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어도 죽은 것 같은 슬픔이 드는 사람에게, 브람스의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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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황수미의 노래의 날개 위에
11월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위령성월'(죽은 이의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로 지정한 달이다. 그래서 이맘때 듣는 레퀴엠은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레퀴엠이라 불리는 음악 장르는 미사곡의 일종으로 가톨릭 예배의 순서를 따라 자비송(Kyrie), 대영광송(Gloria), 신경(Credo), 거룩하시도다(Sanctus-Benedictus), 하나님의 어린양(Agnus Dei)으로 이뤄진 게 일반적이다.
옛날부터 가톨릭 교회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로 불리었으나 15세기부터는 다성부로 된 레퀴엠이 등장하게 되었고 낭만주의 시대가 되어서는 미사 음악 장르가 쇠퇴했지만 레퀴엠은 죽음이라는 주제의 심각성과 특유의 낭만성으로 많은 작곡가들이 레퀴엠을 작곡하였다.
한편 전통적인 가톨릭 교회의 레퀴엠 전례문이 라틴어 가사인 것과는 달리 마틴 루터의 독일어 성서에서 가사를 발췌한 레퀴엠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바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이다. 이 작품은 요하네스 브람스가 약 1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슈만의 죽음과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작곡되었다고 한다. 1868년 4월 10일 성금요일 브레멘에서 브람스의 지휘로 초연된 당시 음악을 접한 많은 이들이 눈물바다였다고 한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절한 무게감을 지닌 앙상블이 결합된 작품으로 소프라노와 바리톤 솔리스트가 합창과 함께 솔로 파트를 노래하나 1번부터 마지막 7번 곡까지 합창단의 음악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1곡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2곡 –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인간의 모든 영예란 풀에 핀 꽃과 같다
3곡 - 주여 알게 하소서 내게도 반드시 끝이 있음을
4곡 - 당신이 계신 곳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만군의 주님이시여!
5곡 -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6곡 - 우리가 영구히 머물 도성은 없고
7곡 -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초연 이후 소프라노의 아름다운 솔로 아리아가 있는 현재 5번 곡이 추가로 작곡되었는데 이 곡은 브람스의 마음을 유독 헤아려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따스한 어머니에 대한 애도심을 유독 많이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자신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던 어머니를 여의고 헤어나올 수 없는 슬픔에 괴로워했으나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으로 아픔을 승화시키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을 남겨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레퀴엠은 죽은 이를 달래는 음악을 넘어서 남은 자들에게 희망과 평안을 주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내한 공연에서 큰 호평을 받은 오슬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레퀴엠 연주를 하기 위해 오랜만에 오슬로까지 긴 여행을 했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을 벗어나서일까. 브람스의 음악이 주는 메시지 때문일까. 과연 인생이란 무엇인지, 잘 사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또 사는 동안 어떤 가치를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등의 매우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철학적이고 신중한 브람스의 성격이 성경의 메시지를 만나 침통한 슬픔 안에서도 밝게 빛나는 이 음악 덕분에 세상의 화려한 순간들이 으로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더라.
독일 레퀴엠 마지막 곡에서 말하는 영원한 휴식에 대한 이야기는 이 땅위에서 누릴 수 없는 천국의 평안함을 매우 서정적이고 달콤하게 그리고 있다.
많은 나라가 전쟁으로 인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처참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같은 슬픔으로 마음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이리라 생각하며 성탄의 기쁨을 맞이하기 전 꼭 한 번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옛날부터 가톨릭 교회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로 불리었으나 15세기부터는 다성부로 된 레퀴엠이 등장하게 되었고 낭만주의 시대가 되어서는 미사 음악 장르가 쇠퇴했지만 레퀴엠은 죽음이라는 주제의 심각성과 특유의 낭만성으로 많은 작곡가들이 레퀴엠을 작곡하였다.
한편 전통적인 가톨릭 교회의 레퀴엠 전례문이 라틴어 가사인 것과는 달리 마틴 루터의 독일어 성서에서 가사를 발췌한 레퀴엠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바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이다. 이 작품은 요하네스 브람스가 약 1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슈만의 죽음과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작곡되었다고 한다. 1868년 4월 10일 성금요일 브레멘에서 브람스의 지휘로 초연된 당시 음악을 접한 많은 이들이 눈물바다였다고 한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절한 무게감을 지닌 앙상블이 결합된 작품으로 소프라노와 바리톤 솔리스트가 합창과 함께 솔로 파트를 노래하나 1번부터 마지막 7번 곡까지 합창단의 음악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1곡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2곡 –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인간의 모든 영예란 풀에 핀 꽃과 같다
3곡 - 주여 알게 하소서 내게도 반드시 끝이 있음을
4곡 - 당신이 계신 곳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만군의 주님이시여!
5곡 -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6곡 - 우리가 영구히 머물 도성은 없고
7곡 -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초연 이후 소프라노의 아름다운 솔로 아리아가 있는 현재 5번 곡이 추가로 작곡되었는데 이 곡은 브람스의 마음을 유독 헤아려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따스한 어머니에 대한 애도심을 유독 많이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자신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던 어머니를 여의고 헤어나올 수 없는 슬픔에 괴로워했으나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으로 아픔을 승화시키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을 남겨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레퀴엠은 죽은 이를 달래는 음악을 넘어서 남은 자들에게 희망과 평안을 주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내한 공연에서 큰 호평을 받은 오슬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레퀴엠 연주를 하기 위해 오랜만에 오슬로까지 긴 여행을 했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을 벗어나서일까. 브람스의 음악이 주는 메시지 때문일까. 과연 인생이란 무엇인지, 잘 사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또 사는 동안 어떤 가치를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등의 매우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철학적이고 신중한 브람스의 성격이 성경의 메시지를 만나 침통한 슬픔 안에서도 밝게 빛나는 이 음악 덕분에 세상의 화려한 순간들이 으로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더라.
독일 레퀴엠 마지막 곡에서 말하는 영원한 휴식에 대한 이야기는 이 땅위에서 누릴 수 없는 천국의 평안함을 매우 서정적이고 달콤하게 그리고 있다.
많은 나라가 전쟁으로 인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처참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같은 슬픔으로 마음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음악이리라 생각하며 성탄의 기쁨을 맞이하기 전 꼭 한 번 들어보시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