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서 영결식…신영균·이장호·장미희 등 영화인들 추모
거장 故 김수용 감독 영면…"하늘에서도 좋은 영화 만드시길"
한국 영화 거장 고(故) 김수용 감독이 5일 영화인들의 추모 속에 영면에 들었다.

이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고인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영화인들이 꾸린 장례위원회가 주관하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에는 유족과 영화인 등 약 100명이 참석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를 포함한 고인의 작품 여러 편에서 주연을 맡았던 원로 배우 신영균은 자신보다 한 살 적은 고인이 촬영 현장에서 서로 동갑이라고 우기곤 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나보다 먼저 가시니 너무너무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아무쪼록 (하늘나라에) 잘 가셔서 좋은 작품 많이 준비해달라"며 "제가 그곳에 가면 또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겠다.

나는 죽어서도 영화배우로 살고 싶으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은 이장호 감독은 고인과 함께 한국 영화를 이끈 인물로 신상옥, 유현목, 김기영 감독 등을 꼽고 "1920년대생으로, 1950년대에 데뷔해 한국 영화사를 빛낸 대표 감독들"이라며 "개인적으론 제가 영화감독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등불과 이정표인 선배들"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고인이 1986년 자신의 영화 '허튼소리'에 대한 당국의 검열에 반발해 은퇴 선언을 한 것을 회고하며 "당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언제나 잊히지 않을, 온몸으로 직접 보여주신 가르침"이라고 했다.

배우 장미희는 "이 자리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제게 감독님은 늘 커다란 산이었고, 우러러보던 어른이었고, 큰 스승이었기 때문에 그렇다"며 "배우로서 제가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할까 고민할 때 감독님은 저의 멘토였다"고 추모했다.

거장 故 김수용 감독 영면…"하늘에서도 좋은 영화 만드시길"
극장가에서 흥행몰이 중인 영화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도 자리를 함께했다.

김 감독은 "김수용 감독님의 영화는 시대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솔직하게 표현했다"며 "삶의 피로와 외로움, 등뼈까지 아려 오는 허기까지 오롯이 담아냈다"고 말했다.

이어 "당대 관객이 휘청거리며 건너온 고달픈 세월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투사함으로써 관객의 마음을 따뜻이 위로했다"며 "그 시대 영화가 해야 할 일을 김수용 감독님의 영화가 성실히 완수한 것"이라고 했다.

평소 소탈했던 고인의 모습에 대한 회고담도 이어졌다.

제작사 황기성사단의 황기성 대표는 고인에 대해 "평생 진담을 농담처럼, 농담을 진담처럼 에둘러 말하길 좋아하셨다"며 "그렇게 109편의 영화를 남겨 놓고 농담처럼 지금 우리를 떠나고 계신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고인이 후배들과 고스톱을 즐기던 모습을 회고하며 "늘 자기 작품에 자신이 넘쳤고, 누구보다도 제자를 사랑했다.

영화계에는 '김수용 사단'이라는 용어까지 돌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후배 감독인 양윤호 영화인총연합회 회장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고인과 함께 보낸 시간을 떠올리며 "그때 참 멋있고 유머가 많은 분이라고 느꼈다"며 "후배 영화인들은 감독님을 영원히 멋있고 유머가 있었던 존경스러운 감독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김수용 감독은 이달 3일 새벽 요양 중이던 서울대병원에서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6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거장이다.

그가 연출한 작품은 극 영화만 109편이고, 정책 홍보 등에 쓰인 문화영화 등을 합하면 121편에 달한다.

한국 문예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꼽히는 고인은 '굴비'(1963), '갯마을'(1965), '저 하늘에도 슬픔이', '안개'(1967) 등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3일부터 많은 영화인이 다녀갔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전날 이곳을 찾아 조문했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1차)과 모란공원(2차)으로 정해졌다.

거장 故 김수용 감독 영면…"하늘에서도 좋은 영화 만드시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