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말 귀담아 듣던 최초의 프로파일러, 그는 'FBI의 셜록'이 됐다 [노유정의 무정한 OTT]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범죄자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1970년대 말 미국. 강력 사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범죄의 동기는 모호해지고 있었다. 돈 혹은 치정 복수 등 분명한 목적이 있었던 이전 사건들과 달리, 연쇄살인이나 ‘묻지마 범죄’처럼 대상도 동기도 뚜렷하지 않은 사건들이 생겨났다. “악마거나 미친 사람이라서”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던 범죄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들의 심연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던 전문가들이 있었다. 범죄자 자신이 알건 모르건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이를 분석하고 분류해야 앞으로 발생할 강력 사건들의 범인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살인자의 생각을 추적하는 ‘마인드 헌터(mind hunter)’라 불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인드 헌터>는 실화를 다룬 드라마다. 실제 ‘마인드 헌터’로 통했던 미국 연방수사국(FBI) 행동과학부 요원들이 유명 범죄자들과 만나며 최초의 프로파일링 기법을 정립하고 수사 현장에 도입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프로파일링의 선구자인 전 FBI 요원 존 더글러스의 동명의 책이 원작이다.
존 더글러스를 모델로 한 홀든 포드(조너선 그로프 분)는 인질 협상을 담당하던 FBI 요원이다. 그는 자신이 설득해야 하는 범죄자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FBI의 수사 경험과 최근 범죄 동향을 전국의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강의하는 요원 빌 텐치(홀트 매캘러니)와 한 팀이 된다. 홀든의 선임 격인 빌의 실제 모델은 로버트 레슬러로 ‘연쇄살인범(serial killer)’이라는 용어를 만든 인물이다.
이들은 전국을 돌면서 수감된 악성 범죄자들을 인터뷰한다. 범죄 현장과 피해자 정보 등 기본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터뷰를 하며 범죄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는지, 피해자를 어떻게 골랐는지, 범죄자들이 언제 처음으로 폭력에 노출되며 그 경험이 이들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알아낸다. 이를 종합해 범인의 행동과 사고를 분석하고 범행 동기를 추론해낸다. 국내 프로파일링 도입 과정을 담은 한국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과 흐름은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프로파일러들은 FBI라는 참고 사례가 있었지만, 미 FBI 요원들은 ‘맨땅에 헤딩’을 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주위의 반발도 시행착오도 심했다. 현장의 경찰들은 범죄자를 정신병자로 여기고 혐오했다. 환경이 범죄자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홀든의 주장은 범인에게 면죄부를 준다고 여겼다. FBI 내부의 동료들은 살인자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 자체를 시간낭비로 봤다.
프로파일링이 실제 사건에서 성과를 내면서 주위 시선은 조금씩 바뀐다. 혼란스러운 사건 현장에서 홀든과 빌은 범인을 프로파일링해 용의자 후보를 좁히고 그의 다음 행동을 예측한다. 예컨대 개를 키우는 백인 할머니를 노린 연쇄 범죄를 분석해 ‘강압적인 어머니가 있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저소득층 30~40대 백인 남성’이라는 범인 프로파일링을 만드는 식이다. 홀든이 물증이 없는 범인에게서 자백을 받아내자 경찰들은 그를 셜록 홈즈라 부른다. 이 드라마는 일반 수사물과 다르다. 잔인한 범죄 현장의 재연도,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의 액션도 없다. 중요한 것은 말이다. 요원들이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흉악범들과 끈기있게 대화하며 어떻게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내는지, 범죄 현장에서 이들이 어떤 프로파일링으로 용의자 후보를 좁히는지가 드라마의 꽃이다.
다만 질문도 던진다. 프로파일링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가. 홀든은 직업 소개를 하러 초등학교에 갔다가 교장이 아이들의 양말을 벗겨 발을 만지고 돈을 준다는 제보를 받는다. 정서적 유대인지, 소아성애자의 성향이 표출되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FBI가 수사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교장의 자리는 위태로워진다.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범죄자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한 개인을 사회와 고립시켜도 되는가. 하지만 내버려뒀다가 피해자가 생긴다면.
