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찬 한국경제신문 기자가 제주 서귀포시 테디밸리 골프&리조트의 시그니처홀인 밸리코스 4번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서귀포=이솔 기자
조희찬 한국경제신문 기자가 제주 서귀포시 테디밸리 골프&리조트의 시그니처홀인 밸리코스 4번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서귀포=이솔 기자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테디밸리 골프&리조트는 ‘명문’이란 수식어가 붙은 골프장이 갖춰야 할 요소를 거의 다 갖춘 곳이다. 3m(스팀프미터 기준) 빠른 그린, 촘촘한 페어웨이, 5성급 호텔 같은 클럽하우스 등 뭐 하나 빠지지 않는다. 단 하나 이름만 빼고.

테디베어는 만화에 나오는 귀여운 곰 캐릭터다. 고급스럽고 점잖아야 할 골프장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다. 그런데 이곳은 골프장 이름에 ‘테디’를 넣었을 뿐 아니라 곳곳을 테디베어 캐릭터로 도배했다. 클럽하우스엔 붉은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타이거 우즈 테디베어’도 있고 피아노를 치는 ‘피아니스트 테디베어’(사진)도 있다.

테디베어들과 인사하느라 풀어진 마음을 시그니처홀인 밸리코스 4번홀(13번홀·파5)에 도착한 순간 다시 조여 맸다. 긴 전장(화이트티 기준 522m)에 ‘애플’ 로고처럼 큼지막한 호수가 페어웨이 왼쪽 옆구리를 파고든 모양새여서 마음이 쓰인 탓이다. 드라이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1년 내내 푸른 골프장

'테디베어'처럼 친근할 줄 알았더니…긴 전장·빠른 그린에 '녹다운'
2007년 문을 연 이 골프장의 주인은 봉제완구 제조업체인 JS&F다. 김정수 회장이 이끄는 JS&F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많은 테디베어를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단순 제조업체였는데 김 회장은 인형을 생산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봤다. 테디베어에 스토리를 입히면 훨씬 큰 부가가치를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001년 세계 최대 규모 테디베어 박물관이 제주도에 들어선 배경이다. 김 회장의 ‘촉’은 들어맞았다. ‘제주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 리스트에 오르면서 제주 뮤지엄은 ‘대박’을 냈다. 그 힘으로 전국 다섯 곳에 테디베어 뮤지엄이 추가로 생겼다.

김 회장의 다음 목표는 골프장이었다. 다들 “골프장은 박물관과 다르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승부를 봐야 한다”며 말렸지만 김 회장은 밀어붙였다. “친근한 느낌을 주는 데 테디베어만한 게 어디 있느냐. 고급스러움은 잔디와 클럽하우스로 보여주면 된다”면서.

설계는 프로골퍼 출신 원로 설계가인 김학영에게 맡겼다. 이런 주문이 따라붙었다. “잔디가 365일 파랬으면 좋겠다.” 김 설계가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 힌트를 얻었다. 무더위와 추위를 이겨내고 사계절 푸른 오거스타내셔널GC의 잔디 관리 방식을 그대로 이식했다.

오거스타내셔널GC의 잔디 관리 핵심은 버뮤다 잔디 위에 ‘오버시딩’(덧파종)을 하는 것이다. 더위에 강한 ‘난지형’ 품종 버뮤다 잔디로 여름을 나고, 겨울이 오기 전에 ‘한지형’ 잔디인 라이(Rye)그래스를 심는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잔디가 서로의 자리를 메우며 사철 내내 푸른 빛을 유지한다. 박은자 테디베어 골프&리조트 경기팀장은 “테디밸리처럼 국내에서 1년 내내 푸른 잔디를 유지하는 골프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버시딩의 핵심은 완전히 다른 두 잔디가 ‘바통 터치’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골프장을 3~10일 운영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도 ‘빚을 내서라도 골프를 치라’는 골프 극성수기인 9월에. 박 경기팀장은 “그린피가 가장 비싼 시즌에 3일 이상 문을 닫기 때문에 최소 5억원 넘는 매출 손실을 본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골퍼들 사이에서 테디밸리 잔디는 사시사철 언제나 품질이 보증되는 ‘믿을 수 있는 잔디’로 통한다. 무더운 날씨로 많은 골프장의 잔디가 타들어간 올해도 테디밸리는 무탈했다.

○아쉬움 달래고 기부도 하는 19번홀

“화이트티에서 522m예요. 2온은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캐디의 설명에 머리를 끄덕였다. 레드티(475m)에서도 2온이 불가능하니 착실하게 3온을 노리는 전략을 세웠다. 이어지는 캐디의 설명에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왼쪽 호수를 의식해 오른쪽을 보고 쳤다가 밀리면 아웃오브바운즈(OB)다.”

의식하지 말라고 하니 왼쪽 호수가 더 눈에 들어왔다. 대놓고 오른쪽으로 친 공은 페어웨이 벙커에 빠졌다. 탈출에 성공한 뒤 3온을 노리고 친 세 번째 샷이 다시 그린 앞 벙커에 빠졌다. 깊은 벙커를 탈출하려고 세게 친 공은 그린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5온 2퍼트 더블보기. 캐디는 “핸디캡 14번홀이라 그리 어려운 홀이 아니지만 긴 전장 탓에 다들 힘이 들어가는지 미스샷이 많이 나오는 홀”이라고 했다.

홀을 마치고 나니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테디밸리는 제주의 명산 중 하나인 산방산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골프장이고, 그중에서도 이 홀이 산방산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명당’ 자리라고 한다.

테디밸리를 특별한 골프장으로 만드는 건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19번홀(파3)을 팀당 1만원만 내면 칠 수 있게 해준다. 골프장은 그 돈을 제주도 내 소외 이웃에게 기부한다. 그래서 19번홀의 다른 이름은 ‘기부자 홀’이다.

티 간격은 7분이지만 회원(400명)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 제주도인 덕분에 극성수기를 제외하면 여유롭게 칠 수 있다. 그린피는 비회원 기준 주중 21만6000원, 주말 28만6000원.

링크를 클릭하시면 테디밸리 GC 밸리코스 4번 홀의 영상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10308857i


서귀포=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