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엇국과 복어국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던 계절, 부산을 여행하며 기억에 남을만한 음식을 경험하고 싶어 시민들이 타지 사람한테는 소문도 내지 않는다는 단골 복어 요리집을 찾아낸 적이 있습니다.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가들만 조리할 수 있고 값이 만만치 않아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까닭에 저희 집 아이들도 이 때 처음으로 복어의 맛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복어국집으로 가는 길에 초등학생 둘째 딸이 퉁명스럽게 내뱉습니다. “나 복어국 많이 먹어봤어, 진짜야. 학교 급식에서도 나오고 할머니가 자주 해주셔.”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북엇국을 복어국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결국 평소에 즐겨 먹던 북엇국만큼이나 속풀이에 좋은 복어국물을 먹은 아이는 “다시는 복어를 잊지 않겠다”며 깔깔 웃었습니다.

여행 중반에 여섯 살배기 막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건넵니다. “아빠 있잖아, 선생님 이제 떠난대. 여기 부산으로 간대(온대)”라는 문장에 서운함이 가득합니다. 이에 저는 “아, 선생님이 고향으로 가시는구나. 아쉽겠네”라고 하니 이번에는 딸 아이가 섭섭함 대신 답답하다는 눈빛으로 “고양이가 아니라 부산이라고 부산”

늘 경험하지만, 어린이들의 말은 복어처럼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복어’와 ‘북어’를 혼동하고, ‘고향으로’를 ‘고양이로’ 듣는 기발함을 어떻게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요? 요즘엔 이 소중한 표현들을 잊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기록을 해가고 있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는 단어를 제안하고 아이들의 인권을 위해 본격적인 말하기를 시작한 것이 100여 년 전인데, 우리는 아직도 그들의 위대함을 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귀 기울여 봐도, 세상의 모든 어린이는 판교와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인공지능의 상상력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참신한 문장과 단어를 만들어내곤 합니다.

○ 짜부라지면 안 되는 존재

어린이전문가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에는 갑작스러운 폭우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어린이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감동적인 일화가 나옵니다. 한 쪽 어깨를 다 적셔가며 우산 속 공간을 내어주더라도 어린이를 지켜내는 길이 낫다는 작가의 선택에 저 역시 공감했습니다. 김소영 작가는 책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만원 버스에서 경험한 일도 들려줍니다.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부모님도 이모나 삼촌도 선생님도 아닌 사람이 나를 지켜 주고 있구나. 나는 짜부라지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 <어린이라는 세계> 중
GettyImages
GettyImages

○ 어린이 정경과 케이크워크

낭만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과 인상주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는 살다 간 시대는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어린이에 관한 음악을 남겼습니다. ‘트로이 메라이를 포함한 어린이정경(Kinderszenen Op.15)’은 아이들이 연주할 만한 모음곡이었던 것에 반해, ‘골리워그 케이크워크(Goliwog’s cakewalk)’는 드뷔시가 딸의 시각에서 작곡한 음악이라는 차이점은 있습니다만, 둘 다 어린이를 향했다는 면에서 일맥상통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를 드뷔시의 환생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카모토 류이치도 골리워그 케이크워크와 유사한 정서의 곡을 남겼습니다. 고양이들이 뒤뜰에서 노는 모습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는 ‘메이 인 더 백야드 M A Y in the backyard’가 그것입니다. 사카모토가 이 곡을 두고 ‘어린이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 적은 없지만, 래그타임처럼 특유의 당김음을 활용한 경쾌함이 어린이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듭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곡은 훗날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 감독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에 삽입되어 주인공 티모시 샬라메만큼이나 사랑받기도 했습니다)

슈만과 드뷔시, 사카모토 류이치처럼 긴 시간이 지나도 어린이를 위로할 수 있는 명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위대한 예술가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누구나 아기띠 속에 파묻혀 있거나 유모차를 탄 아이를 향해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점을 압니다. 몸집보다 큰 책가방을 메고 길을 건너는 어린이를 보며,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얼굴을 마주쳐 살짝 웃어 보이거나 손을 흔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호밀밭에서 홀든이 피비를 위했던 것처럼’ 어린이의 세계를 지켜내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곤 합니다. 세상의 온갖 압박에도 온 몸으로 버텨내며 짜부라지지 않게 힘을 보태는 일이 바로 어른들의 역할이 아닐까요? 모두가 어린아이였고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사실은 나뭇잎이 지고 철새들이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것만큼이나 오래된 진리이니, 버티고 지켜주는 어른이 되겠습니다.
모두가 어린아이였고 누구나 노인이 된다

* 각주: 골리워그는 오래 전 유럽 중심의 서구 사회에서 흑인을 얕잡아 보며 만들어낸 상징과도 같은 헝겊 인형입니다. 드뷔시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벨 에포크(Belle Époque, 산업혁명의 풍요로움을 만끽한 시기) 시대의 정서는 타인을 향한 차별적인 시선을 강하게 담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그에 대한 반성으로 더 이상 이 곡을 연주하지 않는 피아니스트도 많습니다.