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브랜드 알리는 동포 차세대] ②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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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기반 20년간 유럽·미주·고국 무대서 최연소 협연
3살 입문해 30년 한 우물…"음악과 바이올린은 내 열정이고 사랑" 강성철·이다솜 코리아넷 기자 = "바이올린을 만난 건 운명이었어요.
음악과 바이올린은 제 열정이고 사랑이죠."
제주도에서 태어난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32) 씨는 3살 때 바이올린을 처음 접한 뒤 천재적인 두각을 드러냈다.
이듬해엔 빈 국립음대 예비학교에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달고 입학하는 기적까지 이뤄냈다.
이후 5살 때 헝가리 사바리아 오케스트라와의 첫 협연을 시작으로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오케스트라(13세), 스페인 국립방송 오케스트라(14세),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닉(15세), 몬테카를로 오케스트라(16세), 마드리드국립방송 오케스트라·KBS교향악단(17세) 등과 공연하며 항상 '최연소 협연' 기록을 세웠다.
19살에 빈 국립음대를 최연소로 졸업한 그는 '신동 바이올리니스트(CNN)', '세계 30대 미스터리(프랑스TF1)'의 찬사를 받으며 차세대 연주가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오스트리아를 주거지로 둔 재외동포로 유럽·미주·한국 등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지독한 연습벌레이기도 하다.
바이올린을 잡기 시작하고부터 20대까지 매일 10시간을 연습한 그는 최근에는 7∼8시간으로 줄였다.
대신 남는 시간에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난달 전주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위해 방한한 그를 연합뉴스와 코리아넷이 8일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가장 먼저 배운 악기는 피아노였다.
활발한 성격이라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는 게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는 중 3살 때 어머니 지인을 통해 바이올린을 접하게 됐다.
서서 연주하는 악기다 보니 멋스러워 보였고 배우는 게 즐거워서 바이올린으로 옮겨왔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오케스트라 공연을 자주 보여주신 영향도 컸다.
어렸음에도 바이올린 파트의 소리가 좋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게 3살짜리 시선을 사로잡았다.
-- 최연소 빈 국립음대 예비학교에 입학했다는데 어떻게 오스트리아에 가게 됐나
▲ 오스트리아에 정착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바이올린을 배운 지 1년이 되었을 때 빈에 계시던 이모 집에 여름에 잠깐 놀러 갔었다.
이모는 영재들을 잘 가르치는 유명한 선생이 있는데 개인 교습을 한번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실력이 어떤지 테스트한다기에 별생각 없이 연주했는데 끝나자마자 선생이 이모에게 아예 제자로 받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엄청나게 연주를 잘해서가 아니었지만 선생은 '이 아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놀러 간 빈에서 첫 스승을 만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쭉 빈에 거주하고 있다.
-- 무대에서 협연할 때마다 '최연소'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부담감은 없었는지
▲ 최연소라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물론 어린아이가 큰 무대에 선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을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음악을 선보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만 했다.
--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 간의 합을 맞추는 과정이 어렵진 않았는지
▲ 첫 협연을 5살 때 했다.
5살짜리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 처음으로 무대의 맛을 느꼈던 거 같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수없이 연습하고 완성된 연주를 보여주는 그 과정이 너무 좋다.
연습을 통해 밝고 좋은 감정뿐 아니라 고통과 어려움을 모두 겪고 느껴야 비로소 제대로 곡을 연주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 모든 과정을 즐기는 자세로 임할 수 있는 건 내가 무대를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 연주한 수많은 국제 무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 매 공연이 다 의미 있기 때문에 한 무대만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23살에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엔 음악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생각이 많아 힘이 들었다.
그래도 연주는 해야 하니 이를 악물고 준비했다.
공연 당일 무대에 서서 연주하는데 문득 이 자리가 너무도 귀하게 느껴지면서 강한 에너지를 받았다.
연주 후 기립박수를 받자 힘들었던 게 다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무대가 끝나고 울었다.
음악가들이 다양한 감정을 겪어보는 게 왜 중요한지, 음악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는 지를 그때 배웠다.
덕분에 많이 성숙해졌다.
