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수능일마다 수험생 수송봉사…학사모·모닝캄 등 50여개 단체 동참
"깨워줄 사람 없어 늦잠 잔 소녀가장도…내 아이 수능이란 마음으로 봉사"
"엉뚱한 고사장 간 수능생, 목숨 걸고 데려다주니 시험 5분전"
"우리 애가 시험을 본다는 마음으로 해오고 있어요.

"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시민단체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학사모)의 최미숙(64) 상임대표는 22년째 수험생 수송 자원봉사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이렇게 밝혔다.

학사모는 2002년부터 매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날마다 교통편이 필요한 학생들을 시험장까지 태워주는 봉사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최 대표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애들이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아파도 참으면서 공부하는데 수능 날 하루만이라도 편하게 시험을 볼 수 있었으면 했다"며 봉사를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학사모 전국 12개 지부에서 60여대의 차량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전국모터싸이클동호회 모닝캄, 한국재능봉사단, 바이크를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바사모) 등 50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하는 큰 연례행사가 됐다.

이들은 서울경찰청을 비롯한 경찰·소방 당국과도 협조하며 급하게 이동해야 하는 수험생들을 돕고 있다.

바사모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 강서경찰서로부터 두 차례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최 대표는 "이제는 경찰에서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한다"며 "연대 단체들과는 한 달 전부터 준비하는데 이제는 서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정도로 손발이 잘 맞는다"며 웃었다.

"엉뚱한 고사장 간 수능생, 목숨 걸고 데려다주니 시험 5분전"
학사모의 수험생 수송 자원봉사는 장애 등의 이유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몸이 아픈 학생들을 우선 대상으로 한다.

사전 신청을 한 학생들의 경우 봉사자들이 수능 당일 집 앞에 찾아가 시험장까지 데려다준다.

그 외 남는 승용차나 오토바이는 늦잠, 시험장소 착오, 수험표를 집에 놓고 오는 경우 등 다양한 이유로 긴급수송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해 전국 곳곳에서 대기한다.

학사모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모닝캄의 조병일(70) 고문은 "입실 마감 시간 20분 전에 시험장을 잘못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학생과 학부모를 만난 적도 있다"며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오토바이를 운전해 5분 전에 도착했다"고 회상했다.

"학생을 정문 앞에 내려주고 바이크를 돌려세우는데 식은땀이 쫙 나더라고요.

정말 말로 표현 못 할 경험이죠. 아직 한 번도 사고가 난 적이 없는데 참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
최 대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수능 당일 늦잠을 잔 소녀 가장을 데려다준 경험을 꼽았다.

"소녀 가장이다 보니 깨워줄 사람이 없었던 거죠. 알람 소리를 못 들었대요.

다행히 그 학생을 아시는 분이 연락이 와서 가까스로 입실시켰죠.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더라니까요.

"
수험생 수송 자원봉사의 최대 변수는 날씨다.

차가 막히더라도 학생들을 제시간에 데려다줘야만 하는 봉사자들 대부분은 오토바이를 이용하는데,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사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엉뚱한 고사장 간 수능생, 목숨 걸고 데려다주니 시험 5분전"
올해 수능일의 경우 오전에 비 소식이 예보되면서 봉사자들의 걱정이 컸다고 최 대표는 설명했다.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이 정말 많았죠. 조 고문님이나 다른 분들이랑 계속 연락도 하고 그랬는데 너무나 다행히 아이들이 모두 (시험장에) 들어가니 그제야 비가 오더라고요.

"
봉사자들은 도움을 준 학생들의 감사 인사가 가장 큰 보람이라며 힘이 닿는 한 수험생 수송 봉사는 계속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호연(66) 한국재능봉사단 대표는 "감기 기운이 굉장히 심해 아픈 친구를 시험장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복숭아를 사 들고 사무실까지 온 적도 있다"며 "무엇보다 '시험을 잘 봤다'는 얘기를 들어 굉장히 좋았다"고 했다.

변성수(31) 바사모 이사도 "시험장 앞에 도착하면 응원하던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환호해주시고 학생도 고맙다고 해줄 때면 너무 기쁘다.

또 저희가 태웠던 친구들이 바사모에 들어와 활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게 보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매년 하는 수송 봉사가 하나의 습관이 된 것 같다는 조 고문은 "안 하면 어디가 아픈 것 같고 찝찝하다.

아마 힘이 닿는 만큼 오래오래 할 것 같다"는 포부를 밝혔다.

"엉뚱한 고사장 간 수능생, 목숨 걸고 데려다주니 시험 5분전"
최 대표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봉사활동에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우리나라만큼 수능 날 야단법석인 곳이 없다고 하잖아요.

그 하루로 아이들의 대학 입시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이겠죠. 그러니 그날만큼은 온 국민이 수험생이 다 내 자녀라는 생각으로 봉사에 동참해주셔서 아이들이 좀 더 편하게 시험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