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19세기 파리로…7년만에 찾아온 대작 ‘레미제라블’
막이 오르고 웅장한 음악으로 넘버 '룩 다운(Look Down)'이 흘러나오자 1800년대 프랑스 파리로 순간이동한 듯한 느낌이 든다. 노역장에서 일하는 죄수로 분한 앙상블들이 저음으로 내지르는 비명은 극의 몰입도를 순식간에 높인다.

어두침침하고 냄새나는 프랑스 파리의 뒷골목, 그곳에 사는 빈민들의 비참한 삶을 현실적으로 그린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7년만에 국내에서 개막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공연화한 작품이다. 프랑스 초연 후 영국의 뮤지컬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의 손을 거쳐 전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최장 기간 공연 중인 뮤지컬이기도 하다.
순식간에 19세기 파리로…7년만에 찾아온 대작 ‘레미제라블’
원작의 양이 방대한 만큼 여러 캐릭터와 서사가 겹겹이 쌓여 있다. 절도범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의 용서를 계기로 회개하는 이야기, 혁명을 위해 희생하는 학생들,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등이 나온다. 작품을 여러 번 감상해도 볼 때마다 다른 메시지를 느낄 수 있는 이유다. 약 세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이지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유명한 넘버를 현장에서 듣는 재미도 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넘버 중 하나는 혁명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부르는 '두 유 히어 더 피플 싱(Do You Hear the People Sing?)'. 라마르크 장군의 죽음을 계기로 혁명의 불씨를 당기는 장면에서 나온다. 희망차면서도 비장한 멜로디가 공연장 전체를 채우며 가슴이 벅차오른다.

여성 캐릭터의 감미로운 넘버도 인상적이다. 판틴이 사랑하던 이에게 버림받고 꿈 꾸던 삶이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말하는 노래인 '아이 드림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은 가슴을 울린다. 짝사랑하는 마리우스가 코제트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에포닌이 처연하게 부르는 '온 마이 온(On My Own)'도 인상적이다.
순식간에 19세기 파리로…7년만에 찾아온 대작 ‘레미제라블’
장발장(배우 최재림 분), 자베르(카이 분) 등에 원래 설정보다 젊은 배우들이 캐스팅돼 분장 등이 다소 어색한 느낌은 있으나 연기와 가창력으로 메꿨다. 그밖에 매력적인 감초 캐릭터가 많다. 7년 전 공연에 이어 올해 두번째 비열한 사기꾼 떼나르디에 역할을 맡은 배우 임기홍의 익살스러운 악역 연기는 무겁고 긴장감 넘치는 서사에 숨쉴 구멍을 준다. 어린 가브로쉬(김승주 분)가 혁명군 속에 숨어들었다가 정체를 들켜 붙잡힌 자베르의 뺨을 툭툭 치는 장면도 재밌다.

장면의 시간과 분위기를 살리는 섬세한 조명디자인도 작품의 완성도를 더한다. 항구 인근의 홍등가 혹은 빈민가의 낮과 밤, 창살 사이로 비추는 새벽빛 등을 통해 위고의 소설 배경을 현실적으로 재현해낸다. 자욱한 안개가 깔린 듯한 어두운 조명은 당시 빈민의 우울하고 절망적인 삶 속에 서 있는 느낌을 준다.

이 뮤지컬은 장발장과 자베르를 제외한 모든 배우들이 다른 역할도 겸하면서 앙상블에 합류하기도 한다. 앙상블 속에 숨어 있는 배우들을 찾는 것도 또 다른 재미 중 하나. 공연은 내년 3월 10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열린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