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은 도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세계 인구의 태반(55%)이 도시에 살고 2050년에는 도시인 비중이 3분의 2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도시는 재난과 번영, 전쟁과 정치의 기본 단위가 됐다.
어떤 도시가 흥하고 망하는가… 세계적 석학이 분석한 도시의 수명 [책마을]
최근 국내 출간된 <번영하는 도시, 몰락하는 도시>의 원제는 ‘도시의 수명(age of the city)’다. 어떤 도시는 거대해지고, 어떤 도시는 소멸하는가를 살핀다. 저자 가운데 한 명은 세계은행 부총재를 역임한 이언 골딘 옥스퍼드대 교수다. 세계화와 개발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경제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골딘과 더불어 경제매거진 ‘이코노미스트’의 필진 톰 리-데블린이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저자들은 “인류가 마주한 최대 난제의 해답을 도시개혁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의 1~3장은 역사서에 가깝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오늘날까지 도시가 어떻게 인류 발전을 이끌어왔는지 보여준다. 도시의 팽창은 산업혁명과 농업 발전의 결과였다. 과거에는 농업 생산 효율이 좋지 않아 도시를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광활한 배후 지역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의학과 공중 보건이 발전하면서 밀집 도시에서의 사망률도 낮아졌다.

요즘 도시들의 화두와 대안이 궁금하다면 4장부터 읽는 것도 방법이다. 책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도시 간 불균형, 일과 공통체의 중심으로서의 도시, 사회 분열을 막기 위해 도시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등을 탐구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기후변화를 막는 데 도시가 더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도시는 세계 탄소 배출량의 70%를 발생시키지만 고밀도의 도시 생활이 시골 생활보다는 배출 집약도가 낮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이나 건물 에너지 효율화 등을 통해 도시가 탄소 배출량을 조절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본다. 인구밀도가 낮고 대중교통을 찾아보기 힘든 시골은 오히려 1인당 탄소 배출량이 많다. 기후변화를 위해서는 도시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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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발전 없이 비대해진 도시들’은 한국 독자들라면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한국 일본 중국의 도시화와 경제 발전을 주요 사례로 들어서다. 한국에 대해서는 한반도 남동부 지역의 여러 도시들이 중공업 생산기지 역할을 하면서 서울의 과밀을 일정부분 해소해줬다는 평가를 내렸다.

책은 3개국은 모두 급속 발전으로 빈곤에서 벗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도시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세 나라가 다른 개발도상국과 달리 번영한 도시들을 갖게 된 비결을 제조업 발전에서 찾으면서, 동시에 제조업 중심 일자리가 자동화 등으로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저자들은 공정한 교육, 공정한 주택, 공정한 대중교통이 ‘도시를 좋은 곳으로 만드는 3개의 기둥’이라고 주장한다. 누구든 부정하기 힘든 대안이지만 부족한 디테일이 아쉽다. 예컨대 대중교통비 부담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말하면서도 대중교통 수입의 대부분을 승차권 판매에 의존하고 있는 재정 구조를 지적한다. 승차권 판매 외의 방법으로 재정 건전성을 획득한 사례 등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놨다.

결론은 간단하지 않다. 모두 도시를 벗어나 안빈낙도하자거나 혹은 지역을 포기하고 메가시티 중심으로 생존하자는 명쾌한 주장은 없다. 책은 도시가 갖는 집적의 힘을 인정하되, 새로운 도시 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식 경제 중심의 새로운 도시를 구축하려면 정부는 세금 감면 같은 장려책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쉽게 만들어야 하고,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 고용주가 찾고 있는 숙련 노동자를 확보하며, 지역으로의 낙수효과를 위해 운송 인프라를 손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긴. 문제가 복잡한데 답이 단순할 리가 있나.

저자들은 서문에서 에드워즈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를 비롯해 책 집필 과정에서 참고했거나 영감을 받은 책들을 상세하게 밝혀 놓았다. <번영하는 도시, 몰락하는 도시>를 통해 이제 막 도시의 운명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 독자들에게는 훌륭한 독서 가이드가 돼줄 목록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