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영국 중부 블레츨리 파크에서 열린 영국 인공지능(AI) 안전 정상회의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뒷모습. /REUTERS
지난 1일 영국 중부 블레츨리 파크에서 열린 영국 인공지능(AI) 안전 정상회의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뒷모습. /REUTERS
“아빠는 여기 테슬라 공장에 지원해볼 생각 없어?”

2015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의 한 도로. 리처드 오르티스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운전 중이었다. 옆 좌석의 아들이 낯선 흰색 벽의 거대한 건물을 가리켰다. 사실 외관만 낯설 뿐이다. 그는 그 공장을 잘 알고 있었다. 누미(New United Motor Manufacturing inc., NUMMI). 무려 20년 가까이 일했다. 청춘을 바친 곳이지만 지금은 없는 이름이다.

“아버지가 종일 네 얘기만 하신다. 넌 우리 가족의 자랑이야”

오르티스는 어릴 때부터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집 인근에 제너럴모터스(GM) 공장이 있었다. 1970년대 동네 사람들 누구나 이 공장의 정규직을 원했다. 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1980년대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2010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있는 누미(NUMMI) 공장에서 마지막 도요타 코롤라 세단이 생산라인에서 내려오자 직원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도요타의 합작 회사였던 이 공장은 26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후 테슬라가 이 공장을 인수했다.  /한경DB
2010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있는 누미(NUMMI) 공장에서 마지막 도요타 코롤라 세단이 생산라인에서 내려오자 직원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도요타의 합작 회사였던 이 공장은 26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후 테슬라가 이 공장을 인수했다. /한경DB

영광과 쇠락, 누미의 추억

당시 미국차는 도요타 등 일본차의 진출로 경쟁에서 밀렸다. GM은 프리몬트 공장을 폐쇄하려 했다. 강성노조가 파업을 일삼은 최악의 공장이었다. 도요타는 미국 현지 공장이 필요했다. 양사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1984년 GM-도요타 합작공장 누미가 탄생했다. 오르티스는 1989년 고용됐다. 온 가족의 경사였다.

도요타는 미국 공장에 자국의 생산 방식을 도입했다.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재고를 최소화하려 했다. 표준화된 작업과 품질을 강조했다. 불량이 발생하면 작업자가 공정을 멈출 수 있게 했다. 적시생산시스템(JIT)으로 불린 이 방식은 글로벌 자동차 생산의 표준이 됐다.

오르티스는 업무강도가 센 차량 도장 작업에 배치됐다. 그는 눈치가 빨랐다. 도요타의 생산 방침을 바로 몸에 익혔다. 사내 정치 감각도 있었다. 어느새 전미자동차노조(UAW) 지부 위원 자리에 올랐다. 집도 마련하고 가정을 이뤘다. 어엿한 중산층이었다.

공장이 궤도에 오르자 고질병이 도졌다. 노조 내부 사내 정치가 극단을 치달았다. 오르티스는 이에 신물이 났다. 개인적으로 이혼까지 겪었다. 2006년 회사를 박차고 떠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있는 테슬라 공장 전경. 2010년 테슬라는 GM과 도요타의 합작공장이었던 누미(NUMMI)를 인수했다. 현재까지 캘리포니아의 유일한 자동차 공장이다. 테슬라에 따르면 연간 65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AFP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있는 테슬라 공장 전경. 2010년 테슬라는 GM과 도요타의 합작공장이었던 누미(NUMMI)를 인수했다. 현재까지 캘리포니아의 유일한 자동차 공장이다. 테슬라에 따르면 연간 65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AFP

망한 공장 인수한 ‘30대 벼락부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파산에 몰린 GM은 ‘애물단지’ 누미 공장에 손을 뗐다. 홀로 남은 도요타도 2010년 철수를 선언했다. 평생 고용 약속은 부도 수표가 됐다. 5000명의 직원이 실직 위기에 처했다. 많은 이들이 노조 지도부를 탓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행히 그해 공장의 새 주인이 등장했다. ‘테슬라 모터스’라는 이름도 생소한 신생 자동차 기업이었다. 일각에선 누미 공장을 사실상 거저 인수했다고 수군댔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인수금액은 4200만달러(약 550억원). 캘리포니아주에서 2000만달러 세제 혜택을 지원했다.

리더인 일론 머스크는 30대 ‘실리콘밸리 벼락부자’였다. 그는 전기차를 만들고 로켓 회사를 운영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팔리지도 않을 차를 왜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공장만 다시 가동될 수 있다면.
지난 1일 영국 중부 블레츨리 파크에서 열린 영국 인공지능(AI) 안전 정상회의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생각에 잠겨있다. /AFP
지난 1일 영국 중부 블레츨리 파크에서 열린 영국 인공지능(AI) 안전 정상회의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생각에 잠겨있다. /AFP

두렵지만 존경스러운 보스

아들과 드라이브를 한 그날 밤 오르티스는 테슬라에 입사 지원서를 제출했다. 시간제 노동자로 다시 공장에 출근했다. 어두컴컴했던 공장은 밝고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다. 일은 금세 익숙해졌다. 하지만 동료들은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했다. 당시 테슬라는 적자기업이었다. 자금난에 늘 허덕였다. 무엇보다 누미는 테슬라 같은 신생기업이 감당하기엔 큰 공장이었다. 자동차 연 50만대를 생산할 수 있었다. 2015년 테슬라의 차량 배송량은 5만대에 불과했다.

