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인권보호본부 연계지원팀 강명숙 팀장
"n번방 사태 4년…국민 공감대 커졌지만, 갈 길 멀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꼭 도움 청하길"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에게 가장 힘되는 말…'네 잘못이 아니야'"
"n번방 사태를 겪어오면서 디지털 성범죄가 문제라는 국민적 공감대는 분명 조성이 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자를 탓하는 시선은 남아있는 게 사실입니다.

"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등의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해 억대 이익을 얻은 이른바 'n번방'의 범행 실체가 드러난 지 4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n번방' 사건은 지난 2020년 2월 온라인 청원사이트인 국민동의 청원에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를 해결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에 10만명이 동의하면서 사회적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강명숙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연계지원팀장은 이와 비슷한 시기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로 발령받아 피해자 상담과 보호 업무를 맡고 있다.

강 팀장은 2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를 기점으로 문제의식은 커졌고 관련 법 개정도 이뤄졌지만, 동시에 범죄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며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기가 여전히 쉽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디성센터에 따르면 센터에 피해 촬영물 삭제 지원을 요청한 건수는 2020년 15만8천여건, 2021년 16만9천여건, 지난해 21만3천여건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상담 요청 건수도 2020년 1만1천여건, 2021년 1만7천여건, 지난해 1만9천여건으로 늘었다.

강 팀장은 "2020년만 하더라도 불법 촬영물 삭제 여부를 묻는 게 주된 상담 내용이었다면, 최근에는 피해를 겪은 이후 일상 회복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사건이 해결된 이후 일터로, 학교로 돌아간 피해자가 '불법 촬영물에 나온 나를 친구나 동료들이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서는 완전한 삭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탓에 조치가 이뤄진 1∼2년 후에 다시 해당 영상이 재유포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그만큼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며 "동시에 두렵다고 해서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담 과정에서 대인 기피증을 겪으면서 성폭력 상담소 문을 두드리는 데까지 수년이 걸린 피해자를 비롯해 '내 인생은 망가졌다'면서 자포자기하는 이들도 마주했다고 한다.

그래도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인지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도움의 손길을 구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혼자 무리하게 증거를 확보하려고 하면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며 "경찰서에 가기 전 디성센터 등에 동행 요청을 하면 진술할 때 훨씬 더 용이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법 촬영물 소지를 비롯해 유포 협박 등도 성폭력처벌법 범주에 포함되면서 피해자의 지위가 강화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면서도 "여전히 약한 처벌은 용기를 내어 재판장에 나선 피해자를 낙심하게 만든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러한 현실 탓에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가해자는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강 팀장과 디성센터 직원들의 한숨이 더 깊어지는 이유는 또 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에게 가장 힘되는 말…'네 잘못이 아니야'"
범죄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면서 가해자를 잡는 데까지 난관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불법 영상물 공유 사이트 서버를 해외에 두는 경우가 늘면서 긴밀한 국제 공조가 이뤄져야만 운영자를 검거할 수 있게 됐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이들의 일상 회복에 위해 필요한 부분을 묻자 강 팀장은 이렇게 답했다.

"피해자에게 가장 힘이 되는 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이에요.

비난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 메시지도 용기를 줍니다.

그래서 피해자와 상담할 때면 '너희가 괜찮아질 때까지 끝까지 돕겠다'고 약속합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