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문
주돈이

바람이 불면 저절로 닫히고
일 없을 땐 한낮에도 늘 닫혀 있네.
열리고 닫힘이 그때그때 형편에 따르니
하늘과 땅 사이의 이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네.

書春陵門扉

有風還自掩, 無事晝常關.
開闔從方便, 乾坤在此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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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메리 장군의 승리 비결 [고두현의 아침 시편]
주돈이(周敦頣,1017~1073)는 송나라 유학자입니다.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고 새로운 유교이론을 창시했지요. 그는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면서 우주 생성 원리와 인간의 도덕 원리가 같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시를 통해서는 최고의 진리야말로 ‘스스로 그러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처럼 무엇이든 억지로 하면 실패하지요. ‘열리고 닫힘이 그때그때 형편에 따르’는 사립문처럼 크고 작은 일에도 순리가 있습니다. 가장 큰 힘은 자연스러움에서 나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은 독일과 이탈리아군을 상대로 북아프리카에서 주도권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초반엔 무능한 이탈리아군을 상대로 연일 승리를 거뒀죠. 그러나 ‘사막의 여우’라 불리는 롬멜 장군의 등장으로 수세에 몰리게 됐습니다. 롬멜은 새로운 전략과 기갑군의 기동 전술로 영국군을 궁지로 몰아붙이며 승승장구했지요.

영국의 처칠 총리는 주둔군 사령관을 몽고메리 장군으로 바꿨습니다. 그러면서 독일군을 빨리 몰아내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몽고메리 장군은 이를 무시하며 차근차근 공세 준비에만 몰두했습니다.

계속된 패배와 불리한 전황 때문에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지만, 몽고메리는 서둘지 않았지요. 우선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장병들의 기본 훈련부터 충실하게 시켰습니다. 또 보급이 원활하지 못한 롬멜의 상황을 역이용하면서 물량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전선이 재정비될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렸지요.

몽고메리는 당장의 승리라는 작은 열매에 혹하지 않았습니다. 전술의 이치에 맞도록 전력을 강화하고 전략을 꼼꼼하게 수립했습니다. 전쟁의 근본을 알아야 승리한다는 그의 지론이 있었기에 어떤 재촉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엘 알라마인 전투에서 그는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대승을 거두었고, 참패한 독일은 북아프리카에서 완전히 철수할 수밖에 없었지요.

흔히 지도자의 유형을 4가지로 나눕니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리더, 똑똑하나 게으른 리더, 멍청하나 부지런한 리더, 멍청하고 게으른 리더. 그중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리더는 바로 멍청하나 부지런한 리더죠. 이것저것 전략적 여유도 없이 마구 들쑤시는 지휘관은 일만 많고 성과가 없습니다.

가장 훌륭한 리더는 똑똑하나 게으른 리더인데, 상황 판단이 민첩하고 핵심을 꿰뚫어 볼 줄 알기 때문에 전체적인 상황과 흐름을 잘 읽습니다. 그래서 안목과 여유를 가지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전략적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이런 리더십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움 속에서 나오는 것이죠. 틀에 갇힌 사고로는 기껏 문제를 풀 공식만 얻을 뿐, ‘스스로 그러한’ 원리와 원칙을 깨닫기 어렵습니다.

자유롭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 큰 물결의 흐름처럼 승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전투를 이끌고 준비했던 몽고메리의 사례를 보면 이런 원리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