줄여야 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날까지 300여 명의 보건부 직원과 의료진이 사망했다.

국경없는 의사회 코디네이터 마리-오레 페로는 의료 봉사단체가 대피령에 따라 이미 열흘 전에 칸 유니스를 떠났다면서 "이런 추세라면 전염병이 가자지구 전역에 창궐할 것이고, 보건부든 구호단체든 이런 상황에 대처할 수 없을 것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제임스 엘더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수석 대변인은 "질병의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 시작됐다"며 "이제는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것인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