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원이 지난 7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홍석원이 지난 7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공연 전반부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만으로 채워졌고, 그 태반은 베이스 연광철의 독창 무대였다. '탄호이저' 중 튀링겐 영주 헤르만이 부르는 ‘친애하는 음유시인들이여’는 과연 바이로이트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쌓은 관록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노래였다. 예순이 다 된 베테랑이지만, 음량 역시 공연장(경기아트센터 대극장)을 가득 메우기에 손색이 없었다.

전보다 비음이 좀 더 많아진 듯한 느낌은 있었지만 이는 성악가가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고, 해석의 노련함과 원숙함은 세월이 앗아가는 것 이상으로 주는 것도 있음을 보여줬다. 한편 전반부의 마지막 순서였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마르케 왕의 독백’은 고결한 영혼이 불의의 상처를 입었을 때 느끼는 비탄을 너무나도 절절하게 보여줬다.

이 두 곡 모두를 아우르는 위엄과 품격은 과연 연광철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다. 한데 이 두 곡 사이에 부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중 ‘달란트의 아리아’에서는 바로 이 점이 독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싶었다.

달란트 선장은 ‘네덜란드인’이 내민 금은보화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이 인물의 정체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자기 딸을 팔아넘기다시피 하면서 결혼시키려 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연광철의 따뜻하고 고상한 목소리만 들어서는 이 배역의 탐욕스럽고 속물적인 성격을 거의 파악할 수 없었다. 노래 자체만 놓고 보면 여전히 훌륭했지만, 자막으로 접하는 내용과 귀로 들리는 노래 사이의 강한 괴리감은 끝내 떨치기 어려웠다.

전반부에서 관현악으로만 연주한 곡은 둘이었다. 오늘 공연의 첫 순서였던 오페라 '탄호이저'의 입장 행진곡은 좀 투박한 느낌은 있었지만 매우 정연했다. ‘마르케 왕의 독백’ 직전에 연주한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의 경우, 탄탄하고 유려한 현을 중심으로 감정을 자연스럽게 고조해 나가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바그너는 음악사에서 후기낭만주의로 가는 문을 열어젖힌 인물이고,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사의 물줄기를 후기낭만주의에서 다른 쪽으로 틀어버린 작곡가 중 한명이다. 그리고 거기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 작품이 이날 공연 후반부에서 연주한 '봄의 제전'이다.

지휘자 홍석원은 이 곡에서 각각의 세부를 명확히 드러내고 셈여림 대비를 강조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내기로 한 듯했다. 이런 전략은 많은 대목에서 효과적이었으며, 특히 1부의 끝 곡 ‘대지의 춤’이나 2부 ‘선택된 처녀의 찬미’ 같은 곡은 거의 두려울 만큼 강렬하고 야만적으로 들렸다.

다만 이런 전략 때문에 희생된 부분도 없지 않았는데, 일부 대목에서는 다소 느슨하거나(1부 ‘봄의 원무’) 무겁게(1부 ‘서주’) 들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모든 세부를 고르게 조명하는 지휘자의 태도는 당연히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긴 하지만, 사소한 실수마저 뚜렷이 감지되는 반작용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공연을 대하는 청중의 자세는 대체로 정숙했으나. 전반부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과 ‘마르케 왕의 독백’ 사이에서 관현악이 잦아들 때 공교롭게도 휴대폰이 울리는 사고가 있었다. 지휘자와 독창자 모두 흔들림 없는 태도를 보여 다행이었지만, 신경이 과민한 음악가라면 공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매번 지적하는 것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번거로운 일이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부디 조심하자는 뜻에서 적어둔다.

황진규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