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가장 많은 미술품을 매각한 미술시장의 최대 '판매상'은 누굴까.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미술 전문가들은 가장 유력한 후보로 예금보험공사(예보)를 꼽는다. 예보가 2011년부터 경매를 통해 판매한 작품이 8016점에 달하기 때문이다. 판매 금액은 총 240억원에 이른다.

예금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공기업이 이렇게 많은 미술품을 보유하게 된 건 2011년 벌어진 부실저축은행 사태 탓이다. 당시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해 수많은 저축은행이 부실·방만 경영으로 줄줄이 무너졌다. 예금주에게 돌려줄 돈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나마 담보물 창고는 꽉 차 있었다.

이 중 상당수는 미술품. 정해진 가격이 없다는 특성 때문에 작품의 가치를 부풀린 뒤 담보로 대출을 받아 비자금을 빼돌리는 데 악용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예금주에게 돌려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예보가 압수한 미술품을 대거 경매에 넘기기 시작한 이유다.

오는 23일부터 예보가 서울 성북동 뮤지엄웨이브에서 ‘억’ 소리나는 작품들로 전시를 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전시에 나오는 작품 19점의 감정가는 총 25억원에 달하지만, 입장료는 없다. 예보는 미술품 매각을 위한 무료 전시회를 이처럼 비정기적으로 개최해왔다. 다만 미술관 전시라기보다는 경매 전 개최되는 프리뷰 전시 성격이 강하다.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가 없고 판매를 위한 실물 전시에 가깝다는 얘기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유중인 제프 쿤스의 설치 작품 'Cow'.
예금보험공사가 보유중인 제프 쿤스의 설치 작품 'Cow'.
전시 작품 중 대표작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제프 쿤스의 설치작품 'Encased-Five Rows'다. 미국 흑인 노동자 계층 청소년의 꿈인 ‘Hoop Dream(농구 선수로 성공해서 사회적 명성과 부를 얻고자 하는 꿈)’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같은 작가의 작품 'Cow (Lilac): Easy Fun'도 눈에 띈다. 두 작품의 감정가는 각각 16억9500만원, 5억원이다.

이 밖에도 조안나 바스콘셀로스의 ‘Pantelmina’(4500만원), 중국 신진작가 겅슈예의 작품 ‘무제’(550만원) 등이 나와 있다. 현장에서 누구나 작품 매입을 신청할 수 있다. 오는 30일부터 내년 1월 9일까지 진행되는 케이옥션 프리미엄 온라인 경매에서도 출품작 일부를 구입할 수 있다.

한편 예보는 아동보육시설인 남산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도슨트 투어를 제공하는 등 미술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이다. 전시는 오는 23일부터 내년 1월 7일까지 진행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