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설 축제 가판대 낙찰했지만 당국 돌연 계약 거부
홍콩 '최대 야당' 민주당 손발묶여…선거·모금·축제참여 좌절
홍콩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모든 공직 선거 참여가 좌절되고 후원 모금 행사도 열리지 못하는 가운데 축제 참여마저 무산됐다.

정당으로서 모든 대외 활동에 손발이 묶인 것으로 존립 가능성이 희박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홍콩 명보에 따르면 전날 홍콩 제1야당인 민주당은 내년 2월 빅토리아 파크에서 열리는 설 축제의 가판대 입찰에 참여해 낙찰에 성공했지만 당국이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계약 체결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홍콩 정부는 매년 빅토리아 파크 등 15곳에서 설맞이 축제를 개최하며 입점할 가판대를 입찰을 통해 선정했다.

코로나19로 지난 4년간은 꽃 등 일부 품목 판매만 허용됐고 내년 설부터는 음식 등 다양한 품목 가판대 설치가 재개된다.

많은 이들이 지난 13일 진행된 가판대 입찰에 참여했고 그중에는 민주당 당원들도 있었다.

로킨헤이 민주당 주석은 당원 2명이 가판대 입찰에 참여해 낙찰됐지만 식품환경위생서가 '정부는 어떤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계약 체결을 거부할 절대적인 권리가 있다'는 입찰 규정을 들며 계약 체결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로 주석은 "당연히 우리는 실망했다.

과거 설 축제는 대중과 소통할 좋은 기회였다"며 "가판대 입찰에 성공했음에도 설 축제에서 결국 대중을 만나지 못하게 돼 애석하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이 설 축제에서 쫓겨난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의에 논평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민주당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음을 인정했다.

식품환경위생서는 이에 대한 명보의 질의에 개별 사례에 대해 논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홍콩 정부는 빅토리아 파크 설 축제에서 경찰들이 순찰하며 국가보안법 위반 상품이나 전시품이 있는지를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6월 홍콩국가보안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설 축제에는 여러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참여했고 사회 풍자적인 장식품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홍콩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 촛불 집회를 개최해온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는 32년 만에 처음으로 2021년 설 가판대를 운영하던 중 당국의 명령으로 가판대를 닫아야 했다.

당시 지련회는 빅토리아 파크 가판대에 "6월 4일의 명예를 회복하고 끝까지 싸워라"는 배너를 내걸었다.

중국 당국이 1989년 6월 4일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유혈 진압한 뒤 이를 '정치 풍파', '동란'으로 규정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명보는 과거에도 당국이 몇차례 설 축제 도중 민주 진영 단체의 가판대 운영을 중단시킨 적이 있었지만 모두 이유를 설명했다면서 입찰 단계에서 참여를 막은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 홍콩마카오연구협회 라우시우카이 고문은 명보에 "정부가 설 행사에서 정치적 선전이 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며 "그러나 이 일로 민주당이 더 이상 살아남을 여지가 없는지를 판단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제정 후 홍콩 민주 진영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공민당 등 주요 정당이 해산하면서 민주당은 홍콩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사실상 유일한 민주 진영 정당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2021년 홍콩 선거제가 '애국자'만 참여할 수 있도록 개편된 후 입법회(의회)와 구의회에 출마조차 할 수 없게 됐고, 후원금 모금 행사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3년 연속 예약한 행사장들이 모두 행사 직전에 장소 대여 취소를 통보하면서 열리지 못하고 있다.

입법 기구는 물론, 풀뿌리 기구 참여도 원천 봉쇄되고 대중과의 교류 행사도 가로막힌 민주당이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