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 37년 된 전주시 운영 '늘푸른아파트' 철거 임박
노후화로 공실 증가…"여성 주거공간 역할 이어가야"
전주시, 운영 종료 결정에도 부지 활용 방안 미정
전세사기 걱정없이 저축 꿈꾼 '여성 근로자 아파트' 사라지나
전북 전주에 사는 A씨(30대)는 덕진구 송천동에 있는 '늘푸른아파트'를 편안하고 안전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집 안 벽지가 군데군데 벗겨지고 색이 바래지긴 했어도 사회에 막 발을 디딘 20대 여성이 10만원 남짓한 보증금으로 입주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입구엔 늘 경비원이 지켰고 등록된 차량만 단지 내로 진입할 수 있었다.

자정이 되면 어김없이 아파트 입구가 닫혀 때론 불편했지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에 포근하고 안전감을 높일 수 있었다.

A씨는 "2012년 입주했다가 거주 기한인 6년을 꽉 채우고 다른 원룸으로 옮겼는데, 기한 제약이 없었다면 더 살고 싶었다"면서 "이 아파트가 아니었다면 지금만큼 저축을 많이 하지 못했을 것이고 집을 구할 때마다 전세 사기를 당할까 봐 걱정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29일 전주시에 따르면 1986년 100세대 규모(5층 2개동)로 준공돼 세대당 2명씩 총 200명이 입주했던 이 아파트는 당시 28세 미만 미혼 여성근로자의 주거복지를 위한 '근로청소년 아파트'로 출발했다.

시가 운영하는 이 아파트의 보증금은 올해 기준으로 세대당(2인 기준) 30만원, 월 임대료는 6만4천원으로 매우 저렴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입주 대기자 명단을 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인근 공단이나 타지에서 전주로 일하러 온 여성 근로청소년들의 주거 문제를 단박에 해결해줬다.

하지만 건축된 지 37년이 지나면서 보일러 배관이 녹슬거나 방수가 이뤄지지 않는 등 심각한 시설 노후화와 함께 산업구조 변화 등으로 점차 외면받으며 지금은 전체의 절반가량이 공실로 남았다.

입주 대상도 당초 근로청소년에서 만 40세 이하의 근로 여성으로 입주 자격을 확대했지만 이마저도 공실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전세사기 걱정없이 저축 꿈꾼 '여성 근로자 아파트' 사라지나
전주시는 이처럼 입주자가 소수에 그치고 경비 인력 등으로 매해 1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자 현재 입주자들의 계약이 만료되는 내년 12월까지만 운영하기로 하고 올해부터 신규입주를 중단했다.

시는 운영 종료 계획에 따라 늘푸른아파트를 리모델링하는 대신 철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여지껏 부지 활용 방안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40년 전과 비교해 주거 환경이 달라지고 도시 확장으로 송천동 인구가 급속하게 늘면서 아파트가 아닌 문화센터나 주차장 건립 등이 필요하다는 주민의 요구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도내 여성계는 여성이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이 마땅치 않은 만큼 이 아파트의 설립 취지에 맞게 기존의 역할을 살려 '여성을 위한 다른 형태의 거주시설'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익자 전북여성노동자회장은 "운영을 종료하면 현재 거주하는 입주민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면서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주거 대책을 마련하지도 않고 (여성을 위한 공간을) 없앤다면 여성 정책이 축소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인 가구 증가 등의 수요에 맞춰 입주 대상을 중장년층 여성이나 대학생, 청소년 등까지 확대하는 방식을 통해 주거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시 관계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여성근로자 아파트 부지를 활용해 여성에게 우선 공급하는 주택을 만들었다가 역차별 논란에 휘말린 사례도 있다"며 "이 부지를 어떻게 활용하든 예산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수요를 분석해 활용 방안을 찾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