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증권은 어쩌다 세력에 5000억을 털렸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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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끝난 지금도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큽니다. 전쟁 터지고, 금리 폭등하고, 인공지능에 뭐에. 뉴스만 틀면 시장에 영향을 주는 게 너무 많아요. 근데, 이런 식의 시장이 오면 누가 가장 득을 볼까요? 워런 버핏도 있고, 뭐 많겠죠. 근데 제 생각에는 증권사들이 제일 좋습니다.
키움증권이 2023년 10월 20일 공시를 하나 했는데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특정 종목 하한가에 따른 위탁계좌 미수금 발생 관련. 특정 종목은 영풍제지고. 하한가는 가격 제한폭인 30%나 주가가 떨어졌다는 얘기고. 미수금 규모는 무려 4943억원입니다.
예를 들어 증거금률 40%인 종목이면, 100만원 어치 살 때 40만원만 있으면 우선 매수 주문을 증권사가 넣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 체결되는 수요일까지 나머지 돈 60만원을 채워 넣거나, 주식을 팔아서 미수금을 갚거나 하면 돼요. 이 땐 이자도 없습니다.
다시 공시로 돌아가서, 누군가 키움증권을 통해서 미수 거래를 했는데, 그 종목이 영풍제지고. 증거금률은 공시에는 안 나왔지만, 40%였고요. 이 증거금률을 기반으로 영풍제지를 얼마 샀는지 역산하면, 8238억원이 나와요. 이 누군가는 자기돈 3200억원 정도에 키움증권 미수 약 5000억원을 당겨서 영풍제지 주식을 무진장 사들였다는 얘깁니다.
영풍제지의 경우 주가가 이유 없이 급등하니까 다른 증권사들이 아, 이거 위험하다, 하고 미수를 틀어 막았는데 키움만 미수를 터줬어요. 미수 증거금률 40%면 가진 돈의 2.5배 만큼 주식을 살 수 있다는 의미에요. 이렇게 해주면 수수료도 2.5배가 됩니다. 그러니까 미수는 고객을 위한 것도 있지만, 증권사 자기들을 위한 목적이 더 크죠. 이렇게 미수 쓰게 해주고 수수료 챙기는 게 평상시에는 굉장히 짭짤한데, 문제는 이게 평상시가 아니란 점이었어요.
사람들은 그럼 키움증권이 내놓은 영풍제지 주식을 사줄까요. 당연히 안 사줍니다. 나올 물량이 8000억원 어치가 넘는데, 뭐하러 비싸게 사겠어요. 살 사람이 없으니 주식은 당연히 하한가. 27일에도 하한가. 이렇게 하한가가 이어져서 11월 2일까지 7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맞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1월 3일 하한가가 풀리고 개인 투자자들이 이 주식을 엄청 사주면서 거래량이 폭발, 키움증권은 물량을 다 털어낸 것으로 추산이 됩니다.
이 땐 라덕연 사태였죠. 연예인 임청정 씨를 비롯해 수 천명으로부터 자금을 모아 우량하고 거래가 잘 안 되는 8개 종목을 타깃으로 주가를 띄운 사건이었는데요. 여기서도 미수 거래와 유사한 레버리지 투자인 차액결제거래, CFD가 동원이 됩니다. CFD는 주식을 실제로 보유하지는 않고, 가격이 오르거나 내린 변동분에 대해서만 차액을 결제하는 파생상품인데요. 자기가 가진 돈의 최대 열 배 만큼 주식을 사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실 키움증권이 많이 크긴 했어요. 개인들이 워낙 많이들 키움 계좌로 주식 거래를 하고 있어서, 원래 이 회사가 대기업 같은 느낌인데요. 2000년에 설립된 비교적 신생 회삽니다. 키움증권은 소프트웨어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다우기술의 창업자 김익래 회장이 권성문 전 KTB투자증권 회장과 함께 세웠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키움증권의 전략은 굉장히 간단했어요. 지점을 만들지 않고 컴퓨터로만 거래할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아낀 돈으로 고객들의 거래 수수료를 10분의 1 수준으로 깎아준다. 지금은 주식 거래를 대부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하지만, 당시만 해도 지점을 찾아가서 거래하거나, 전화로 주문하는 게 일반적이었거든요.
국내 다른 메이저 증권사들은 이후에 브로커리지 뿐 아니라 기업 인수합병 자문이나 해외 부동산 투자 같은 폼 나는 사업으로 확장할 때도 키움증권은 브로커리지에 집중해서 지금도 매출의 대부분을 브로커리지에서 올리고 있어요. 키움증권의 영웅문을 저도 쓰고 있는데요. 사실 이게 예전 버전에서 크게 발전된 게 없어서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도 있거든요.
이런 증권사가 세력에 이렇게 연달아 당했다는 것은 굉장히 실망스러운 부분이기도 해요. 영업 노하우만 쌓고 리스크 관리 노하우는 잘 못 쌓았던 것 같습니다. 또 김익래 회장이 라덕연 사태 때 자기 회사, 다우데이타 주가가 급등하니까 600억원 어치를 팔아서 엄청난 지탄을 받기도 했는데요. 사실 이건 지탄이 문제가 아니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사안이리도 하죠. 이것 때문에 그룹 회장 직에서도 내려왔고요. 이번 기회에 내부적으로 단속도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키움증권이 이번 위기를 잘 넘기고, 개인들로부터 사랑 받는 증권사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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