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전설' 거장 4인방의 묵직한 멋, '오래된 미래'를 보여주다 [리뷰]
오랜 맛집은 섣불리 메뉴를 늘리지 않는다.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인 맛이 흐려질까 봐서다. 내공에서 나오는 맛은 쉽게 따라 하기 어렵다. 음악도 비슷하다. 20년 넘도록 무대에서 악기를 다루는 이들의 화음은 남다르다. 잔기술 없이 기본기만으로 관객을 홀린다. 밴드 멤버 평균 나이 64세로 이뤄진 재즈 밴드 '서울재즈쿼텟' 이야기다.

19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펼쳐진 서울재즈쿼텟 콘서트에서 멤버들은 정통 재즈의 진가를 들려줬다. 화려한 즉흥 연주와 현란한 기교 없이 재즈 본연의 흥취를 끌어냈다. 20여년 넘게 켜켜이 쌓인 재즈 내공은 10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킨 노포(老鋪)의 맛처럼 묵직했다.

서울재즈쿼텟은 국내 최고의 색소포니스트 이정식,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드러머로 활동했던 김희현, 베이시스트 장응규, 1990년대 대표 재즈 피아니스트 양준호로 이뤄진 재즈 밴드다. 대중가요가 주류를 이루던 1980년대 후반 재즈를 앞세워 뭉친 팀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맞아 개최된 '한강국제재즈페스티벌'이 이들의 데뷔무대였다.

서울재즈쿼텟은 1990년대 후반 해체했다. 멤버들은 각자의 밴드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조용필, 이승환, 김현철,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신승훈 등 가요 음반 곳곳에 재즈 선율을 선보였다.

오랜 내공 덕에 이날 연주는 간결했다. 김희현의 드럼 솔로로 시작된 무대는 장응규의 베이스가 깔리고, 그 위에 양준호의 청아한 피아노 선율이 쌓였다. 음악의 기반이 닦이자 이정식의 색소폰 연주로 정점을 찍었다. 우직한 연주였다. 잔기술을 선보이지 않고, 강약 조절과 리듬 변주만으로 연주의 박진감을 더했다.

이날 이정식의 색소폰은 신들린 듯 춤췄다. 베이스와 드럼이 리듬을 탄탄하게 구성하자 자유로이 즉흥 연주를 펼쳤다. 놀이기구처럼 음의 높낮이가 변하고, 음량이 널뛰어도 무대의 흐름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양준호가 중간에서 조율을 해주며 감초 역할을 해 준 덕이다. 모두의 연주가 돋보였지만, 분위기가 산만해지지 않은 이유다.

공연의 숨은 맛은 한국식 재즈에 있었다. 서울재즈쿼텟은 이날 자작곡 '송 포 마이 프렌즈'를 초연했다. 이어 'K 블루스', '뱃노래 변주곡' 등을 들려줬다. 국악의 가락을 재즈로 탈바꿈한 레퍼토리였다. 색소폰은 소리꾼이 창을 하듯 들렸다. 베이스는 징 소리처럼 묵직한 저음을 뿜어냈다. 드러머 김희현은 판소리의 고수처럼 박자를 탔다. 이들을 엮어주는 피아노 소리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서울재즈쿼텟이 재해석한 재즈는 모방에 그치지 않았다. 재즈 악기로 국악기 소리를 따라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재즈 리듬에 덧씌웠다. 한 분야에 오랜 세월을 쏟아부은 거장들의 연주다웠다. 하나에 통달하니 다른 장르를 개척하는 것도 자유로웠다. 한국 재즈의 '오래된 미래'를 선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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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무대에는 재즈 디바 겸 피아니스트 마리아 킴과 재즈 1세대 보컬 김준도 깜짝 출연했다. 마리아 킴의 감미로운 솔로에 이어 김준의 탁하고 거친 보컬이 대비를 이뤘다. 새로운 곡을 듣는 관객들의 피로도가 줄어들었다.

옥에 티는 남았다. 2시간 남짓 펼쳐진 공연에서 너무 많은 것을 들려주려 한 탓이었을까. 서울재즈쿼텟은 스윙과 펑키, 블루스, 국악과 재즈 등 장르를 이리저리 넘나들었다. 무대 하나하나는 명연이었다. 하지만 공연 전체의 일관된 흐름이 보이지 않았다.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를 감상한 느낌이 들었다. 거장이 들려주는 정통 재즈 사운드를 원했던 관객도, 새로운 선율을 듣기 원하는 관객 모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구성이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