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9천만원 위자료 인정…"육체·정신적 고통 경험칙상 인정"
법원 "국가, 전두환 정권 프락치 강요 피해자에 배상해야"
법원이 전두환 정권 때 고문을 받고 프락치(신분을 감추고 활동하는 정보원) 활동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황순현 부장판사)는 22일 이종명·박만규 목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각 9천만원씩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두 사람이 청구한 위자료는 각 3억원이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불법 구금을 당하고 폭행·협박을 받아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으며 그 후에도 감시·사찰받은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며 "이로 인해 원고들이 육체·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이 경험칙상 인정돼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소멸 시효가 완성됐다는 국가의 항변에 대해서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결정에 기초해 권리행사를 하는 원고들에 대해 시효를 주장하며 배상을 거부하는 것은 권리 남용에 해당해 용납되기 어려워 허용할 수 없다"고 기각했다.

이 목사는 학생군사교육단(학군단·ROTC) 후보생이던 1983년 9월 영장 없이 507보안대로 끌려가 일주일간 고문을 당하며 조사를 받았고 동료 학생들에 대한 감시와 사상·동향 보고 등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했다.

박 목사도 같은 시기에 육군 보안사령부 분소가 있는 과천의 한 아파트로 끌려가 열흘가량 구타·고문을 당하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는 등 피해를 봤다고 했다.

이들은 진실화해위가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을 조사한 뒤 지난해 12월 보낸 진실규명 결정통지서 등을 토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진실화해위는 조사 결과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해 187명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박 목사는 선고 뒤 법원 인근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재판부가 40여년 전 당했던 국가 폭력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인정해줘 감사한 마음"이라면서도 "피해자들이 일일이 소송할 것이 아니라 (명예회복·보상 관련 특별법 제정 등) 진실화해위 권고 사항이 이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송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는 "과연 법원에서 인정한 9천만원이 국가에 다시는 이런 사건이 재발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져볼 만한 금액인지, 피해가 회복되는 금액인지 당사자와 논의해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