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K컬처 다 갖고도…CJ, 왜 위기일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류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어서 미국의 빌보드뮤직 어워드에 K팝 부문이 신설되기도 했고요, 넷플릭스에선 '피지컬100' 같은 리얼리티 쇼부터 '더 글로리' 같은 드라마까지 한국 콘텐츠가 인기 순위 상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류 덕분에 CJ도 당연히 잘 나가겠다,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많이들 아시겠지만, CJ는 지금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선 주력 계열사들이 돈을 잘 못 벌고 있고, 심지어 적자까지 내는 회사도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 못된 것인지, CJ가 처한 위기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지 이번 대기만's는 K컬처, K푸드 다 갖고도 회사 존립을 위협받고 있는 CJ입니다.


근데, 권력을 잡고 나면 사람이, 혹은 상황이 바뀔 때가 많잖아요. 이맹희 회장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바지 사장' 역할을 한 게 아니라, 진짜 제대로 한번 경영을 해보겠다는 식으로 나가니까, 이병철 회장과 자꾸 충돌하게 되고, 이병철 회장이 불편한 내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맹희 회장이 자기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 급기야 부자 간 사이가 멀어져 의절하는 수준까지 갑니다. 결국 경영에 복귀한 이병철 회장이 이맹희 회장을 그룹에서 축출하고요, 경영권을 삼남 이건희 회장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부자 간의 분쟁은 끝이 나죠.

이재현 회장 입장에선, 아버지가 삼성 왕조에서 내쳐지고, 본인 몫으로도 삼성전자 이런 큰 회사가 아니라 설탕 만드는 제일제당을 받았으니까 회사를 삼성 버금가도록 키우고 싶은 열망에 불타 올랐을 것 같아요. 복수는 나의 힘이잖아요. 회사 키우는 게 이재현 회장 입장에선 복수가 되겠죠. 그래서 진짜 죽도록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설탕 만으론 한계가 있으니까 신규 사업을 엄청나게 벌여요.

지금도 4000억원은 굉장히 큰 돈인데요, 이 땐 더 엄청난 돈이었어요. 제일제당 매출이 당시에 연간 1조8000억원쯤 했는데요, 그럼 20% 가량 됩니다. 작년 제일제당 매출이 40조원이니까 그 20%면, 8조원이나 하죠. 물론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그만큼 당시에 큰 결단을 했다는 얘깁니다.
어쨌든 이 때 영화 사업에 진출했고, 1996년에는 지금의 CGV죠, 영화관 사업도 벌입니다. 또 1997년 지금의 ENM을 있게 해 준 미디어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팔았지만 파리바게트의 영원한 경쟁자 뚜레쥬르도 론칭을 합니다. 현재 CJ의 주력 사업인 식품, 미디어, 극장, 단체급식, 화장품 유통 같은 사업들 대부분 1990년대에 시작된 것이었어요. 이렇게 이재현 회장이 이를 박박 갈아서 CJ를 재계 13위의 대기업으로 올려 놓습니다.
그런데, CJ가 어렵다고 했잖아요. CJ가 하는 사업의 룰이 완전히 바뀌어서 그렇습니다. 사실 CJ그룹 사업들이 원래는 다 내수용이었든요. 우리끼리 싸워서 잘 하면 됐어요. 그런데 이제는 글로벌 다국적 기업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우선 넷플릭스가 컸어요. CJ는 ENM을 통해서 기생충, 미스터선샤인 같은 영화와 드라마의 한류를 일으켰는데. 이런 한류 콘텐츠를 단순히 제작하는 것 뿐 아니라 유통하는 역할, 그러니까 플랫폼 역할까지 하는 게 CJ의 원대한 꿈이었죠. 그래서 OTT 플랫폼 '티빙'을 2010년 야심차게 출범시키고, 넷플릭스와 경쟁에 나서게 됩니다.


