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기사는 무관함/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과 기사는 무관함/사진=게티이미지뱅크
"출연료를 포함한 회당 제작비가 2억원 정도라고 치면, 광고 수입은 4000만원 정도에요. 죽겠어요."

요즘 가장 화제성이 높다는 예능 프로그램 관계자의 하소연이었다. 또 다른 프로그램 역시 비슷한 사정이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제작진이 매일 밤새고 만들어서 매주 5억원씩 꼬박꼬박 까먹고 있어요.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이들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여성 출연자들이 주축이 됐다는 것. 시청률과 화제성, 재미와 감동까지 모두 잡았다는 호평을 받고 있지만, 광고와 다른 플랫폼 판매 실적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서 방송사에서는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됐다. 방송 광고 시장 규모가 줄면서 웬만한 화제성으로는 제작비 단가를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와 반대되는 사례로 꼽히는 게 Mnet '보이즈 플래닛'과 이 프로그램으로 결성된 제로베이스원이었다. '보이즈 플래닛'은 최고 시청률이 1.2%(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이었을 만큼 '0%대의 시청률'이라는 조롱까지 있었지만, 데뷔 앨범으로 200만장을 팔아치우며 'K팝 그룹 최초'라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 6일 발매한 미니 2집 역시 선주문량만 170만장을 세우며 단숨에 200만장을 돌파했다. 이는 '보이즈 플래닛' 전신인 '걸스 플래닛'으로 결성된 케플러의 기록은 물론 Mnet '프로듀서101' 시리즈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그룹으로 꼽히는 워너원까지 넘어선다.
그룹 제로베이스원(ZEROBASEONE, ZB1)이 6일 오후 서울 광장동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열린 두 번째 미니 앨범 'MELTING POINT(멜팅 포인트)'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 참석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그룹 제로베이스원(ZEROBASEONE, ZB1)이 6일 오후 서울 광장동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열린 두 번째 미니 앨범 'MELTING POINT(멜팅 포인트)'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 참석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제로베이스원의 성공을 보며 방송가에서는 "이러니 Mnet이 부정투표로 욕먹으면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남자애들 나오는 예능을 계속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같은 제작비를 투자해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때 남자 출연자가 나오는 게 훨씬 해외에서 잘 팔린다"는 의미다.

남자들이 콘텐츠 시장에서 더욱 값비싼 평가를 받는 건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예능보다 제작비 규모가 큰 드라마의 경우 광고 수익 감소, 시청률 부진, 높아진 제작비라는 삼중고를 겪으며 평일 편성 슬롯을 줄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면서 "팔릴만한 드라마만 하겠다"는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최근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내세웠던 한 드라마가 방송 편성이 불발됐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내세웠던 한 드라마 역시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 해외 판매가 부진해 "적자를 봤다"는 말이 돌다가 겨우 손익분기점을 맞췄다는 후문이다. 여성 캐릭터를 중심에 내세운 '여성 서사'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연속 편성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던 한 방송사는 최근 희망퇴직을 받기도 했다. 드라마의 성공이 방송사 매출에 큰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시청률 부진이 매일 말이 나오는 남자 한류스타가 나오는 드라마의 경우 오히려 해외에 비싼 가격으로 팔리면서 높은 이익을 거뒀다는 소문이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물건을 만들었으면 만든 사람들이 다 같이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요즘은 해외에서 인기 있는 남자 배우를 캐스팅해야 편성도 되고, 제작도 된다. 연기력은 그다음"이라고 하소연했다. 시청률이 높아도 광고만으로는 제작 단가를 맞추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방송 광고는 2016년 4조 원이 무너진 후 2018년에는 디지털에 1위를 넘겨줬고, 2019년에는 모바일 디지털 광고라는 단일매체 시장보다도 작아졌다. 방송통신광고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5조8000억원 규모의 국내 광고 시장에서 디지털 광고가 8조원, 방송광고는 4조2000억원으로 절반 정도 수준인 셈이다.

특히 올해는 2021년 진행된 도쿄올림픽,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 행사로 회복세를 이어가는가 했지만, 올해는 연초부터 주요 기업들이 유례없이 대내외 불확실성에 비상 경영체제로 전환했다는 발표를 했다. 올해 방송사들의 광고 매출은 '성장'은 커녕 '방어'만 해도 훌륭하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있었다.

광고 시장이 어렵다 보니 과감한 투자는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막대한 투자를 하며 제작비 인플레이션을 이끌었던 OTT 플랫폼마저 가입자 둔화, 수익성 문제 등에 직면했고, 이에 따른 실적 우려로 미디어 콘텐츠 업체들의 주가 흐름은 전반적으로 연초 대비 30~50% 가까이 하락했다는 분석도 증권가에서 나왔다.

다만 방송 광고 시장이 내년에는 보다 나아지리란 기대감이 흘러나오면서 다양한 이야기와 시도들이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또한 올해 라인업으로 준비했던 작품 일부가 편성 확정이 지연되고, 방영·제작 편수가 줄어들면서 내년엔 기저 효과로 손익이 개선되리라는 기대감도 있다. 현재 촬영을 마치고, 내년 편성이 확정된 대작 드라마로는 공효진, 이민호 주연의 '별들에게 물어봐', 아이유와 박보검의 로맨스가 예고된 '폭싹 속았수다', 송강호 주연 '삼식이 삼촌' 등이 있다.

현재 월화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는 채널은 KBS 2TV, tvN, ENA 뿐이고, 수목드라마는 수요 드라마, 목요 드라마로 변형해서 방영한 채널까지 포함해도 MBC, ENA에 불과하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이후 SBS의 목요드라마는 후속작이 미정이어서 당분간 공백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최민하 삼성증권 연구원은 "제작사들은 콘텐츠 경쟁력과 해외 유통 역량 등을 발휘해 수익을 키워나가는 전략으로 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콘텐츠 퀄리티와 판매 채널 네트워크 등에서 경쟁 역량이 검증된 주요 사업자들이 '24년 업황 회복'의 혜택을 더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