-- 3살 때 바이올린을 잡은 이래 30년째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지치지 않는 비결이 궁금하다
▲ 음악은 내 인생에서 0순위이고 목표는 연주자로서 오래 잘하는 것이다.
그만큼 음악과 바이올린은 내 열정이고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매일 그 에너지가 같을 수 있겠나.
에너지가 떨어졌을 때 다시 동기부여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특히 역동적인 운동을 통해서 그 열정과 에너지를 재충전한다.
재충전을 위해서 음악가들에게는 취미가 중요하다.
-- 한인 연주자로서 국제무대에서 받은 평가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
▲ 지금 생각해 보면 늘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서 눈치를 봤던 게 못내 아쉽다.
예전에는 모든 사람이 내 음악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주를 준비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 스스로를 위해 음악을 하는 거지 남들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래서 평가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K-컬처에 대한 인기가 엄청나다.
클래식 분야에서의 한류는 어떤지
▲ 클래식 분야에서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동양인이 국제 무대에 서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연주자들의 실력이 매우 압도적이어서 그러한 것을 따지는 게 무의미해졌다.
조수미 씨는 1991년에 클래식계 최고의 페스티벌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데뷔했다.
동양인이 이 페스티벌의 메인 오페라에 주연으로 오른 것은 지금까지 그가 유일무이하다.
이러한 분들이 과거에 기반들 잘 다졌기에 지금의 임윤찬, 조성진 같은 연주자가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 이번 내한 무대에서는 어떤 곡을 선보이는가
▲ 전주시립교향악단과 함께 모차르트 곡을 연주했다.
모차르트의 음악 스타일을 잘 살린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면서 한국 오케스트라도 많이 발전한 걸 실감했다.
오는 10일에 예정된 서울 강남구 최인아 책방 콘서트는 연주자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한 후 그 사연에 맞게 곡을 연주하는 형식의 리사이틀이다.
이번엔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D단조를 연주한다.
매우 좋아하는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게 되어 기쁘고, 관객들과 가깝게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대가 기대된다.
-- 어떤 연주자로 남고 싶은지
▲ 나무 같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
나무는 오래될수록 뿌리가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식물이다.
나도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지고 깊은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
/연합뉴스
3살 입문해 30년 한 우물…"음악과 바이올린은 내 열정이고 사랑" 강성철·이다솜 코리아넷 기자 = "바이올린을 만난 건 운명이었어요.
음악과 바이올린은 제 열정이고 사랑이죠."
제주도에서 태어난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32) 씨는 3살 때 바이올린을 처음 접한 뒤 천재적인 두각을 드러냈다.
이듬해엔 빈 국립음대 예비학교에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달고 입학하는 기적까지 이뤄냈다.
이후 5살 때 헝가리 사바리아 오케스트라와의 첫 협연을 시작으로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오케스트라(13세), 스페인 국립방송 오케스트라(14세),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닉(15세), 몬테카를로 오케스트라(16세), 마드리드국립방송 오케스트라·KBS교향악단(17세) 등과 공연하며 항상 '최연소 협연' 기록을 세웠다.
19살에 빈 국립음대를 최연소로 졸업한 그는 '신동 바이올리니스트(CNN)', '세계 30대 미스터리(프랑스TF1)'의 찬사를 받으며 차세대 연주가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오스트리아를 주거지로 둔 재외동포로 유럽·미주·한국 등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지독한 연습벌레이기도 하다.
바이올린을 잡기 시작하고부터 20대까지 매일 10시간을 연습한 그는 최근에는 7∼8시간으로 줄였다.
대신 남는 시간에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난달 전주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위해 방한한 그를 연합뉴스와 코리아넷이 8일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가장 먼저 배운 악기는 피아노였다.
활발한 성격이라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는 게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는 중 3살 때 어머니 지인을 통해 바이올린을 접하게 됐다.
서서 연주하는 악기다 보니 멋스러워 보였고 배우는 게 즐거워서 바이올린으로 옮겨왔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오케스트라 공연을 자주 보여주신 영향도 컸다.
어렸음에도 바이올린 파트의 소리가 좋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게 3살짜리 시선을 사로잡았다.
