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화장품 ODM社 만들어낸 '집념의 R&D'
사업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위기가 닥쳤다. 연구소장으로 한국인을 뽑은 게 발단이었다. 기술 제휴 파트너였던 일본 미로토는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연구개발(R&D)을 시도하는 것을 경계했다. 미로토는 ‘연구소장과 미로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통보했다.

당장은 일본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래도 미래를 위해선 자체 기술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제휴사와의 결별을 택했다. 그렇게 한국미로토는 설립 2년 만인 1994년, 100% 한국 기업 코스맥스로 재탄생했다.

46세에 늦깎이 창업에 뛰어든 이경수 코스맥스그룹 회장은 ‘메이드 인 코리아’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목표를 30년 만에 실현했다. 사업 초기부터 고집했던 기술 개발에 대한 그의 집념이 결국 코스맥스를 글로벌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1위 자리에 올려놓았다.

R&D 집념, 1등 기업 만들다

“세계 최고의 연구소를 갖추면 아무리 환경이 변해도 경쟁 우위에 설 수 있습니다. 매년 매출의 5% 이상을 R&D에 투자하는 원칙을 세운 이유입니다.”

3일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코스맥스 본사에서 만난 이 회장은 직접 작성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꺼내 들며 이렇게 말을 꺼냈다. ‘우리만 가진 뛰어난 효능의 원료 개발, 생산원가 10분의 1로 낮추기, 한 가지를 열 개 만들든, 열 가지를 한 개 만들든 생산원가를 같게 하는 것….’

A4용지에 빼곡히 적힌 것은 이 회장의 꿈이었다. “10분의 1로 생산원가를 낮추겠다고 하면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겠지요. 이번 세대에 안 되면 다음 세대까지 노력해서라도 꿈을 이룰 겁니다.”

코스맥스는 매년 5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R&D에 투입한다. 지난해에는 매출의 5.7%인 484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썼다. 한국과 중국 미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 전 세계에 포진한 연구 인력은 총 1100명에 달한다.

전체 임직원 6900명의 15.9%에 해당하는 규모다. 코스맥스가 연간 6000여 개 신제품을 쏟아내고 누적 1548건에 달하는 특허를 낼 수 있었던 힘이 여기에서 나온다.

내년 그룹 매출 ‘3조 클럽’ 진입 목표

코스맥스의 R&D 역량은 빠르게 변화하는 뷰티·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 빛을 발했다. 유행이 바뀌고 유통 환경이 달라져도 코스맥스는 창립 후 연평균 35%의 성장을 이어왔다.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 의약품을 포함한 지난해 그룹 매출은 약 2조5000억원. 내년에는 ‘3조 클럽’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화장품 회사라면 코스맥스를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ODM 시장에서 압도적인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세계 1위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을 비롯해 에스티로더, 존슨앤드존슨 등 1000여 곳이 고객사다.

설립 초기 겨우 고객사 한 곳을 붙잡았던 코스맥스는 이제 밀려 들어오는 글로벌 브랜드의 요청을 가려서 선택해야 할 정도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 회장은 “첫 고객사인 나드리화장품에 납품한 ‘이노센트 트윈케이크’가 너무 소중해 한동안 양복 주머니에 품고 다녔다”며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 시절 초심을 되새긴다”고 했다.

“K뷰티, 세계 선두로 올라설 것”

이 회장은 “K뷰티가 세계 선두로 올라설 날이 머지않았다”고 낙관한다. 지난해 한국의 화장품 수출액은 10조2752억원으로 프랑스, 미국, 독일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아시아에선 1위다. 그는 “일본에선 한국이 프랑스를 제치고 최대 화장품 수출국이 됐다”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유럽과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경쟁력이 올라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회장은 요즘 ‘중국에서 다시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04년 중국 상하이에 처음 진출한 뒤 현지화 전략을 이어온 코스맥스는 올해 광저우에 이센그룹과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합작 공장을 준공했다. 일본도 집중 공략하는 시장 중 한 곳이다. 지난해 코스맥스 일본 법인을 세웠고 2025년엔 현지 생산기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제32회 다산경영상’(창업경영인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이 회장에게 소감을 묻자 직원들과 아내인 서성석 코스맥스비티아이 회장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전 직원의 땀이 최고 품질과 고객 신뢰를 만들어냈다”며 “공장 부지를 찾기 위해 쏘나타 자동차를 타고 전국 곳곳을 함께 다녀준 배우자이자 사업 파트너인 서 회장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고 했다.

이경수 회장은 20년 직장생활 뒤로하고 뷰티업계 뛰어든 '늦깎이 창업가'

이경수 코스맥스그룹 회장은 창업 경영인으로는 다소 늦은 46세에 코스맥스(당시 한국미로토)를 설립했다. 이후 코스맥스를 ‘글로벌 1위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으로 일궈낸 타고난 기업인이다.

이 회장은 1946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되던 해 6·25전쟁이 발발하자 남쪽으로 내려와 경북 포항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포항고를 거쳐 서울대 약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제약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첫 직장이었던 동아제약에 입사한 지 2년7개월 만에 광고 회사인 합동통신(현 오리콤)으로 이직해 ‘광고쟁이’ 생활을 5년 넘게 했다. 이후 대웅제약으로 건너가 11년간 일하며 전무까지 달았다.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던 이 회장이 창업 전선에 뛰어든 건 1992년이다. “자기 사업을 해보라”는 매형의 권유에 ‘늦깎이 창업’ 길에 들어섰다. 일찍이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산업이 자리 잡은 프랑스나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화장품 판매와 생산을 분리한다는 게 생소하던 때였다. 환경이 척박했던 만큼 연구개발(R&D)에 매진하며 치열하게 기업을 키워냈다.

현재 코스맥스는 로레알그룹, 에스티로더, 존슨앤드존슨 등 전 세계 1000여 개 기업에 제품을 공급하는 글로벌 1위 ODM 기업이다. 이 회장은 코스맥스 창립 후 현지 직진출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2004년 국내 화장품 ODM 기업으로는 최초로 중국에 진출하며 해외 사업을 본격화했다. 중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현재는 미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으로 생산기지를 확장했다. 국내외 코스맥스 공장에서는 연간 21억 개의 제품이 생산된다. 100여 개국에 이를 수출한다.

■ 이경수 회장 약력

△1946년 황해도 송화 출생
△1966년 경북 포항고등학교 졸업
△1970년 서울대 약학대학 약학과 졸업
△1973년 동아제약 입사
△1976년 오리콤 광고기획자(AE)
△1981년 대웅제약 마케팅 전무이사
△1990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1992년 코스맥스 창업
△2013년~현재 대한화장품협회 부회장


하수정/양지윤 기자/사진=강은구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