심지어 디즈니조차도, 여긴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 뿐 아니라 마블과 스타워즈, 아바타 군단까지 넣었는데도
넷플릭스란 벽에 부딪혀서 엄청나게 고전하고 있는데, CJ가 제 아무리 한류 콘텐츠로 승부한다 해도 이걸 넘어설 수가 없는 겁니다.
2023년 8월 기준 국내 OTT 시장에서 1등은 당연히 넷플릭스인데요, 사용자수가 1223만명에 달합니다. 티빙은 약 540만명으로 쿠팡플레에도 밀려서 3등이고, 디즈니 플러스는 한국에선 좀 인기가 없어서 5등이죠. 물론 쿠팡플레이는 쿠팡의 멤버십 와우클럽 가입자가 그냥 볼 수 있기 때문에 가입만 하고 안 보는 허수가 좀 많이 들어있죠.



이런 채널의 주된 매출은 광고잖아요. 광고주들이 과거에는 지상파나 tvN 같은 곳에 줄서서 광고했는데, 지금은 아니죠.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CJ가 넷플릭스에 밀리면, 이런 채널 경쟁력도 그만큼 낮아지는 것이니까 버릴수가 없는 겁니다.
여기에 하나 더 있습니다. 극장 사업, 바로 CGV까지 얽혀 있어요. 극장 사업은 코로나 탓에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연간 2조원 가까운 매출을 냈는데, 코로나 발생 첫 해인 2020년 5000억원 대로 뚝 떨어졌고요 그 해 당기 순손실이 무려 7000억원을 넘어갑니다. 매출은 이후에 조금씩 회복은 했는데 그래도 적자는 계속 나서 2021년에도 3000억원대, 2022년에는 2000억원대 손실을 냅니다.

근데 영화 티켓값은 또 엄청 올라서 영화 한 편 보는데 1만4000원잖아요. 이게 코로나 전에는 1만원이었습니다. 넷플릭스 스탠다드 요금이 1만3500원이니까, 영화 한 편 보느니 넷플릭스 한달치 결제하는 게 가성비 면에선 훨씬 나을 수 있죠. 이게 또 4DX, 아이맥스 이런 특수관들이 많이 생겨서 이런데서 보면 2만원도 넘고, 누워서 보는 이런데 가면 5만원도 하죠.


그런데 쿠팡이란 놈이 나타나서 가격을 후려 칩니다. 쿠팡이 논리는 단순한데 강력했죠. 싸게 내놔라, 대신 엄청 많이 팔아줄게. CJ 입장에선 이 쿠팡이란 놈이 롯데, 이마트 이런데 다 잡아먹고 유통 시장에서 엄청난 강자가 되니까 무시할 수 없어서 싸게 주다가 이렇게 팔면 결국에는 남는 것도 없이 쿠팡만 좋은 일 시키겠다는 생각을 하죠. 고심 끝에 CJ는 작년 11월부터 쿠팡에 햇반, 비비고를 다 뺍니다. 대신 이마트, 네이버 이런 곳과 손을 잡고 싸우고는 있는데, 쿠팡의 위상이 날로 커지고 있어서 고민이 깊을 겁니다.



쿠팡은 여기에 아까 OTT 시장 2위라고 했잖아요. 가입자 수만 보면 티빙보다 더 많을 정도인데요. 그냥 가입자 수만 많고 안 보면 별 것 아닐텐데, 넷플릭스나 티빙에서 보기 힘든 해외 축구나 SNL코리아 같은 특화 콘텐츠로 팬덤을 형성하는 게 무섭죠. 드라마, 영화는 좀 밀려도 나름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어요.



이재현 회장은 2010년 CJ 그룹의 향후 10년 비전을 제시하면서 그룹 매출 100조원을 달성하고, 그 70%를 해외에서 거두겠다고 했는데 끝내 이 목표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20년 CJ그룹의 매출은 32조원에 그쳤죠. 하지만 이재현 회장과 CJ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이 회사는 분명합니다. 자신들이 하는 분야에선 선도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압도적으로 잘 하겠다. 만약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 사업은 안 하고 만다. 베이커리, 제약 사업 등을 정리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습니다.
하지만 잘 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투자해서 끝을 보는 스타일인데, 과연 티빙과 CGV, 식품 사업에선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지 눈여겨 보겠습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