-- 최연소 빈 국립음대 예비학교에 입학했다는데 어떻게 오스트리아에 가게 됐나
▲ 오스트리아에 정착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바이올린을 배운 지 1년이 되었을 때 빈에 계시던 이모 집에 여름에 잠깐 놀러 갔었다.
이모는 영재들을 잘 가르치는 유명한 선생이 있는데 개인 교습을 한번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실력이 어떤지 테스트한다기에 별생각 없이 연주했는데 끝나자마자 선생이 이모에게 아예 제자로 받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엄청나게 연주를 잘해서가 아니었지만 선생은 '이 아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놀러 간 빈에서 첫 스승을 만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쭉 빈에 거주하고 있다.
-- 무대에서 협연할 때마다 '최연소'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부담감은 없었는지
▲ 최연소라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물론 어린아이가 큰 무대에 선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을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음악을 선보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만 했다.
--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 간의 합을 맞추는 과정이 어렵진 않았는지
▲ 첫 협연을 5살 때 했다.
5살짜리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 처음으로 무대의 맛을 느꼈던 거 같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수없이 연습하고 완성된 연주를 보여주는 그 과정이 너무 좋다.
연습을 통해 밝고 좋은 감정뿐 아니라 고통과 어려움을 모두 겪고 느껴야 비로소 제대로 곡을 연주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 모든 과정을 즐기는 자세로 임할 수 있는 건 내가 무대를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 연주한 수많은 국제 무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 매 공연이 다 의미 있기 때문에 한 무대만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23살에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엔 음악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생각이 많아 힘이 들었다.
그래도 연주는 해야 하니 이를 악물고 준비했다.
공연 당일 무대에 서서 연주하는데 문득 이 자리가 너무도 귀하게 느껴지면서 강한 에너지를 받았다.
연주 후 기립박수를 받자 힘들었던 게 다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무대가 끝나고 울었다.
음악가들이 다양한 감정을 겪어보는 게 왜 중요한지, 음악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는 지를 그때 배웠다.
덕분에 많이 성숙해졌다.
-- 3살 때 바이올린을 잡은 이래 30년째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지치지 않는 비결이 궁금하다
▲ 음악은 내 인생에서 0순위이고 목표는 연주자로서 오래 잘하는 것이다.
그만큼 음악과 바이올린은 내 열정이고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매일 그 에너지가 같을 수 있겠나.
에너지가 떨어졌을 때 다시 동기부여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특히 역동적인 운동을 통해서 그 열정과 에너지를 재충전한다.
재충전을 위해서 음악가들에게는 취미가 중요하다.
-- 한인 연주자로서 국제무대에서 받은 평가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
▲ 지금 생각해 보면 늘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서 눈치를 봤던 게 못내 아쉽다.
예전에는 모든 사람이 내 음악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주를 준비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 스스로를 위해 음악을 하는 거지 남들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래서 평가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K-컬처에 대한 인기가 엄청나다.
클래식 분야에서의 한류는 어떤지
▲ 클래식 분야에서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동양인이 국제 무대에 서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연주자들의 실력이 매우 압도적이어서 그러한 것을 따지는 게 무의미해졌다.
조수미 씨는 1991년에 클래식계 최고의 페스티벌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데뷔했다.
동양인이 이 페스티벌의 메인 오페라에 주연으로 오른 것은 지금까지 그가 유일무이하다.
이러한 분들이 과거에 기반들 잘 다졌기에 지금의 임윤찬, 조성진 같은 연주자가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 이번 내한 무대에서는 어떤 곡을 선보이는가
▲ 전주시립교향악단과 함께 모차르트 곡을 연주했다.
모차르트의 음악 스타일을 잘 살린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면서 한국 오케스트라도 많이 발전한 걸 실감했다.
오는 10일에 예정된 서울 강남구 최인아 책방 콘서트는 연주자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한 후 그 사연에 맞게 곡을 연주하는 형식의 리사이틀이다.
이번엔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D단조를 연주한다.
매우 좋아하는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게 되어 기쁘고, 관객들과 가깝게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대가 기대된다.
-- 어떤 연주자로 남고 싶은지
▲ 나무 같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
나무는 오래될수록 뿌리가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식물이다.
나도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지고 깊은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