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7일 국립극장서 10주년 공연…"무용수마다 다른 호흡으로 추는 춤"
무용수 손끝과 버선발에 담아낸 사군자…국립무용단 '묵향'
진분홍 저고리에 봉긋하게 부푼 흰 치마를 입은 무용수의 손끝이 살랑거리며 흔들린다.

치맛단을 살짝 잡아 올리자 빼꼼히 내민 버선발은 부끄러운 듯 종종거리며 뒷걸음친다.

국립무용단의 인기 레퍼토리 '묵향'이 초연 10주년을 맞아 오는 14∼17일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다.

사군자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정제된 전통춤의 춤사위를 한 폭의 수묵화처럼 춤을 펼쳐낸다.

안무가 윤성주가 고(故) 최현의 '군자무'에서 영감을 받아 안무한 작품으로 패션디자이너로 유명한 크리에이티브디렉터 정구호가 연출했다.

지금은 전통춤 분야에서 하나의 스타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간결하고 세련된 연출이 초연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지난 10년간 일본, 프랑스, 헝가리 등 10개국에서 총 43회 공연되며 해외에서도 호평받았다.

무용수 손끝과 버선발에 담아낸 사군자…국립무용단 '묵향'
윤 안무가는 본 공연을 하루 앞두고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언론시연회에서 '묵향'이 해외에서도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버선발의 디딤새와 손놀림, 팔 시위, 몸을 좌측과 우측으로 놀리는 동작 등 전통춤의 요소들 때문인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무대 위에 노란색, 빨간색 등 무용 무대에서는 잘 쓰지 않는 색감이 들어가 있다는 점도 놀라워한다"며 "색이 강해 안무는 기교적인 부분을 부각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작품은 총 6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과 6장은 작품을 여닫는 파트로 백색과 흑색으로, 2∼5장은 사계절을 상징하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했다.

화선지를 펼쳐놓은 듯한 무대는 무용수들의 몸짓에 따라 붉게 물들었다 초록색으로 채워지고, 노란색으로 다시 물들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윤 안무가는 "처음에 기획할 때는 매·난·국·죽 4가지만 생각했다가 서무와 종무를 붙여 작품을 확대하게 됐다"며 "서무는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춤을 열어준다'는 의미를 담았고, 매·난·국·죽(2∼5장)은 이미지에 따라 동작을 차용했다.

종무는 이런 춤을 집대성해 좀 더 희망적인 느낌을 줬다"고 설명했다.

무용수 손끝과 버선발에 담아낸 사군자…국립무용단 '묵향'
사군자가 뚜렷하게 형상화된 2∼5장은 매 순간 계절의 변화를 그려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느낌을 준다.

2장은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난 매화, 3장은 깊은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퍼트리는 난초, 3장은 흐드러지게 핀 국화, 5장은 꼿꼿해 보이지만 유연하게 휘어지는 대나무가 펼쳐진다.

음악은 전통음악을 기본으로 쓰면서 서양 악기인 더블베이스와 바이올린을 사용했다.

하얀 도포를 입은 남자 무용수들의 춤이 펼쳐지는 1장 서무는 거문고와 더블베이스의 중저음이 평행적인 균형을 이루고, 남성 군무와 여성 군무가 조화롭게 펼쳐지는 6장 종무는 가야금과 바이올린 선율이 어우러진다.

윤 안무가는 작품의 매력 중 하나로 무용수들이 음악 속에서 '호흡'을 자율적으로 끌고 간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다 보니 같은 공연이어도 무용수마다 개성이 드러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하는 호흡은 박자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무용수가 그날의 컨디션과 음악을 해체하는 능력에 따라 마음대로 조절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용수가 다르면 똑같은 순서대로 춤을 춰도 다른 느낌이 난다"며 "어떤 무용수는 호흡을 길게 가져가지만, 또 다른 무용수는 딱딱 끊어서 끌고 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무용수 손끝과 버선발에 담아낸 사군자…국립무용단 '묵향'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