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통신내용 영장없이 수집…미국인 사찰 우려로 재승인 표류
내년 4월까지 연장될 듯…개정 가능성 등 주목
美 '최강 첩보수단' 외국인 도·감청법 운명은…연말 만료
미국에서 올 연말 종료를 앞둔 외국인 도·감청법의 재승인이 내국인 사찰 논란 속에 진통을 겪고 있어 존속 여부가 주목된다.

9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의회는 해외정보감시법(FISA) 702조(이하 702조)의 효력을 내년 4월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내년도 국방수권법안(NDAA)에 포함시켰다.

이르면 다음 주 NDAA가 표결에서 통과되면 의회는 702조의 재승인이나 일부 개정 또는 폐기 여부를 결정할 시간을 조금 벌 수 있게 된다.

2008년 제정된 702조는 미 국가안보국(NSA)이 해외 외국인의 통화·문자메시지·메신저·이메일 등 통신 내용을 구글·애플 같은 미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영장 없이 수집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해당 외국인이 미국인과 통신한 내용도 수집할 수 있다.

702조는 미 정보기관들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감시 도구 중 하나로 꼽히며, 매일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정보의 절반 이상이 이 조항을 통해 수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원의 영장 없이 미국 시민의 통신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권한 남용 가능성을 놓고 논란이 지속돼 왔다.

이 조항은 그간 개인정보 보호 운동가들의 비판에도 의회에서 재승인을 거듭하며 연장돼 오다가 이번에는 여야 모두에서 반대가 늘면서 폐기되거나 약화되기 직전의 처지가 됐다.

이처럼 702조의 입지가 위태로워진 것은 과거 국가안보 차원에서 이 조항을 지지했던 공화당의 자세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기를 거치면서 부정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16년 대선 운동 당시 러시아와 연계 가능성 등을 수사하자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FBI 등 정보당국의 정보 수집 전반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FBI가 702조로 수집한 정보를 2020년 경찰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2021년 미 의회 폭동 참가자 조사에 활용한 권한 남용 사례가 확인되면서 의심을 키웠다.

이에 따라 한때 702조를 확고히 지지했던 공화당 의원 일부가 이 조항을 개정하거나 폐기하기를 바라는 상황이며, 민주당은 702조의 개정 방향 등을 놓고 의견이 나뉘어져 있다고 WSJ은 전했다.

이에 따라 조 바이든 행정부는 702조가 테러 방지 등에 꼭 필요하다며 이 조항을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

미 법 집행 당국·정보당국 고위 관리들은 지난 4일 의회에 전달한 서한에서 702조가 과거 테러 방지에 도움이 된 사례를 들면서 이 조항이 "하마스를 포함한 외국 테러 조직들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5월 미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애브릴 헤인스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도 지난 5월 702조가 특별한 외국 정보를 "다른 어떤 기관에서도 그저 따라 할 수 없는 속도와 신뢰도로"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정보자문위원회(PIAB)도 지난 7월 "의회가 702조를 재승인하지 않으면 역사는 702조 권한의 소멸을 우리 시대 최악의 정보 실패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보당국은 작년 알카에다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 제거 작전에서 702조가 기여한 사례 등 일부 관련 정보를 기밀해제 하면서까지 이 조항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반면 개인정보 보호 운동가들은 일반적으로 702조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미국 시민의 개인정보 침해를 막으려면 추가 보호 조항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론 와이든(민주·오리건) 상원의원은 "우리의 헌법상 권리를 쓰레기통에 처박지 않고도 우리나라의 적들과 맹렬히 맞서 싸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와이든 의원 등은 702조를 4년 연장하되 미국인 관련 데이터 수집 시 법원의 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추가하자는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