오르티스가 보기에 테슬라의 생산 공정은 주먹구구식이었다. 도요타의 제조업 정신은 5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부품이 맞지 않거나 이상해도 그냥 쓰라고 지시받았다. 조립 라인 막판에 가서야 수리하는 일이 잦았다. 근로자들은 수작업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작업 안전사고율이 치솟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생산한 모델X는 결함투성이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있는 테슬라 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차량 조립을 하고 있다. /테슬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있는 테슬라 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차량 조립을 하고 있다. /테슬라
머스크는 되레 큰소리를 쳤다. 월가에 2015년 말 주당 1000대를 생산할 것이라고 했다. 터무니없는 목표였다. 그는 아예 공장에 매트리스를 가져다 놓고 노숙을 시작했다. 관리자들에게 욕과 고함을 섞어가며 생산을 채근했다. 하루는 저녁에 근로자들을 모아놓고 수고가 정말 많다며 눈물을 글썽이며 격려했다. 새벽 3시에 ‘무결점 생산 축하’ 행사를 열기도 했다.

직원들은 동료애로 똘똘 뭉쳤다. 머스크는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걸 세상에 증명해 보이자고 독려했다. 상당수는 이 성마른 보스를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했다. 머스크가 공장에 나타나면 중간 관리자들은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하급 직원들은 사기충천했다.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있는 테슬라 공장에서 직원들이 누적 200만대 생산을 축하하는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테슬라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있는 테슬라 공장에서 직원들이 누적 200만대 생산을 축하하는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테슬라

“공장에서 모든 근로자를 끌어낼 거요”

오르티스는 이 모든 상황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머스크가 싫지는 않았다. 아들은 머스크를 ‘테크 히어로’라고 부를 정도로 팬이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공장엔 새로운 힘이 필요했다. UAW의 옛 동지들을 비밀리에 만났다. 그들은 테슬라에 노조를 세울 계획이었다. 오르티스도 찬성했다. “저 공장에서 모든 근로자를 끌어내야죠. 회사가 우리를 인정해야 할 겁니다” 그는 기세등등했던 누미 시절의 자신을 떠올렸다. 테슬라 UAW 지부장이 어른거렸다.

2016년 여름 오르티스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초기 노조 결성에 이름을 올린 이는 단 두 명이었다. 오르티스와 호세 모란. 과거 모란도 누미 공장에서 UAW 소속이었다. 둘은 틈날 때마다 직원들에게 전단을 나눠주며 노조 설립을 홍보했다. 이듬해 2월 모란은 온라인에 “테슬라의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직원들은 초과근무에 시달리고 있지만 회사에 찍힐까 두려워 말을 꺼내지 못한다”고 폭로했다. 이어 “노조가 생기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테슬라 직원이 노조에 투표하는 걸 막을 순 없다. 당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노조 회비를 내고 스톡옵션을 포기할 이유가 있을까?”
- 2018년 5월 일론 머스크 X 중

머스크는 격분했다. 그는 트위터(현 X)에 “모란은 UAW의 돈을 받고 직원들을 선동했다”며 “UAW는 2010년 누미를 죽였고 근로자를 나 몰라라 했다. 그 공장을 살린 게 테슬라”라고 반박했다. 당시 머스크는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었다. 모델3 생산이 전혀 속도가 나질 않았다. 테슬라는 ‘생산 병목현상’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1000대나 들여온 로봇이 말썽이었다. 근로자들은 수작업으로 차를 만들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있는 테슬라 공장에서 로봇이 차량을 제작하고 있다. /테슬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있는 테슬라 공장에서 로봇이 차량을 제작하고 있다. /테슬라

무산된 노조 결성, 하지만…

테슬라의 노조 결성 움직임에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관심을 보였다. 의원들은 테슬라에 작업장의 안전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테슬라는 직원을 보내 해명했다. 그는 본인이 장비 기술직으로 연봉을 13만달러(약 1억7000만원)나 받는다며 회사를 두둔했다. 모란과 오르티스는 사내 직원 명부에 몰래 접속해 그 ‘회사 프락치’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다. “회사는 자기 사람들만 챙기고 정작 고된 일을 하는 직원은 본체만체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경솔한 행동이었다. 테슬라 인사팀은 노조 결성 세력을 뿌리 뽑으려 벼르던 참이었다. 인사위원회가 열렸고 두 직원에게 징계가 내려졌다. 회사 방침을 어기고 정보를 누설했다는 이유였다. 오르티스는 결국 해고됐다. 노조 티셔츠를 입고 공장을 출근하던 사람들도 점차 사라졌다.

3년 뒤인 2020년 테슬라 주가가 치솟았다. 2017년 20달러선을 맴돌던 주가는 200달러를 돌파했다. 10배 폭등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주가에 직원들은 입이 벌어졌다. 테슬라 직원은 급여와 함께 주식을 받는다. 급등한 주가와 반비례로 회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사람들은 테슬라와 머스크 신화를 칭송했다.
숀 페인 전미자동차노조(UAW) 위원장이 지난 9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파업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REUTERS
숀 페인 전미자동차노조(UAW) 위원장이 지난 9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파업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REUTERS
다시 3년이 흘렀다. 지난 10월 UAW는 미 자동차 3사와의 임금협상에서 완승했다. 사상 최초 3사 동시 파업으로 4년간 임금 25%를 올렸다. 숀 페인 UAW 위원장은 “머스크 같은 탐욕스러운 억만장자들이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로켓을 만들고 셀카 놀이를 하고 있다”며 “테슬라, 도요타, 혼다 직원들은 미래의 노조원이다”고 선전포고했다. 노조 없는 수천 명의 노동자가 손을 내밀고 있다고도 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UAW 지지율은 75%에 달한다. 테슬라 주가는 2021년 고점 대비 반토막 수준이다.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 주 <테슬람이 간다>는 팀 히긴스의 「테슬라 전기차 전쟁의 설계자」에 서술된 노조 관련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그 외 미카엘 발랑탱의 「테슬라 웨이」, 찰스 모리스의 「테슬라모터스」 등을 참고했습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