드라마에서는 잘 나오지 않지만,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점이 있다. 범죄자는 결국 범죄를 저지르기로 선택한 사람이다. 마인드 헌터들이 만나는 범죄자들은 대체로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거나, 이성에게 차였거나,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좌절을 경험한다. 불행은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유사한 환경에서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로 선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범죄자는, 범죄자로 태어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1970년대 말 미국. 강력 사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범죄의 동기는 모호해지고 있었다. 돈 혹은 치정 복수 등 분명한 목적이 있었던 이전 사건들과 달리, 연쇄살인이나 ‘묻지마 범죄’처럼 대상도 동기도 뚜렷하지 않은 사건들이 생겨났다. “악마거나 미친 사람이라서”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던 범죄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들의 심연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던 전문가들이 있었다. 범죄자 자신이 알건 모르건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이를 분석하고 분류해야 앞으로 발생할 강력 사건들의 범인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살인자의 생각을 추적하는 ‘마인드 헌터(mind hunter)’라 불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인드 헌터>는 실화를 다룬 드라마다. 실제 ‘마인드 헌터’로 통했던 미국 연방수사국(FBI) 행동과학부 요원들이 유명 범죄자들과 만나며 최초의 프로파일링 기법을 정립하고 수사 현장에 도입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프로파일링의 선구자인 전 FBI 요원 존 더글러스의 동명의 책이 원작이다.
존 더글러스를 모델로 한 홀든 포드(조너선 그로프 분)는 인질 협상을 담당하던 FBI 요원이다. 그는 자신이 설득해야 하는 범죄자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FBI의 수사 경험과 최근 범죄 동향을 전국의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강의하는 요원 빌 텐치(홀트 매캘러니)와 한 팀이 된다. 홀든의 선임 격인 빌의 실제 모델은 로버트 레슬러로 ‘연쇄살인범(serial killer)’이라는 용어를 만든 인물이다.
이들은 전국을 돌면서 수감된 악성 범죄자들을 인터뷰한다. 범죄 현장과 피해자 정보 등 기본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터뷰를 하며 범죄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는지, 피해자를 어떻게 골랐는지, 범죄자들이 언제 처음으로 폭력에 노출되며 그 경험이 이들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알아낸다. 이를 종합해 범인의 행동과 사고를 분석하고 범행 동기를 추론해낸다. 국내 프로파일링 도입 과정을 담은 한국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과 흐름은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프로파일러들은 FBI라는 참고 사례가 있었지만, 미 FBI 요원들은 ‘맨땅에 헤딩’을 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주위의 반발도 시행착오도 심했다. 현장의 경찰들은 범죄자를 정신병자로 여기고 혐오했다. 환경이 범죄자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홀든의 주장은 범인에게 면죄부를 준다고 여겼다. FBI 내부의 동료들은 살인자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 자체를 시간낭비로 봤다.
프로파일링이 실제 사건에서 성과를 내면서 주위 시선은 조금씩 바뀐다. 혼란스러운 사건 현장에서 홀든과 빌은 범인을 프로파일링해 용의자 후보를 좁히고 그의 다음 행동을 예측한다. 예컨대 개를 키우는 백인 할머니를 노린 연쇄 범죄를 분석해 ‘강압적인 어머니가 있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저소득층 30~40대 백인 남성’이라는 범인 프로파일링을 만드는 식이다. 홀든이 물증이 없는 범인에게서 자백을 받아내자 경찰들은 그를 셜록 홈즈라 부른다. 이 드라마는 일반 수사물과 다르다. 잔인한 범죄 현장의 재연도,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의 액션도 없다. 중요한 것은 말이다. 요원들이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흉악범들과 끈기있게 대화하며 어떻게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내는지, 범죄 현장에서 이들이 어떤 프로파일링으로 용의자 후보를 좁히는지가 드라마의 꽃이다.
다만 질문도 던진다. 프로파일링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가. 홀든은 직업 소개를 하러 초등학교에 갔다가 교장이 아이들의 양말을 벗겨 발을 만지고 돈을 준다는 제보를 받는다. 정서적 유대인지, 소아성애자의 성향이 표출되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FBI가 수사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교장의 자리는 위태로워진다.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범죄자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한 개인을 사회와 고립시켜도 되는가. 하지만 내버려뒀다가 피해자가 생긴다면.
드라마에서는 잘 나오지 않지만,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점이 있다. 범죄자는 결국 범죄를 저지르기로 선택한 사람이다. 마인드 헌터들이 만나는 범죄자들은 대체로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거나, 이성에게 차였거나,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좌절을 경험한다. 불행은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유사한 환경에서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로 선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범죄자는, 범죄자로 태어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