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도 '류' 따라 자결?···공감 안되는 '투란도트'의 새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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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의 푸치니 '투란도트' 첫 공연
연극계 거장 손진책의 새로운 연출과 해석 눈길
세계적 테너 이용훈, 칼라프 역으로 국내 데뷔
연극계 거장 손진책의 새로운 연출과 해석 눈길
세계적 테너 이용훈, 칼라프 역으로 국내 데뷔

독일어로 ’연출가 중심의 극‘을 뜻하는 '레지테아터(Regietheater)' 오페라로 불리는 이런 공연은 관객에게 작품에 대해 새롭게 통찰할 기회를 주고 신선한 감흥을 불러올 수 있지만, 원작의 리브레토·음악과 새 배경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면 반감만 일으킬 수도 있다.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과 함께 푸치니의 4대 오페라 중 하나인 ’투란도트‘는 국내외 무대에 자주 오르는 인기 오페라 중 한 편이다. 푸치니는 이 작품의 3막 1장인 ’류의 죽음‘까지 작곡하고, 투란도트와 칼라프의 이중창과 왕궁의 피날레 송이 이어지는 마지막 장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투란도트'는 10분이 채 안 되는 마지막 장을 푸치니의 후배 프랑코 알피노가 완성해 1926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이 마지막 장에는 주로 쓰이는 알피노 버전 이외에 여러 공연 버전이 존재한다. 반면 ’고대 중국 베이징’인 이 작품의 극 배경을 바꿔 공연하는 경우는 드물다.
손 연출가는 이 작품의 리브레토와 음악은 그대로 두고, 배경은 시대가 불분명한 디스토피아적 지하 세계로 바꿨다. 막이 열리면 베이징 왕궁 부근이 아니라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과 구조물, 계단으로 이뤄진 무대세트가 보인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고 칙칙하다. 건물과 등장인물의 현대적 의상은 흑색이나 회색빛이다. 지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군중(합창단)이 달빛을 노래할 때는 세트 사이 배경막에 커다란 보름달이 뜬다.

손 연출가는 마지막 장에서도 원작의 리브레토와 알피노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무대연출만으로 새로운 결말을 이끌어낸다. 칼라프와 밀고 당기는 이중창을 부른 투란도트는 원작과 같이 아버지인 황제가 있는 궁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류처럼 권총으로 자살한다. 직접적으로 무대에서 자살하는 모습이 보이진 않는다. 총소리와 핏빛 어린 조명만으로 추측하게 한다. 이어 투란도트는 원작처럼 황제 앞에서가 아니라, 먼저 세상을 떠난 류와 다정하게 손잡고 칼라프의 이름이 ‘사랑’이라고 밝힌다. 피날레에서는 압제에서 벗어난 듯 검은 옷을 벗고 흰옷을 입은 군중들이 칼라프와 투란도트의 결합과 앞날을 축하하는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는 듯한 노래를 부른다.

이날 공연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런던 로열오페라단 등에서 칼라프 역을 100회 이상 맡은 세계적인 테너 이용훈(50)의 국내 데뷔 무대였다. 그는 1막 아리아 ‘울지마라 류’나 2막에서 투란도트와 숨 가쁘게 퀴즈 대결을 펼치는 이중창 등에서는 특유의 서정적인 음색에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힘을 더한 리리코 스핀토 테너로서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공연 직후 “해외 일정으로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돼 부족한 점도 많고 힘이 들었던 데다 그 어떤 외국 무대보다 긴장되고 떨렸다“며 ”하지만 사랑하는 한국 팬들을 직접 만나 가슴 설레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날 타이틀 롤을 맡은 소프라노 이윤정과 류 역의 서선영, 칼라프의 아버지인 티무르 역의 바리톤 양희준 등도 배역에 몰입해 좋은 가창과 연기를 보여줬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